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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Feb 27. 2021

학생 신분으로 37억 투자 이끈 여성 CEO

<드라마 없는 스타트업>     


 창업 3년 차인 27세 대학원생. 정부 과제, 민간 투자를 통틀어 총 37억 원의 투자 유치.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도전 K-스타트업 준우승.      


 창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세상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게 된 D 대표. 인터뷰하러는 가는 길 내내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창업 직후 승승장구만 해온 평탄한 스토리에 자칫 기사가 밋밋하게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 과연 위기란 것이 있을까? 희로애락이 들끓는 드라마는 있을까?    



       

<오로지 기술력 하나로!>

    

 확실히 다른 회사와 차이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MZ세대 대표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던 특징인 트렌디함이나 철저한 분석에서 기인한 사업 기획, 혹은 마케팅적 요소는 오히려 없었다는 것이다. 업체의 우수성은 오로지 기술력에 있었다. 그런데 기존에 있었던 것 대비 조금 좋은 기술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었고 이는 D 대표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했다.


 D는 내시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초소형 현미경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해당 분야의 원천 기술을 개발해 왔다. 실제 의료 현장에 적용이 되면 암 수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암수술 현장에서는 환자 몸의 어느 부위까지 암이 퍼져있는지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수술 도중 조직 검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위해 조직을 떼 내어 병리실로 보내게 되는데 그 처리 과정이 수십 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D가 개발 중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게 되면, 즉 수술 도중 초소형 현미경을 몸의 특정 부위에 갖다 대기만 하면 세포 수준의 이미지를 바로 획득할 수 있어 지체 없이 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이는 마침 의료 현장에 필요했던 기술이었기에 00대 신경외과 교수가 D에게 먼저 기술 이전을 요청해 왔다. D는 이때,  지도 교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조언에 힘입어 단순 기술이전이 아닌 창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2016년 12월, 그렇게 D학생 신분으로 한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스타트업이 겪는 공통된 위기>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휩쓸며 대대적인 투자 유치를 이끌고 있는 D. 이 회사에 도대체 위기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우리는 늘 위기예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업하면서 부딪히는 모든 면이 어렵단다. 창업이라는 냉혹한 현실 세계에 놓여있는 대표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기에 이 챕터에서는 D 대표의 말을 빌려 정작 창업을 하면 무엇이 위기로 작용하는지, 특히 혁신 기술 스타트업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1. 기술 기반 창업가가 놓치기 쉬운      


 과학자나 연구원 출신의 기술 기반 창업자들은 ‘이 아이템이 얼마나 새로운가? 기존의 성능과 비교해 얼마나 탁월한가?’에 중점을 두지만 정작 사업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따로 있다. 단순히 공학적인 기능을 넘어 제품의 디자인, 가격, 마케팅 등 훨씬 신경 써야 부분이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또한 이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기에 우수한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경영적인 측면에서 분명 한계를 느끼게 된다. 사업의 성장과 지속성을 위해서는 결국 경영자로서의 능력도 함께 키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2. 혁신적이기만 하면 다 좋을까?     


 내 아이템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해서 무조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기술이 획기적으로 뛰어나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기존에 없던 개념이기에 시장을 설득하는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또한 사회가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관련 법규가 없거나 혹은 규제의 장벽에 가로막혀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D 회사의 경우 제품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혁신 기술의 개념을 설득해야 했기에 더욱 큰 어려움이 따랐다. 게다가 대상은 보수적인 의료계였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혹여나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때 발생하는 파장이 적지 않기에 99% 확실한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많은 임상과 인허가 단계를 거쳐야 하고 여기에 많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는 신생 스타트업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즉, 세상에 없던 기술로 세상을 설득하는 것은 세상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 어렵다.



3. 가장 어려운 ‘사람’      


 모든 스타트업들의 공통적인 숙제는 ‘사람’이다. 우선 구하는 것이 어렵다. 어렵사리 인재를 구한다고 해도 함께 지속해서 일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매출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이름마저 낯선 회사에서 단지 미래의 발전 가능성만을 보고 속 편히 붙어 있을 인재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러한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 주인정신을 갖고 일하게 하는 것. 사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표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향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일을 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D의 경우 창업 후 1년 정도는 혼자 일을 진행하다 2년 차에 접어들어 3~4명의 직원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 과제인 팁스(TIPS)를 하고 있었는데 한창 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발자 2명이 회사를 나간다고 했다. 앞이 캄캄했지만 이미 마음 떠난 직원을 붙잡을 재간이 없었다. 이후에도 사람이 도통 구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평소 내성적이었던 그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핸드폰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 연락해 본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해달라고 읍소했다. 대학원생으로서 교수들은 무척 어려운 대상이었지만 한번 본 교수들에게도 소개해 줄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명함을 돌리며 사람을  구해달라고 매달려야 했다.            




<드라마 ‘스타트업’의 낭만은 현실 세계에 없기에>     


 수많은 성공 기업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잘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리고 또 하나는 ‘창업은 절대 함부로 하면 안 되는구나.’였다. 소위 잘 나가는 기업들의 대표들을 만남에도 불구하고 CEO들의 고충과 무게감을 전해 듣고 나면 창업은 결코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선택지임이 분명해졌다. 그저 운이 좋아 잘 풀리는 것 같아 보이는 회사들에도 감춰진 성공 비결과 혀를 내두를만한 노력들이 켜켜이 숨겨져 있었다. 또한 순조롭게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은 기업들에도 숱한 고난과 어려움이 늘 상존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업이다. 그러니 근거 없는 희망과 낙관으로 호기롭게 창업에 뛰어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이 사례를 빌려 예비 창업자들에게 꼭 하고 싶었다.       


 회사 대표가 되면 내 시간과 내 일을 주도적으로 컨트롤하며 한껏 폼 나게 살 것 같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가장 혹독하고 치열하게 일하며 가장 늦게까지 야근하는 직원은 대표인 나, 혼자뿐이다.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사항들(직원들 근퇴, 복지, 세금 관련 문제 등)을 챙기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돼 정작 진짜 일을 할 시간은 늘 부족하다. 자금은 더 부족하고 사업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시스템을 갖추며 사업을 빌드업해나가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고 사람은 언제나 구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직관을 따르며 창업할 용기가 있다면, 반드시 창업을 해야만 한다면, 드라마틱한 성공을 꿈꾸기 전에 ‘나에게 맞는 성공 방정식’을 우선 찾기를 바란다. 여기서 방점은 ‘방정식’이 아니라 ‘나’에 찍혀있다. 수많은 변수들이 살아 움직이는 창업의 세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수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아는 것, 내가 어떠 때 최대의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고 혹은 그 반대인지, 어떤 때에 성공하고 어떤 때에 실패하는지, 나의 성질과 경쟁력을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 이것이 내가 100인의 성공 기업인에게서 발견한 공통된 특징 중 하나였다.  

     

 D와 관련한 글을 쓰며 그와의 인터뷰(2019.12) 이후의 근황을 찾아보다 <세바시>에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강연에서도 ‘사업은 설득의 과정’이었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여기서 설득의 범위가 인터뷰 당시에 거론한 투자자를 넘어 직원과 고객, 사회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궁극에는 나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나에 대한 확신이 들자 이는 회사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그간 그가 겪었을 성장통을 가늠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한 걸음 더 자신의 성공 방정식에 가까워진 D처럼 창업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나만의 성공 공식과 해답을 빠른 시일 내에 찾기를 바란다. 지금 바로 내 안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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