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땅, 한국의 사막. 태안신두리사구
신두리사구
수 만년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이야기
바람과 모래뿐인 사막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바람이 다녀간 발자취만 남아있는 사막에서 바다까지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한국의 사막. ‘바람의 땅’을 가 본적이 있는가? 태안으로 이색적인 여행을 떠나보자.
서해안 지도를 보면, 바다 쪽으로 도드라져 나온 부분이 태안반도다. 530km의 리아스식 해안 전부가 명소다. 그곳에 해안사구와 두웅습지가 있다. 신두리사구는 국내 최대의 해안사구이며, 두웅습지는 국내 제일의 해안 배후습지이다. 사구는 바람과 모래에 의해 만들어진 모래언덕이다. 긴 초승달 모양의 모래언덕이 S자 곡선미를 뽐내며 누워있다. 아름다운 굴곡 앞쪽에는 서해 바다가 일렁이고, 뒤쪽에는 굽이쳐 몇 번의 모래언덕을 지나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해변은 자동차가 달릴 정도로 단단하다. 서해와 신두리사구 사이에 있는 해변에는 자동차가 달린다.
수 만년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가 해안사구에 숨어 있다. 사구는 1300리의 해안선을 따라 뻗어있다. 썰물 때 광활한 갯벌이 드러나는 해변과 곰솔림 사이에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2001년 지정된 천연기념물 제 431호다. 해변을 따라 펼쳐진 사구의 전체 길이는 3.5km. 이중 ‘한국의 사막’이라 불리는 신두사구. 북쪽의 길이1.5km, 최대 폭 1.3km 구간이다. 1만 5천여 년 전 빙하기 이후 바다 속에 있는 모래가 파도에 의해 비밀을 품고 육지로 나온 것이다.
저 언덕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파도가 왔다 갔을까. 파도가 싣고 온 많은 이야기와 많은 생명체는 바람과 함께 사구를 만들었다. 서해안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썰물일 때 모래 속 물기가 햇볕에 의해 마른다. 바다 속 이야기를 간직한 채 물기가 사라진 모래는 가벼워져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수십 만 번을 날아올라 세월을 먹고 아름다운 언덕을 만들었다. 더구나 북서계절풍이 불 때면 비밀을 간직한 모래들이 더 많이 움직인다. 신두리사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에 이 사구는 한 뼘씩 더 성장한다. 또, 이곳은 육지와 바다 사이의 퇴적물의 양을 조절하여 내륙과 해안의 생태계를 보존한다.
해풍으로 모래가 이동하여 배후면에는 섭지가 만들어진다. 선구식물군락을 형성한다. 멸종위기의 금개구리가 서식하는 두웅습지가 대표적이다. 두웅습지는 배후산지에서 유입된 물이 바닷물과 밀도차로 인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구지대의 모래톱 사이에 저장된 것이다. 담수의 양이 풍부하다.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진귀한 습지가 펼쳐져 있다. 바람에 날려 온 씨앗이 척박한 모래땅에 뿌리를 내린다. 갯메꽃, 갯완두, 순비기나무 등 29종의 희귀한 사구식물 군락을 이룬다. 제철이면 생명의 땅에 해당화가 만발한다. 멧토끼도 뛰어 다니고, 날이 저물면 고라니 떼도 만날 수 있다.
배후습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사구가 물을 머금고 있다가 지역이 낮은 쪽으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래는 정화능력이 뛰어나 1급수의 물을 만든다. 저습지에는 버들이 휘영청 늘어져 있다. 버들잎은 아스피린의 원료이고 물이 1급수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버들잎 띄워진 물 한 잔만 마시면, 바람이 되어 날아갈 것만 같다.
모래 언덕이 워낙 넓은데다 비슷한 구릉이 많다.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기 쉽지 않다. 모래 속 미로다. 이것이 사막의 묘미가 아닐까? 만년의 비밀은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그래도 그곳을 걷고 싶다면 방법이 있다. 모래언덕을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여러 코스를 만들어 나무로 길을 내어 놓았다. 그 길 사이로 갈대와 억새가 섞여 언덕을 이루었다. 유명한 갈대 군락지의 모습이다. 누가 갈대이고 누가 억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래 속 많은 생물들이 그들을 함께 품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두웅습지는 람사르습지다. 국제환경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따라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서천 갯벌 등 16개의 람사르 습지가 있다.
시간은 손가락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이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의 모래알은 수 만년의 세월동안 모여 사구를 만들었다. 모래알과 모래알 사이에도 사연이 있다던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모래알의 사연과 모래알과 모래알 틈 사이의 사연을 듣고 싶다. 오늘은 바람까지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사구에는 모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구의 모습을 지탱하기위해 모래 틈과 틈사이가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얽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