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 유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쓸 Aug 31. 2023

성장판 검사는 필수... 이상한 '키 공화국'의 아이들

성장판 검사를 지원하겠다는 대전시의회 조례안에 부쳐


“요새 애들한테 성장판 검사는 건강 검진 같은 거야.”


아이 친구 엄마의 말이다. 아이는 유치가 일찍 빠지기 시작했다. 치과 의사는 아이의 유치가 빠진 것에 놀라며, 성조숙증과 관련 있을 수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성조숙증이 오면 키가 안 큰다는데…. 키, 성장호르몬 주사 같은 말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초등학교 입학 후 대다수의 아이들이 통과의례처럼 성장판 검사(엑스레이를 통해 골연령을 확인하는 검사)를 받는다는 것도, 주위의 ○○와 □□도 성장호르몬치료를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동네 소아과 복도의 홍보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크겠지’, ‘우리 아이는 또래보다 키가 커’ 안심하다가 성장판이 닫혀버려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원장님과 상담하세요!”


ⓒ pixabay


대한성장의학회가 소개하는 ‘유전에 의한 예상 키 공식’은 이렇다. 남자의 키는 (아버지의 키 + 어머니의 키 +13cm) /2, 여자의 키는 (아버지의 키 +어머니의 키 – 13cm) / 2. 그렇다면 키는 유전이 전부인가? 대한성장의학회는 물려받은 키가 작더라도 영양, 운동, 환경, 수면 등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비유전적 요인에 따라 최종 키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비유전적 요인’의 정점에는 성장호르몬치료가 있다. 과거에는 성장호르몬이 결핍된 경우에 투여했지만, 현재는 그와 관계없이 ‘키 크는 주사’로 대중화되어 있다. 성장호르몬주사와 성장호르몬억제주사를 동시에 맞춰서, 성장을 촉진하면서도 2차 성징이 빨리 오지 않게 대비하기도 한다. 


비용이나 부작용이 염려되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대체제가 있다. 한의학 치료, 키 성장 건강기능식품, 마사지…. 키 성장 건강기능식품은 4년 만에 10배가량 매출이 급증(2021년 식약처 자료)할 정도로 시장이 팽창했다. 이 식품들은 식약처에서 승인한 황기추출물 등 복합물(HT042)을 함유해 키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홍보하나, 식약처 승인은 생리활성기능 2등급(‘소수의 임상시험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없음’)에 불과하며, 이 임상시험 결과가 믿을 만하고 지속적인 효과가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키가 투자와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되면서, 키는 가족적 프로젝트가 되었다. 성장클리닉, 한의원, 의약품 시장은 자녀의 키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주체로 어머니를 호명한다. 이제 한국의 어머니는 아이의 성적을 관리하고 학원 스케줄을 짜는 와중에, 자녀의 키를 관리해야 한다는 과제까지 떠맡았다. 어머니가 이 과제에 적극적으로 공모하는 사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키 많이 컸네”. “그렇게 하면 키 안자란다!‘와 같은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자신의 몸을 타인과 비교해 검열하고 관리하며, 서열을 나누는 것에 익숙해졌다. 


계급(모든 부모가 자녀의 성장치료에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과 젠더(키가 ’지나치게‘ 큰 여성은 선망의 대상을 넘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와 한국적 모성(키 관리는 ’조기교육‘의 영역이 됐다)이 뒤엉킨 키의 전장에서,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루저가 된다. 키 관련 의학‧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키가 계급 상승 혹은 재생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스펙으로 기능하는 한. 오늘날의 “극심한 키 경쟁은 극소수의 승자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신자유주의 체제와 닮아있다.”(박소연(2011).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키 담론 연구 – 키 소수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전공 석사논문)


7월 20일, 전국 최초로 학생 키 성장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대전시의회 조례안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조례안에는 키 성장 맞춤형 급식 식단이나 운동 프로그램뿐 아니라, 성장판 검사를 지원하는 내용까지 담겨있다. 극심한 키 경쟁을 멈추자고 말하는 대신, 정치권에서 먼저 “대전 학생 평균키 1cm 향상 프로젝트, 아이들의 숨은 키를 찾아드리겠다(김영삼 대전시의원)고 제안하는 이상한 키 공화국. 이곳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대전시의회 김영삼 의원의 홈페이지 - 대전광역시교육청 학생 키성장 지원 조례안이 첨부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검은 색 옷은 싫어, 핑크색 옷 입을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