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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Jun 21. 2020

엄마의 봄은, 쑥떡

브런치X우리가한식

“곱게도 올라왔더라.”


이른 새벽 산에 다녀온 엄마가 배낭을 열었다. 순식간에 알싸한 향기가 퍼졌다. 향긋한 흙 냄새와 상큼한 물 냄새가 푸르게 어우러진 봄 냄새의 주인공. 연둣빛 물이 막 오른 쑥이었다.

“허리도 안 좋으면서 이걸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나 많이 캤어요?”

기분 좋은 내색을 감추고, 디스크 수술을 받은 허리가 시원찮은데 새벽이슬 맞으며 쪼그려 앉아 캤을 모습이 떠올라 싫은 소리부터 했다.

“누가 먹기는. 아무도 안 주고 내가 다 먹을 거니까. 나중에 달라고 조르지나 마.”

엄마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배낭을 들고 수돗가로 향했다. 그리곤 김장을 담을 때나 쓰는 커다란 고무대야를 꺼내 물을 가득 채우고 배낭을 뒤집어 털었다. 연한 이파리들이 초록색 눈송이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찬물에 닿은 쑥에서 더 진한 풀 냄새가 피어올랐다. 온 집안에 쌉싸름한 쑥 냄새가 퍼졌다. 숨을 들이마시자 침이 고였다. 눈앞에 벌써부터 엄마의 쑥버무리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쑥을 씻을 땐 아기 속살 마냥 살랑살랑 조심스레 다뤄야 뭉그러지지 않아.”     


엄마는 찬물에 두 시간을 담가 둔 쑥 중에서 유독 연한 것만 한 움큼 골라냈다. 쑥버무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쑥을 삶아서 만드는 떡과 달리 버무리는 싱싱한 쑥의 굵은 줄기를 떼어내고 연한 이파리만 넣어 만들었다. 그래야 보들보들한 쑥 이파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골라낸 쑥을 맑은 물에 여러 번 헹궈 깨끗한 면포 위에 올리고 찹쌀가루와 설탕을 솔솔 뿌려 찜통에서 쪘다. 하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오를 때까지 찌면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혀로 먹는 엄마의 쑥버무리가 완성됐다.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쫀득한 찹쌀반죽과 씹을수록 달콤쌉싸름한 쑥의 합주는 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귀한 보물이었다. 그렇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다보면 화제는 어느새 쌀이 없어 밀가루로 쑥버무리를 만들던 어린 시절로 이어졌다. 쑥 버무리 한 접시가 우리 가족의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쑥은 대가 흐물해질 때까지 푹 삶아야 한다. 서두르면 안 된다.”     


쑥버무리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이라면 쑥떡은 봄을 완성하는 음식이다. 엄마는 깨끗이 씻은 쑥을 커다란 곰솥 냄비에 담아 쑥대가 완전히 흐물거릴 때까지 삶은 뒤에 조심히 건져서 찬물에 담가 여러 번 헹궜다. 그렇게 푹 삶은 쑥을 한 움큼씩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냉동실을 가득 채운 쑥은 다음 봄이 올 때까지 식구들의 간식거리와 제물로 쓰였다.

“요즘 세상에 제사떡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우리도 그냥 사서 해요.”

제사상에 올릴 부침이랑 산적과 나물을 만들기도 바쁜 데, 손이 많이 가는 쑥설기를 만드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볼 멘 소리가 나왔다.

“손이 멀쩡할 때까지는 제사상에 올릴 떡은 직접 만들어야지. 우리 식구들 먹는 건데.”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엄마에게 ‘떡’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30년 동안 떡 방앗간을 하다 작년 6월에 문을 닫았다. 30년을 하루같이 새벽 3시에 일어나 쑥을 삶고 쌀을 빻아 떡을 쪘다. 쌀가루를 빻기 위해 쌀가마니를 메고 나르고, 명절 대목이면 일주일 밤을 새서 고물을 장만했다. 다른 음식배달과 달리 경조사에 올리는 음식이라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남의 경조사를 망친다고 흔한 저녁모임 한번 맘 편히 가지 못했다. 그 덕에 엄마가 만든 떡은 인근에서 맛이 좋다고 소문났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서 떡이 많이 팔릴수록 엄마의 건강은 점점 악화됐고, 결국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으면서 방앗간을 그만 뒀다.

   

<방앗간에서 만든 마지막 쑥떡>

방앗간 문을 닫는 날 아침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떡을 만들었으니 가게에 들려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싸 준 상자에는 쑥 설기와 인절미가 담겨 있었다. 나눠 먹기 편하라고 정성스레 자르고 하나씩 비닐로 싼 모습을 보니 코끝이 찡했다.

엄마가 방앗간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부재료가 쑥이었다. 인공염료를 사용하지 않아 푸른색을 내는 데는 모두 쑥이 들어갔다. 제일 많이 나가는 절편과 인절미는 물론, 송편에도 쑥이 빠지면  되고, 제주 향토음식인 오메기 떡은 쑥이 없으면 아예 맛을   없었다. 그러니 엄마는 봄이 되어 쑥이 올라왔다는 소문이 들리면 틈이  때마다 쑥을 캐러 다녔다. 봄마다 엄마의 몸에는 그렇게  닮은 푸른 멍이 여러 군데 들었다.   


“쑥은 바람이 어루만지는 그늘에서 천천히 말려야 향이 오래 간다.”     


<그늘에서 말리는 쑥>

이제는 방앗간을 하지 않으니 힘들게 쑥을 캐지 않아도 되는 데, 엄마는 한결같다. 누구보다 이른 봄에 산으로 들로 나가 쑥을 캤다. 그렇게 부지런히 캔 쑥을 엄마는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널었다. 햇빛에서 말리면 향이 사라지고 색이 바랜다고 엄마는 널고 걷기를 반복하며 그늘에서 천천히 말렸다. 창을 열면 알싸한 쑥 내음이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의 기지개를 활짝 펴고 쑥쑥 올라오는 희망의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엄마 말대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늘에서 바람이 정성껏 어루만진 쑥은 일 년 내내 봄에 품은 향을 간직했다. 그리고 우리의 봄에는 항상 엄마가, 그리고 엄마의 ‘쑥’이 있었다. 엄마가 고집하는 느리고 답답한 옛날 방식이 오래오래 한결같은 향과 맛을 낸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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