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플로리안에서 만난 예술가들 - 2. '거인의 문학' 괴테
베네치아 카페 플로리안에서 만난 예술가들 - 2.'거인의 문학’,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베네치아 산마르꼬 종루에 올라 베네치아를 내려다보고, 카페 플로리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를 썼다. 그리고, 흔들리는 곤돌라에서 곤돌리노가 읊는 시를 감상했다.
“멈추어라 순간이여
그대 참으로 아름답다!”
<파우스트>
괴테는 자신의 본질인 예술과의 문제에 몰두하기 위해 어느 날 문득 떠났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행은 어느 날 문득 떠나고 싶어지는 것인가보다. 괴테는 37살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모여든 지인들의 곁을 살며시 빠져나와 별다른 짐도 없이 이탈리아로 떠나버린 것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여행지에서 일어났던 일을 일기 형식, 연상의 연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 헤르더에게 띄운 편지형식으로 썼다. 이탈리아 여행은 수려한 경관만을 보려고 떠난 것은 아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갈증과 예술과 삶에 대한 문제를 안고 떠난 것이다. 괴테는 37세 때 독일 땅을 떠난 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두루 여행했다. 이 여행은 괴테 자신의 인간적 성숙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 발전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괴테가 조화와 균형의 고전미에 눈을 돌리게 된 것도 이 여행 이후이다. 여행을 통해 직접 경험한 것들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다. 내가 거닐고 있는 산마르꼬 광장에서 괴테가 같은 여행자가 되어 거닐었을 것을 생각하면 왠지 온몸이 짜릿하다. 괴테는 ‘어찌할 수 없는 욕구에 이끌려’ 이탈리아를 찾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베로나, 베네치아, 피렌체, 아시시를 거쳐 동경하던 로마를 여행했다. 그가 이탈리아 여행 중 가장 관심을 쏟으며 몰두한 대상은 자연과 인간사회, 그리고 자신과 예술이었다. 이탈리아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특히 베네치아는 아름다운 작품 속 운하 위를 거니는 느낌이다. 운하는 아름다운 자연이자, 도로이자, 산책로가 되어 골목골목 숨은 이야기와 함께 꽃을 피운다.
9세기 후반 괴테는 철학자 칸트, 헤겔, 실러. 음악가 슈베르트, 베토벤, 모차르트.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음악가들과도 많은 교류를 맺었다. 더구나 미술과 음악은 깊은 관심을 갖고 직접 해보려고도 했었다. 예술가 위의 진정한 예술가이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거인의 문학’을 이루어 냈다. 유럽을 휩쓴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혁명의 시대에 탄생한 대문호 괴테. 문학의 르네상스 혁명을 이루었다. 흔히 알고 있는 얘기지만 베토벤은 괴테를 너무나 존경해서 여러 날을 그와 지내기도 했고,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이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작품 ‘마왕’을 직접 헌정하고 싶다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1786년 베네치아 여행지에 들어섰다. 베네치아를 처음 보고 경이로운 섬의 도시에서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고독을 이제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아무도 모르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 군중 속을 헤치고 돌아다닐 때, 더 진한 고독을 느꼈다. 물이 거리와 광장과 산책로를 대신하는 베네치아에서 2주간 머물며 자연과 예술을 마음껏 즐겼다. 곤돌라를 탔을 때, 아드리아 해의 지배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사람이 사는 가장 외진 곳까지 가서 그들의 거동과 생활방식, 풍습과 성품 등을 살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그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어쩌면 이렇게 가련하면서도 선량한 존재인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연극, 오페라, 즉흥 가면극, 더구나 타소와 아리오스토의 시를 독특한 선율로 노래한다는 뱃사공의 노래를 들으러 밤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그 자신의 본령은 ‘글쓰기’임을 깨달았다.
“나의 본령은 글쓰기이다.”
그리하여괴테의 대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 헬름 마이더스의 수업시대, 파우스트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여행은 깨달음의 과정이다. 자신을 찾는 과정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 나도 나자신을 찾고자 했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았으나, 이제 또 무엇을 할 것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속에 있는 나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예술의 도시를 거닐었다. 괴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세상을 포기하겠다고 베르테르를 통해 말했다. 그리고 결국 베르테르는 자살에 이른다.
“내가 원했던 사랑이 아니면,
나는 차라리 세상을 포기하겠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자존심을 지키며 살다가 죽겠다는 괴테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베르테르의 패션까지 유행할 정도로 베르테르는 그 시대의 우상이었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베르테르의 효과는 문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젊은이들의 감성 깊숙이 살아있다.
이후, 빌헬름을 통해서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을 익히며 의무에 따라 행동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망각할 줄 아는 것이 이롭습니다. 비로소 그때야 그는 자신을 알게 되지요.”
<빌헬름 마이스더의 수업시대>
괴테는 작품<파우스트>를 60년에 걸쳐 썼다. 그러고도 여러 번 고쳤다. 괴테는 성실, 그 자체의 삶을 살았다. 죽기 1주일 전까지 퇴고를 했다. '이제 그만 써야겠다. 후대 사람들이 이해하겠지... 이 작품은 내가 죽은 후에 출판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위대한 작품 ‘파우스트’의 탄생이다.
대작 '파우스트'에서는메피스토와 파우스트중 괴테 자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라는 화두를 갖고60년에 걸쳐 써나갔다. 60년! 아직 내가 다살아보지도 못한 세월이다. 그 긴 시간을 한작품과 사투를 벌이는 작가는 참으로 위대하다. '거인의 문학가'로 칭송되는 것은마땅한 일이다. 그러하듯'과연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라는 화두는 나에게도 삶의 큰 숙제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나이이기도 하다. 괴테는 결국 말한다. 온 세상을 두루 달리며 삶의 의무를 추구했다고. 온 세상을 두루 달려 온 괴테 앞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가르쳐 주는 깨달음. 부지련한 자에게는 세상은 침묵하지 않는다는 축복의 메세지. 오늘도 뜨겁게 세상을 살아볼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온 세상을 두루 달리며 내 삶의 의무를 추구했다.
부지런한 자에게 세상은 침묵하지 않는 법.”
<파우스트>
“할 수 있거나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은 지금 시작하라.
담대함에는 재능과 힘과 마술이 있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