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른둥이 맘카페에서 일어난 일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맘카페 가입이었다. 미역국 흡입도 아니고 출산 소식 알리기도 아니고, 맘카페 가입이라고? 임신 29주만의 출산이었다. 나는 나같은 사례를 필사적으로 찾고 싶었다. 모두가 임신 40주만에 아이를 낳는 건 아니라는 걸,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싶었다. 고작 그것뿐인 앎이 절실해서, 마취가 덜 풀린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렇게 국내 최대 맘카페의 ‘이른둥이방’ 게시판을 알게 되었다. (이른둥이는 임신 기간 37주 미만, 혹은 몸무게 2.5kg 이하로 출생한 아기를 부르는 말이다.)
이른둥이방에는 이른둥이를 낳은 엄마들의 다급한 질문들이 많았다.
“오늘 출산해서 아이가 신생아중환자실에 갔는데 뭘 준비해야 하나요?”
“아이에게 뇌출혈이 있다는데 걱정이 되어서 잠이 안와요.”
이른둥이방에는 나처럼 덜컥 이른둥이를 낳은 ‘새내기’들에게 친절히 댓글을 달아주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죄책감과 혼란, 두려움 속에서 더듬더듬 첫 글을 썼을 때도, 그들은 장문의 댓글을 달아주었다. 악몽 같은 출산이었지만 시간은 흐른다고, 아이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잘 견딜 거니까 걱정 말고 몸조리 잘하라고, 출산을 정말 축하한다고. 나오지도 않는 모유를 짜내느라 덩그러니 깨어있는 새벽이면, 나는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나와 같은 시간을 버텼고 버티고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새 나는 이른둥이방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고 만 것이었다.
언제부터였지? 이른둥이방의 주축 멤버들이 이른둥이맘 카페를 새로 만든 게. 이른둥이방은 대형 맘카페의 한 게시판에 불과했기에 만삭맘이나 예비맘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이른둥이맘 카페를 만들자, 많은 이른둥이 엄마들이 ‘드디어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언제부터였지? 이른둥이맘 카페의 운영자가 공구(공동구매)를 시작했던 게. 시작은 수면조끼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복, 이유식 식기, 유아차 등의 공구용품이 등장했다. 그곳은 이른둥이맘 카페인지 육아용품 공구카페인지 알 수 없게 변해갔다.
수많은 맘카페가 그러했듯, 이른둥이맘 카페는 돈이 됐다. 아이를 낳고 운신의 폭이 좁아진데다 개월별로 사야할 육아용품이 끊이지 않는, 게다가 ‘아이를 일찍 낳았다’는 공통의 정체성으로 똘똘 뭉친 이 엄마들은 누구나 탐낼 만한 소비집단이었다. 회원들은 공구를 진행하는 운영진에게 “고생하신다”, “늘 애써주셔서 고맙다”는 댓글을 달았고, 문제를 제기하느니 조용히 떠났다.
우리는 운영진에게만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듣고 싶은 말만 해줬다. 너는 정말 잘 하고 있어, 애는 잘 클 거야, 걱정하지마…. 그 말들은 공통의 상처를 가진 우리를 일으켜 세웠고, 또 주저앉혔다. “맘카페라는 세계”의 저자 임경섭은 맘카페 특유의 화법을 “둥글둥글함”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맘카페 이용자들끼리 서로를 향한 불편함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구성원끼리의 약속”(126쪽)으로, 각종 쿠션어, 논쟁이 있을 때 “이 공간에서만큼은 날선 표현은 보고 싶지 않아요”, “애 키우는 엄마가 쓴 글이 맞나요?”라는 표현으로 드러난다. 이 둥글둥글한 언어는 이른둥이맘 카페에서도 대세를 이루었고, 논쟁을 일으키기보다는 침묵하거나 탈퇴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결정적인 몰락의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쌓일 대로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많은 이들이 카페를 탈퇴했고, 그 후는… 잘 모르겠다. (카페의 변화와 함께 아이 돌이 지나면서 나는 유령회원이 된지 오래였다.)
내가 가입했던 이른둥이맘 카페의 몰락에는 맘카페의 상업화, 논쟁을 두려워하는 둥글둥글한 언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맘카페라는 세계”에서 지적한 대로, 이 흐름은 내가 가입했던 카페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프게 지적하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이른둥이 엄마라는 비주류적 존재들의 연대에서 어떤 희망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몇 주를 더 버텨 출산한 이들을 맹렬하게 질투했다. 고위험산모실에 누워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외치던 내게 앞자리 3은 꿈의 주수였기에. 그들이 걱정의 글을 올리면 “이보세요, 주수도 좋으면서 뭘 걱정하세요!”라고 대꾸하고 싶었다.
이 보이지 않는 주수 싸움은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주제였다. 주수가 예후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때가 많으므로, 이런 말을 가까스로 참거나 애둘러 뱉었다. “그 정도면 솔직히 이른둥이라고 하기 힘들지 않아요?” 상대적으로 만삭에 가까운 주수의 엄마들은 이런 말을 참거나 뱉었다. “하루라도 더 품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은 모두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고통에 위계가 있나요?” 아이가 자랄수록 주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진단명, 발달 문제가 촘촘하게 우리를 나누었다. 나의 아이와 같은 주수에 태어난 아이가 벌써 네발 기기를 한다는 글을 보았을 때의 박탈감, 만삭에 가까운 주수지만 나의 아이에게는 없는 진단명을 가진 아이 앞에서의 안도감과 죄책감과 조심스러움...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서로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고통은 각자의 것이고 서로가 짊어질 수 없는 거니까. 우리 사이에는 주수와 진단명 등으로 갈리는 심연이 흘렀다. 이 심연을 일시적으로 봉합한 것은 아이를 일찍 낳았다는 공통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이 공통의 정체성은 또다른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가능했다. 우리는 이른둥이 엄마로 스스로 정체화하기 위해 예비맘, 만삭맘과 우리를 구별지었고, 조기진통으로 조산 위협에 있는 예비맘이나 (이른둥이방에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은) 뇌 관련 진단명이 있는 만삭맘을 커뮤니티에서 배제했다.
애초에 아이를 일찍 낳았다는 정체성으로 뭉치기에 우리는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었다. 23주에 아이를 낳고 발달 문제로 가슴 졸이며 매일 재활치료를 다니는 이와 비장애아를 키우는 이, 공구 물품을 턱턱 살 수 있는 이와 그럴 수 없는 이, 아이가 셋인 이와 하나인 이, 대형 대학병원이 근거리에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조건은 결코 같을 수 없었다. 이토록 다른 '맘'들이 모여, 나의 짧은 한 시절을 지탱해주었다. 맘카페의 상업화와 맘카페 특유의 화법, 고통의 개별성이라는 연대 불가능성의 조건들 속에서. 이들의 닉네임이 뭐였더라,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