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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Nov 30. 2023

이 시대에 연루된 채, 오염된 채 떠들어대기

도우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배민맛이란? 문 앞에 배달된 음식을 집 안에 들일 때부터 풍기는 뜨거운 비닐 기름 범벅 냄새를 맡으며, 배달 음식의 포장 비닐을 대충 찢어내 유튜브를 보며 허겁지겁 먹고, 남은 소스나 밑반찬이 아까워서 깨작거리다 과식하게 되고, 지하철 역사를 가득 채운 냄새에 이끌려 산 델리만쥬마냥 막상 다 먹고 나면 그렇게 맛있지 않아 실망하고, 버리기 전 퐁퐁을 가득 짜 헹궈봐도 고추기름이 번들거리는 빈 플라스틱 용기들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이젠 정말 배달 음식 끊어야지’ 결심하기까지가 모두가 배민맛이다.” 43쪽 (2장 배민맛)


“이런 방 이미지 노출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이런 문장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베개 커버 정도는 바꿔도 되지 않을까?’ 연이어 그놈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카피가 귓가를 속삭였다. 소비를 합리화하는 데 기가 막히게 효과가 좋은 자본주의 악마의 속삭임 말이다. ‘그럼 누울 때 기분이 좋고, 그러면 수면의 질도 높아질 거야…. 사느라 고생하는 나에게 이 정돈 괜찮잖아?’ (...)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단지 베개 커버 하나를 산 게 아니었고, 인테리어 소비에 관한 욕망의 경로를 충실히 개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내 공간을 위해 돈을 쓰는 건 나를 위하는 일이며, 실제로 썼을 때 행복 비스무리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누구나 예쁜 집에 살고 싶어 하고(뒤집으면, 누구나 못생긴 집에 사는 걸 견디기 어려워졌고), 그래서 소비에 죄책감이나 찜찜함을 덜 가지는 사람이 됐다는 말이다.” 68, 70쪽 (3장 방꾸미기)



이런 문장들에 흠칫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긴 하겠지. 남해로 귀촌한 친구에게 배민 앱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는 우리집에 놀러 왔다가 치킨이 아직 뜨끈한 채로 배달오는 것에 감동했다. “집에서 식지 않은 치킨을 먹을 수 있다니!” 남해에 사는 친구, 배민이나 오늘의집 앱을 모르는 엄마 아빠는 이 문장들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도시에 살거나 비교적 젊은(?) 층이면서도 이 문장들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에, 그만큼 시대의 조류에서 빗겨나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 문장들에 흠칫 놀라고 키득대고 서늘함을 느낄 수 있어서, 안도했다.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요가를 하는 나가 드러내고 싶은 나라면, 온수매트 틀어놓고 누워 유튜브 예능이나 다음 카페 인기글을 보며 키득대는 나, 애가 죽어라 안자는 날 애 재우고 거실에 나와 곱창볶음을 시키는 나, “그놈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카피가 귓가를 속삭여”(68쪽) 원목 컵받침을 사고 만 나는 감추고 싶은 나다. 이 감추고 싶은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보편적인 얼굴이기도 하다. 감추거나 ‘내일부터는!’ 다짐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무언가 시작될 수 있는 이유다. 


어제의 배민맛


저자의 취약함이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야’나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아닐거야’ 라는 방식 말고)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글, “나도! 나도!” 맞장구치며 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글,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다. 도우리는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등의 키워드로 중독 문화를 풀어내고, 그에 연루되어있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있잖아, 나도 그랬는데!”라며 조잘거리고 싶어지고, 감추고 싶은 나의 얼굴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화가 나고, 무언가 함께 모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대에 연루된 채로도, 오염된 채로도 말이다. 


도우리는 나의 글쓰기 선생님이다. 지난 봄 8주간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7편의 글을 썼고 그의 사려깊으면서도 디테일한 피드백을 받았다. 한동안 글을 쓸 때마다 그의 반응이 어떨까 생각했고, 그의 피드백 메일을 확인하려고 설레하며 메일함을 들락거렸고, 그가 풀어내는 논문과 책들을 헉헉대며 따라갔고, 강의가 있는 목요일 밤이면 읽을 것도 쓸 것도 많은 현생이 즐거워 잠이 안왔다. 


나의 글쓰기 선생님이자 해사한 청년의 얼굴을 한 그가 중독이라는 키워드로 청년 문화를 꿰어내고, 보편적인 언어 대신 유행어와 밈을 섞어 뻔뻔한 톤을 만들고, “이 책에 나의 너무 많은 것을 투사해버렸다”(225쪽)고 말할 정도로 기꺼이 중독자가 되어 글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분투가 있었을까. 채널 예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분투의 과정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https://ch.yes24.com/Article/View/52379


책의 에필로그에 '2019년에 한겨레 르포 작가상 수상 이후, 2년간 책을 집필하며 글쓰기 방식을 바꿨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떻게 글쓰기가 변화했는지 궁금합니다.


더 불순해지려 했어요. 『에바 일루즈에 소개된 미국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불순한 비평(impure critique)' 개념이 큰 길잡이가 되어 주었는데, 일루즈는 전통적인 비평을 순수한 비평(pure critique)이라고 명명하면서, 문제의 제 3자로서 거리두는 입장의 한계에 대해 지적해요. 그 문제의 당사자로서, 그 구조와 부대끼며 쓸 때 오히려 더 첨예한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 팔에 낀 팔짱을 풀어내고, 중독 문화의 더 적극적인 내부자가 되어봤어요.


그러면서 제도 등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도 내려놓았어요. 물론,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제가 쓰는 글의 주된 역할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주목하게 하고, 사람과 사회가 말하게 하는 것. 그러려면 글이 살아 있어야 하죠.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어렵거나 재미가 없으면 안 읽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처럼 칼럼인데 에세이 같기도 하고, 카톡 대화말이나 커뮤니티 댓글처럼 가벼우면서 학술적이기도 한, 혼종적인 쓰기를 지향하게 됐어요.



그 분투의 결과물이 너무 멋져서, 나도 모르게 내뱉는다. “도우리 개어림 존나 어린데 책도 존나 잘 쓴다니 개대단”  (저자 후기에 친구가 해줬다는 말 “도우리 개어림 존나 어린데 책도 쓴다니 개대단”을 약간 바꾼 것) 그는 저자 후기에서 이 책이 “근사한 코트 하나쯤 살 만큼은 잘 되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책은 더 나은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그의 책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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