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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Apr 08. 2024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의 과제이자 존재 이유

패닉의 데뷔곡, 달팽이의 노랫말은 다리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짧디 짧은 달팽이 한 마리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마저 힘들 정도로 지쳐버린 주인공이 우연히 마주한 달팽이의 위로와 격려에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는 노랫말은 그 시절 입시로 신음하던 청소년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미있는 점은 가사 속 주인공의 눈앞에 달팽이가 수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욕조 속에서, 때로는 모퉁이 가게에서 불쑥 튀어나와 인사하고 속삭이는 걸 보고 있으면 어쩜 이리 적시에 나타나는지 신통할 지경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듀스, HOT 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요사에 획을 그은 거인들이 활동하던 때, 신인이었던 패닉이 대중을 사로잡은 데에는 유려한 멜로디도 있지만 철학적이고 우화적인 노랫말도 분명 한몫 했으리라.



24년 3월,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0.6대로 떨어졌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이 가임 기간 동안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적인 출생아 수를 말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23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0.65명의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23년 한해 동안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38개 회원국 중 최저치이다. 반면에 노년 인구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단순히 통계적 수치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다. 20여년전만해도 심심치 않게 주변에서 환갑 잔치를 했었는데, 요즘은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는 환갑 잔치를 한다고 하면 유난이라는 빈축을 사기 십상일 정도로 환갑은 노인 대열에 끼지 못한다. 

오히려 동양에서 사람 수명의 최상의 수라 부르던 상수(上壽), 즉 100년을 살아낸 노인들을 주변에서 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그저 말로만 이야기 하던 100세 시대가 정말이지 눈앞에 와 있다.


저출산은 심화 되고 생산 가능 인구는 줄어들며, 사회의 주축 인원들이 고령화 되어 가는데 비해 시대와 사회의 변화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옛말에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한번 뒤쳐지면 아무리 방향이 맞는다 한들 그 격차를 줄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속도의 중요성과 위상이 점점 커지는 현실에서 고령 사회의 진입이 주는 우려도 단지 우려가 아닌 현실의 위협이 되었다. 


정권을 막론하고 매 정부마다 여러 대책을 내세우지만 아쉽게도 가시적 성과는 느껴지지 않는다.현실론자, 심하게 표현하면 비관론자들은 이미 늦었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럼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잠깐 개인사를 이야기 해보면, 나의 외조모도 100세를 넘긴, 이른바 ‘상수’를 살고 계신 분이다. 외조모는 일제 하인 1922년에 태어나 해방 전 일본으로 건너가 자랐다. 광복 이후 성인이 되어 서울 땅을 밟았지만, 얼마 뒤 한국 전쟁으로 피난 행렬 속에 부산까지 내려가 전쟁 통에 출산을 한다. 그렇게 나은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고 건사한 채 두 세기에 이르는 삶을 살고 있다. 당신 개인의 삶은 한시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뱃속에서 칠 개월 만에 태어나 몸이 약한 막내딸은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갔고,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서울과 LA를 오가며 손주들을 길러냈다. 그뿐이랴, 자식들 다 키워서 손자 손녀까지 보며 한 시름 놓을까 했던 때, 그리도 아끼던 큰 아들을 여의기도 한다. 100세가 되고 보니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터졌고, 아무래도 감염의 위험이 적은 요양원에 입소했다. 격동의 세월만큼이나 구슬픈 삶의 이야기는 곧 애화(哀話)이다. 

불과 150cm 남짓의 작고 소박한 외조모가 슬픔과 질곡으로 가득했던 두 세기의 삶을 어찌 살아낼 수 있었을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생득적으로 좋은 유전자일 수 있다. 더불어 한 평생 근면했던 당신의 성실함도 분명 기여를 했을 것이다. 가난에서 비롯된 소식의 습관까지도 장수의 한 축이 될지도.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제는 다 됐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라는 말을 수 십년 넘게 입에 달고 살았던 그녀를 버티게 했던 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사람들, 가족에 대한 그녀만의 사명감일 것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곧 살아갈 이유이다. 자식에 대한 걱정은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애화(哀話)의 삶을 버티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사명감과 책임감이 그녀의 삶을 버티게 하는 희망이었다.  

외조모의 삶에서 속삭이고 위로해주던 달팽이는 그녀에게 남겨졌던 자식들이고, 그렇게 자란 자식들의 가슴에는 외조모가 평생 쏟아 부은 사랑이 곧 살아갈 힘과 희망이 된다.


저출산에 대한 해결책이 어찌 쉽게 나올 수 있으랴. 난제 앞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다만 선거철을 맞이하여 후보자들에게 한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는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핀 포인트로 세밀하게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정책 대안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자세는 장려되어야 하지만 그 해결책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몇 가지의 가치가 국민에게 와 닿게 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이고 존재 이유이다. 비록 우리 앞의 현실이 넓고 거친 바다라 할지라도, 언젠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다는 그 희망을 제시하는 정책입안자를 만나는 4월 선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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