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 Aug 01. 2017

내가 내일 일찍 일어나는 이유

에곤 쉴레,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



에곤 쉴레 (Egon Schiele, 1890-1918),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Physalis)>, 1912.

20세기 초반의 표현주의를 주도한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이나, 생전에는 전례 없는 포르노적 성향으로 100점 이상의 그림이 압수되고 투옥되기도 하는 등 사연 많은 삶을 살다 28세에 요절하였다. 초반의 드로잉 작품들에는 스승이었던 구스타브 클림트 (Gustav Klimt)의 화풍을 이어받은 흔적이 분명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자의식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형태와 색감이 기괴해지고, 드로잉에서도 속도감 있으면서 말초적인 선들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병적 자의식은 그가 자주 그렸던 여성의 누드보다도 그의 자화상들에서 극대화되는데, 색감과 형태가 현대의 그것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됐다. 그런 의미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人間失格)> 민음사 판 표지로 쉴레의 <꽈리와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실은 것은 동서의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을 고려한 정말 통찰력 있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소설의 주인공인 요조가 중학교 시절 그렸던 자화상을 '귀신 그림'으로 일컫는데,  그 그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쉴레의 자화상과 많이 닮아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작년 1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철이 뒤늦게 들어 미국 학부의 학비가 내가 평생 감당 못할 천문학적인 숫자라는 것을 졸업 일 년 남기고 비로소 깨달았다. 인문학, 그것도 미술사 전공생으로서 비전 있는 직업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부모님의 투자에 비한 실제 아웃풋을 상상해보니 대실패 한 장사임이 분명했고,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졸업논문을 쓰고, honor라는 것을 받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괜찮은 직업까지 찾아보는데 서둘러 졸업하고 싶지 않았다. 한 학기야 괜찮겠지... 도망치는 것임이 분명했지만,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그러나 매우 강한) 육감적 확신을 가지고 휴학계를 내고 귀국했다.


2016년 1월부터 7월까지 쉬었으니, 6개월이 늦었다. 6개월 동안 대단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아서인지 막상 졸업할 때 결과가 괜찮았다. 일단 졸업논문을 쓰긴 썼다. 허접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학회에 나가 발제라는 것을 해봤고, 출판이라는 것도 해봤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졸업했고, 상도 받고, 미술관에 자리도 얻었다. 생전 처음 몇 백만 원의 돈을 벌어봤고, 대학원도 얼마 안 되지만 장학금을 받고 붙었다. 분명 6개월 쉬었던 게 이런 분수에도 안 맞는 것들을 기적처럼 이뤄주지는 않았을 테지만, 대기가 만성하는 순간들이 존재하고 그 순간을 위해 천천히 기다리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직감했다. 삶을 잇고 있는 깨달음의 자물쇠들이 몇개 존재한다면, 얼떨결에 그중 하나를 끌러 열어본 느낌이었다.


졸업 후 인턴십을 마치고 올해 5월 중순에 귀국했다. 런던으로 대학원을 가기 전 4개월 정도의 시간을 여기서 보내기로 하였는데, 세 달이 다 돼가는 지금 내 머릿속은 작년보다 어지럽고 조급하다. 나는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겪었던 반증의 순간들을 완전히 망각하고 머릿속을 새로이 과잉된 자의식으로 채웠다. 대졸이라는 명함(혹은 주홍글씨)때문인지, 아직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고, 근 미래에 완전한 자립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다. 어렸을 때 딱히 꿈이라는 것은 없었지만, 내 이상 속 만들어낸 이론적 자화상과 손으로 직접 그려나가는 현실의 자화상 사이 괴리가 점점 깊어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내가 매일 하는 말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내가 쓰는 글들의 깊이가 바닥나고 있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음에도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지 않고 아직도 늦게 기상하며, 의욕이 없는 날에는 더러 낮잠을 자버리기도 한다. 인문학을 진지하게 해볼 수 있는 그릇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미술이론, 미술사, 미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을 당당히 마주하지 못해 선택한 도피처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그것이 금전적 보상이던, 명예의 추구건, 정의의 실현이건, 무엇인가를 필사적으로 지키고 구현해내려는 사람들이 있고, 나 하나가 두 눈 부릅뜨고 짖으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고고하고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신념을 실재화시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죄의식과 부러움에 사로잡힌다. 나는 무엇에 대한 절실함 없이 과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연단해서 다음 대기만성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나에 대한 불신 앞에서 매번 무너지고 있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선 그게 하찮아 보이는 일본어와 독어 공부가 되었든, 독서가 되었든, 쓰기 두려운 글들을 쓰기 시작하든, 과거와 현재의 내가 확신했었고, 생각하고 있고, 계획하고 있는 바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게 아무리 추상적이기 짝이 없을지라도. 아무튼 그래서 내일은 아침 10시가 아닌 7시에 일어나 하루를 꽉 채워서 뭐라도 열심히 해볼 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