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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Mar 06. 2022

대선판에 대한 짤막 소회

영화, '킹메이커'

독재와 산업화, 민주화를 거쳤던 우리의 현대사는 격동과 격랑의 시간이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면 유례없게 성공적이었다. 삶을 살다 보니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대부분 들어 맞지만, 우리가 걸어온 고도 성장과 정치 시스템 발전을 운으로 정리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비록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오기에 얼마나 많은 이의 눈물과 희생, 그리고 아픔이 있었던가. 시간이 짧았을 뿐 아픔의 두께가 얇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에도 숱한 희생이 있었음에도 이런 정착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따져 묻는다면 우리 국민의 역량과 더불어 신이 있다면 신의 축복 정도라는 겸손의 언어로 정리해다.


다시금 대선이 임박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이리도 빨리 지난다는 것이 놀랍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게 엊그제 같은데 대통령은 벌써 퇴임을 앞두고 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대통령들만 따져보면 문재인 정부는 임기 후반까지 이례적인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지지율이 정권 수성을 담보하지는 못하는 듯 하다. 오히려 그 어떤 대통령의 임기 말보다 격렬하게 패가 나뉘어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지지율도 높지만 골도 깊다.


이런 와중에 영화 한편이 개봉했다. 선거철 특수를 노린 게 분명한 영화인데 기생충으로 명실상부 국제적 배우가 된 이선균과 국민배우 설경구가 주연한 킹메이커가 그것이다. 2월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벌써 오래 전의 영화라고 느껴지는 것은 불과 한 두달 상간에 워낙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일테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대선을 맞이하여 영화 감상을 빌미로 대선을 바라보는 소감을 남겨본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설경구가 연기한 김운범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선균이 연기한 서창대는 김대중의 책사였던 엄창록을 극화시켰다. 엄창록이라는 사람은 한국의 괴벨스라고 불리는 한국 정치사 책사이자 선동가의 효시로 불린다. 선거에만 나가면 패배하던 김대중은 엄창록을 만나며 한국정치의 신진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70년대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은, 결국 엄창록이 당시 여당의 선거전략가로 활동하며 정치적 대립의 관계로 바뀌기도 한다.

이 독특한 운명을 다룬 영화에서 엄창록, 아니 서창대는 심각한 목적론자이자 목적론 안에서 고민하는 필부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서창대의 고민을 통해 정의와 대의, 목적과 가치라는 것을 정면과 반면에서 다각적으로 비춰보려는 시도를 한다.


실재했던 현대사와 대선 특수, 연기파 배우로 명성 높은 주연 배우들 뿐 다양한 까메오까지 총망라하며 물량공세를 했지만 영화의 전개는 다소 밋밋하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다루고 싶었던 층위의 수준은 알 수 없지만, 깊이와 진폭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사건은 전개되는데 인물들이 느끼는 심리에 대한 묘사는 일어나는 사건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다. 헐겁게 인물들의 마음을 어영부영 봉합하고는 다음 사건의 정거장을 향해 나아가려고만 하는 것 같았다. 아쉬운 지점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현대사가 그만큼 숨가빴던 걸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소 얄팍한 깊이감에 아쉬운 지점은 있지만 영화는 보는 이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대관절 ‘정의란 무엇인가.’

몇 해 전 한 미국인 교수의 도발적 책 제목은 한국 사회에서 유달리 큰 호응을 받았지만 그 책을 본 사람들이 어떤 정의를 그리고 있는지, 얼만큼의 정의가 우리 사회에서 정리되었는지는 다시 논의되지는 않는다. 마치 영화가 미봉책으로 연명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정의도 그렇게 부유하고 있다.

물론 정의를 하나의 답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것대로 부당하겠지만, 한 사회가 어떤 걸 원하는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는 과연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대형 선거이벤트는 투표 자체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다수가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각자 열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약자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담론이 쏟아질 수 있는 시간이고, 선거판의 당사자들은 쏟아지는 담론들을 커다란 그물을 통해 끌어올려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선 판은 어땠는가.

팔순 노인네가 다시 선거판의 핵심 책사로 지난 10년간 꾸준히 거론되고, 유력 후보들의 가정사, 배우자 문제가 소음처럼 울려 퍼지는 반면, 정당의 정책과 방향은 지난 몇 번의 선거와 다름없이 실종된 오리무중의 길을 가지 않았던가. 이 아득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만들려는 ‘킹’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 ‘킹’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인지를 문득 되짚게 된다.


공약이니 정책이니 딱딱한 말들을 옆으로 치워두고, 대선판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불안감과 상실감의 근원은 어쩌면 실종된 희망에서 오는 씁쓸함 때문 아닐까.

이번 선거만큼 비호감 일변의 투표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선거과정 면면에서 희망보다는 탄식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리라.


선거를 한다면 그것이 비록 아편과 같을지라도, 설령 거짓희망이일지라도 잠깐이나마 희망을 꿈꿔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 어느 하나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을 말 할 수 없어 보이는 선수들이 외치는 '다 해줄게' 공약,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드러내는 부박한 외침은 정녕 희망 없는 사회로의 진입을 실감하게 했다. 곧이어 밀려오는 아득함이 아마도 내가 느끼는 무력감일 것이다. 만약 이런 마음이 나 한 명을 넘어 많은 이가 그런거라면, 직업 정치인들은 반성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 밥그릇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부득불 어느 한쪽에 사전 투표를 마치고 돌아왔다.

거대정당이나 소수정당 어느쪽에 표를 줄까 고민을 길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효표를 만들고 나왔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많은 이들이 무효표를 던져줬음 하는 바람이 일 정도니 이번 대선을 바라보며 어지간히 속이 상했나 보다.


서두에 이야기 한 것과 같이, 국민의 역량으로 여기까지 왔고, 신이 있다면 신의 축복으로 이 만치 왔다. 고작 한 표를 갖고 있는 유권자의 작은 감상이겠지만, 이번 대선판은 아이러니 하게 후보가 아닌 우리 국민의 역량에만 희망을 품게 한다. 어쩌면 양대 거당의 후보가 그토록 외쳐댄, '국민만 바라보겠다'라는 말은 현실화 된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삼키게 된다. 실로 국민만 봐야하는, 국민만 바라보게 됐던 혼탁한 스무번째 대선 풍경이었다.





작가 '원우씨'와 함께 호우시절이라는 채널로 그 시절 반짝거렸던 때를 추억하며

영화를 리뷰하고 있는 조쿠나입니다.

영화에 대한 더욱 다양한 이야기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호우시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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