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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Oct 13. 2022

몰타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아직도 그리워합니다.

30. 내가 만난 몰타인 그리고 우기

  몰타의 여행 극성수기는 언제일까? 봄 아니면 여름인 것은 분명하다. 몰타에서 1년을 살아보니 듣던 대로 1년 중 300일 이상이 화창했다. 덕분에 살짝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도 바깥에 나와서 잠시 걸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몰타에 왔을 때는 12월 말이었는데 체감상 우리나라의 늦가을 날씨였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조리를 신고 다니는 알 수 없는 패션이 가능한 날씨랄까. 그러나 1년살이를 하러 2월 말에 몰타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너무 추웠다. 바닷바람이 피부를 콕콕 찔렀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어느새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꽃이 피고 아침, 저녁의 일교차가 큰 한국의 봄의 기준과 달리, 따뜻한 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바닷물이 '여름이 오기 전이니 지금은 봄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몰타의 여름은 한국처럼 6월부터이다. 화창한 날씨에는 햇살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피부도 타고 눈도 부시지만, 집에 있기에 몰타의 여름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반짝이는 윤슬 속에서 수영을 하고, 노을을 보며 삼삼오오 모여서 바비큐도 하고, 밤새 별을 세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몰타의 여름을 나는 잊지 못한다.

  9월이 지나자 어느새 살결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차가워지더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카디건을 입게 되고 바다보다는 산을 찾아 트레킹을 하곤 했다. 여름보다 가을을 훨씬 좋아하는 사람인데, 몰타의 여름을 보내려니 너무 아쉬웠다. 그만큼 여름이 준 선물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몰타의 가을에 익숙해지자, 11월이 찾아왔고 11월에는 지겹도록 비가 내렸다. 누군가 11월에 몰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3분 거리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실 때마다 했다.

  몰타에서 1년을 살았지만, 몰타인보다는 세계 각 국에서 건너온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몰타인이 여러 명 있다. 그중 한 명은 나의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이다. 그의 고향은 몰타 본섬이 아닌 고조 섬이고, 나라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중년의 남자였다. 나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집세를 깎는데 한몫을 했으며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 동네 투어를 해주었다. 덕분에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 집과 수수료가 적은 ATM기를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이들은 앞집에 사는 할아버지와 부부이다. 할아버지는 나처럼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길 고양이 밥을 줄 때마다 마주쳤다. 부부는 할아버지의 아들 부부로 추정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검은색 강아지 두 마리 산책을 시키곤 했다. 부부 중 아저씨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한국에서 도어록을 쓰다 몰타에 오니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이 어색했다. 어색하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을터, 하지만 내가 살던 곳은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다시 말해 오래된 건물 구조에 내부만 새로 인테리어를 한 집이었다. 그래서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은 확실한 요령이 필요했다. 그 요령을 터득하고 열쇠를 두고 나가는 것만 조심하면 되는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벌레가 자주 들어와 문짝 아래에 스펀지를 깔아 둔 것이 화근이었다. 실컷 놀고 와서는 집에 들어가려고 열쇠로 문을 열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해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도움을 청하려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2층에서 할아버지가, 바로 뒤에서 아저씨가 '쟤, 뭐 하는 거지?"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그렇다. 몰타 사람들은 무심하다. 그래서 좋다. 원하지 않는 친절은 없다는 의미이다. 아저씨를 발견한 나는 곧장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개 두 마리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계시던 아저씨는 바닥에 강아지들을 내려놓고, 우리 집 열쇠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문은 쉽게 열리고 말았다. 민망해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아저씨는 문을 다시 잠그고는 내게 열쇠를 다시 건네고, "네가 열어봐!"라고 말하셨다. 이어서 "네 집이니까, 네가 열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고 함께 옆에서 '쉽게 문을 여는 법'에 대해 설명하셨다. 아저씨의 스파르타식 친절에 놀란 나는 역시나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나는 그날 들어오자마자 문 밑의 스펀지를 제거했다.

  몰타는 사실 여행을 오면 일주일 안에 웬만한 곳은  둘러볼  있는 작은 섬나라이다. 그런 곳에 나는 3주나 살고 나서 1년을  살겠다고 다시 다녀왔다. 그리고 여전히 몰타를 그리워한다. 왜일까. 우선 몰타에 머무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 곳이라 유럽 여행을 다니 다보며  보던 노숙자가 없다. 그리고 높은 건물이 없고,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실컷 보며 걷기 좋은 나라이다.

  그래서 아직도 몰타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아련해진다. 다시없을 이 기억의 조각들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도, 영상도, 글도 많이 찍고 적었다. 글을 적는 현재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문득 몰타의 청명한 하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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