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보고, 쓴다. 혹은 무언가를 읽고, 쓴다. 무언가를 감상하고, 쓴다.
대체로 일과의 대부분이 이렇다. 내가 태어난 해로부터 지구의 하루는 24시간에서 48시간으로 바뀌었고 거의 모든 노동을 기계가 하므로… 인간은 노동에서 추방되어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보고, 또 보는 식으로 여가 시간을 채웠다. 잠도 기계식으로 자면 두어 시간이면 하루를 영위하는 데 필요한 수면 에너지가 보충되니 필연적으로 남은 시간은 ‘무언가를 보는’일로 채워졌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런 여흥은 ‘텍스트Text’와 관련된 활동이 아니었다. 1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지구인들에게는 10년 이상의 의무교육이 주어졌지만, 제국이 번창해도 ‘실질 문맹률’은 높아지지 않았다. 한때 중세 시대의 대중문화이던 ‘읽기Reading’는 소수 인간의 취미가 되어갔다. 일론 머스크 1세가 2세가 되고, 3세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읽기는 매니악한 취미일 뿐, 글을 읽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줄어 들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제국어로 일지나 일기를 쓰는 행위는 지구를 박차고 나왔음에도 그 궤도에 매여 있는….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나 같은 괴짜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쓰기Writing. 이것은 극히 제한된 구역에서 극히 제한된 교류만을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킬링타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온몸을 이완시키고 편하게 소파나 침대 같은 가구에 누워 영사되는 홀로그램을 보는 일. 이는 여전히 모든 이들에게 귀한 킬링타임 방법이다. 물론 지금 보는 중세 시대의 영화는 홀로그램은 아니었다. 홀로그램으로 작동시키지 않고 부러 2차원의 방식으로, 화면 가시광선 설정도 당대의 개봉 시점 그대로 설정해 놓았다. 까만색과 하얀색. 흑백으로만 보이는 화면. 마치 중세 시대의 영사기에서 영화가 상영되듯 점멸하며 넘어가는 화면을 무감하게 바라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나 역시 이런 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The Alligator People
영화의 제목이었다. 이 시대의 시간관념을 적용하면 227년 전 영화가 된다. 중세 시대 영화에 내용도 원시적인 수준의 과학 지식으로 만든 파충류 인간에 대한 서스펜스 정도로 별 참신한 것도 없어서 뇌를 비우고 시간을 죽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어머, 또 옛날 영화?”
소파 옆에 엠마가 앉았다. 장미 향 같은 게 났다. 아, 하고 손을 들어 눈썹 사이에 붙은 러버 딱지를 확인했다. 이거 안 떼고 있었구나.
“뭐예요? 그걸 왜 확인해요?”
엠마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옛날 중세 시대 영화이든 최근의 제국민 필수 시청 영상이든 무언가를 볼 때 엠마나 헨리가 옆에 오는 것이 싫다. 홀로그램을 앞에 두고 옆에도 홀로그램을 두는 기분은…그냥 더욱 고독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건 말을 할 수는 없지. 난 왜 홀로그램 눈치를 보고 있는 거지.
“으응…그냥 버릇이지..”
“흠…알겠어요. 그렇다고 해요… 재미있나요? 영화?”
“아니, 그냥 원시 과학에 원시 음모론이 합쳐진 영화.”
“악어 인간이라…확실히 그렇네요.”
“풉, 악어,라는 생물을 이해해?”
별로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엠마는 중세 시대의 악어 뼈가 전시된, 제국의 역사박물관에 가보지도 못하는…안드로이드도 아닌…홀로그램 주제에 아는 척을 해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당신 진짜 못됐네요.”
“아냐, 아냐, 놀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제가 당신보다 아는 것이 많을 거예요. 제가 접속하고 있는 제국 자료실의 회로는 수억 개에 달하니까.”
“아아, 그거 참 부럽구먼.”
내 말에 엠마는 잔뜩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나를 노려보더니 사라져 버렸다. 음… 또 며칠 보이지 않겠군. 나는 심드렁한 기분이 되어서 무심하게 넘어가는 옛날 영화를 또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Alligator
악어를 본 게 언제였더라. 실제 악어를 본 적은 없다. 내 세대의 지구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악어는 멸종되었으므로… 지구 역사 중 백악기에 해당하는 공룡과 같은, 뼈 화석으로 소비되는 상상의 동물이었다. 물론 악어는…지금 보는 영화와 같이 “실제 존재했었다”는 시각 자료가 다수 남아 있기는 해서 완전히 상상의 동물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공룡 역시 중세 시대부터 CG로 복원하여 시각 자료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게 그거라는 것이 나의 중론이다.
악어가 살았던 늪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몇몇 있다. 그곳에는 산소를 소비하고 어마어마한 독성으로 지구의 공기를 잠식하는 독초가 자라고 있다. 이 독초 옆에 가면 온몸의 살갗이 무너져 내리고 뼈는 부식된다,라고 한다. 독초가 자라는 늪 밑에는 물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저 점액질의 검은 심연일 따름이고 그 밑에는 독초와 마찬가지로 지구를 좀 먹는 좀벌레들이 무수히 알을 까고 있다,라고 한다. 이 역시 제국 학교의 의무교육에서 배운 것뿐이다. 자생론자들은 그 늪이야 말로, 그 심연이야 말로 지구가 자생하려는 증거라고 우기지만…궤변이며 음모론이라서 제도의 철퇴를 맞고 이 세상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늪으로, 심연으로 가라앉은 건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지구는 망했다.
이 문장을 쓰고 킬킬 웃었다. 역시 글쓰기는 나만의 시간 축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