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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Feb 04. 2024

나쁜 부모의 계보학_육아는 어떻게 과열되는가

헬리콥터에서 돼지, 벌레(충), 괴물(몬스터)에 이르기까지


과열된 육아의 세 가지 측면


진상 부모나 몬스터 페어런츠와 같은 ‘나쁜 부모’에도 계보가 있다. 1990년대에는 ‘헬리콥터 부모’가 있었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 주위를 빙빙 도는 것처럼 지나치게 아이에게 간섭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로, 미국에서 자녀 발달 연구가인 포스터 클라임과 짐 페이가 1990년에 소개한 말로 알려졌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한 어린이가 납치‧살해된 사건이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되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동아시아 나라들과 비교해 아이들의 학업 성과나 숙제가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었으며, 성과보다 개성을 존중하는 자존 운동이 유행했다.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를 쓴 줄리 리스콧-헤임스는 이런 흐름 속에서 유년기 자녀들의 안전을 의식하고 학업 성취도에 초점을 맞추며 자부심을 키워주고, 나아가 모든 일에 일일이 관심을 기울이며 점검하는 식의 양육 방식이 일반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부모는 이제 자녀 주위를 빙빙 도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헬리콥터 부모에 이어 잔디 깎는 기계, 울퉁불퉁한 길을 다듬는 불도저, 눈을 치워 깨끗한 길을 만드는 제설차처럼 자녀의 어려움을 제거해주는 '잔디깎기 부모', ‘불도저 부모’, ‘제설기 부모’ 가 등장했다. 헬리콥터, 잔디깎기, 제설기, 불도저 등 맹렬한 기운(?)을 풍기는 이 기계들에는 ‘극성’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지금부터 살펴볼 나쁜 부모의 계보학에도 일관적으로 과열된 육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그렇다면 육아가 어떤 면에서 과열되었다는 건가? 나는 위에서 인용한 줄리 리스콧-헤임스의 문장에서 힌트를 얻어, 과열된 육아의 양상을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해보았다. 첫째 안전, 둘째 학업 성취, 셋째 자존이라는 측면이다. 



돼지에서 벌레, 괴물로


미국에서 부모가 자녀 주위를 빙빙 돌며 장애물을 깎고 치우고 다듬어주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돼지 엄마’가 유행어로 등극했다. 돼지 엄마는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도 능통해서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를 일컫는 말로, 국립국어원이 2014년 신어로 선정했다. 새끼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동물은 돼지만이 아닌데 왜 하필 돼지인지는 모르겠지만(돼지야 미안해!), 돼지 엄마는 학업 성취 측면에서 과열된 부모로 볼 수 있다. 


2010년 중후반은 ‘맘충’의 시대였다. 맘충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공격할 수 있는 ‘마법의 언어’지만(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가? 맘충!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브런치를 먹어? 맘충!), 아이가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을 때 이에 대해 훈육하거나 제지하지 않는 태도를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이러한 비판에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 어른 위주로 구획된 공간에 대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마땅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훈육 부재라는 현상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자존이라는 측면의 과열로 일부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2023년, 한국에 몬스터 페어런츠 담론이 상륙했다. 이 담론 속 양육자는 학업 성취도에 집착하면서도 자존 운동의 영향으로 자부심을 키워주는 방식의 육아를 한다는 점에서, 학업 성취도와 자존 두 측면에서 과열된 부모다. 


나쁜 부모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거나 아이의 식사도 챙기지 않고 방치하는 부모를 떠올린다. 실제로 그런 부모의 비율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쁜 부모로서 유행어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과열된 육아를 하는 부모다. 아이가 안전한 환경에서 공부도 잘하고 자존감도 높은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부모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부모다. 과열된 육아에 대한 문제의식은 커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쁜 부모는 자녀 근처를 빙빙 도는 것에서 자녀 앞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벌레에서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가 그토록 추앙하는 북유럽에도 ‘컬링맘’(스톤이 잘 미끌어지도록 열심히 빗질을 하는 컬링처럼 자녀 앞의 장애물을 치우고 진로를 설계하는 부모)이 있다. 나쁜 부모의 계보학은 과거에 아이를 골목에 풀어놓고 키우던 과거와는 오늘날의 육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과열의 세 측면 중에서 유괴, 사교육 시장의 성행 등 맥락에 따라 하나의 측면이 더 과열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BS 다큐프라임 캡처 https://www.youtube.com/watch?v=0vUpTIzmQn0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하길 바라는 욕망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를 학원에 실어나르는 데 많은 시간을 쓰거나 유리한 입시제도를 관철하기 위해 항의 전화를 돌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십 년 뒤의 나, 보고 있나?)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의 학업 성취라는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벗어나기 쉽다고 느낀다. 반면 내가 벗어나기 힘든 유혹이 있다. 자존이라는 측면에서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욕망이다. 이 소박해보이는(?) 욕망은 때때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며칠째 늦게 들어가느라 아이 얼굴을 보지 못했을 때, 아이가 친구에게 놀잇감을 양보하고 집에 돌아와 의기소침해할 때, 아이의 친구들이 “너희 집은 왜 이렇게 작아?”라고 물을 때, 나는 아이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자주 허둥댔다. 쿨한 엄마는 애초에 불가능한 거라 해도, 끈적끈적하고 맹렬한 것이 사랑의 본질이라 해도, 이렇게 허둥댈 건 없잖아? 


자존이라는 측면의 과열에는 소위 말해 ‘진보적인’ 부모가 더 취약할 수 있다. 애초에 자존감 운동은 진보의 기획이었다. 자존감 유행에는 여러 기원이 있지만, 미국에서 이것을 학교 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한 것은 민주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의회 의원 존 바스콘셀로스다. 바스콘셀로스는 여러 뉴에이지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자존감 연구의 선구자’ 너새니얼 브랜든의 영향을 받아 자존감 상승이 교육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주장했다. 이 아이디어는 정부 지출에 민감한 보수주의자에게도 잘 먹히는 것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항문화적 정서를 가진 진보주의자의 작품이었다.(제시 싱걸, 『손쉬운 해결책』 참고)


육아에 있어서 지나친 자기성찰은 독이라는 걸 안다. 육아에 전문가가 개입한 이래 육아는 늘 자신만만해서는 안되는 일, 반성하고 의심해야 하는 일, 전문가의 조언에 현명하게 귀 기울여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아이를 재운 밤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질문을 막을 길이 없다. 진보적인 부모이자 아이의 학업 성취에 집착하지 않는 엄마이기를 바랐던 나는, 자존이라는 측면에서는 육아 ‘과몰입러’가 아니었을까? 육아가 과열될수록, 아이에게 전전긍긍할수록, 아이의 문제로 밤잠을 뒤척일수록,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수록, 우리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아닐까? 나쁜 부모의 계보학을 살펴보다, 내가 빠져버린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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