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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ul 11. 2024

피해의 이야기를 피해자스럽지 않게 하기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 출판 뒷얘기3


내가 한 권의 책에서 끝끝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거다. “거, 엄마 노릇 드럽게 힘드네….” 이 짧은 문장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기 위해 나에게는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나는 나의 ‘피해’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것도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의 피해의 이야기를.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속삭였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기혼 유자녀 여성의 피해 이야기가 많이 나왔잖아. 기존의 이야기들과 뭐가 달라? 너무 뻔하지 않아?’ 나의 대답은, 그동안의 기혼 유자녀 여성 이야기들이 주로 조명하지 않았던 것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성별 분업, 일과 가정 양립, 평등을 향한 분투 같은 것들과는 조금 다른 주제에 대해 쓰고 싶었다. 각자에게 절실한 삶의 주제는 당연히도 각자 다르다. 나는 이 시대 엄마를 향한 명령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차 있는가에 대해 쓰고 싶었고, 조산과 이력 등의 여러 조건상 내가 그것들을 증언하기에 적격이라(?) 믿었다.


피해를 이야기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사회와 제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무기력한 개인을 형상화하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자율적인 선택을 하는 주체적 개인(자유주의)도 아니지만, 사회구조 속에서 옴싹달싹못하는 피해자(구조주의)도 아니다. 나는 사회 구조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사람이고 싶었다. 순응과 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서, 구조를 따져 묻고 내가 얼마나 그 구조의 일부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씩 변해갔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구조주의적 방식이었다. 


구조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려고 해도, 그걸 쓰는 과정에서 불쌍한 나 자신에 취해버릴 때가 있다. 정희진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극도의 능력주의와 피해 서사가 공존한다. 흔히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불리는 이 문제는 글쓰기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다시 묻는다.” 모두가 자신의 피해를 과시하는 시대, 그게 또다른 셀프브랜딩이 되는 시대, 나의 피해의 서사가 자아를 강화하는 방식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의 방법은 글의 톤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쓴 글은 감정을 거의 뺀 건조한 톤이었다. 건조한 톤은 내 이야기가 신파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 분투의 결과였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조산이라는 사건으로 글을 시작할 때 나는 자기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자기연민을 감추기 위해 반대의 톤으로 갔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고, 글을 썼다 지웠다 하는 과정에서 내게 시야 혹은 해석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기고 있었다. 거리감을 가지고 내가 겪은 사건들을 바라보자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나는 꽤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친구가 나의 유머는 장도연과라고 분류해주었다!) 이 유머러스함을 살리는 것이 피해의 이야기를 침울한 피해자의 형상으로 각인하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은 내용을 어떻게 채워넣을 것이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톤을 조절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하니까, 혹여 뇌 손상이 있더라도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면 잘 자랄 수도 있다고 하니까……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퇴원하면서 산 유명한 발달 전문가의 책에는 시각 발달을 위해 “엄마의 얼굴 표정과 옷이 아기에게 즐거운 시각 자극이 되도록 입술에는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에 예쁜 핀을 하나 꽂고, 작은 크기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 것을 권한다”4고 쓰여 있었다. 립스틱을 바르고, 예쁜 핀을 꽂고 캐릭터 옷을 입으라니 ‘인간 모빌’이 되라는 뜻입니까?  (책 28쪽)



‘빵빵한 발달 오각형’이라니, 여러 영역에서 골고루 두각을 나타내는 ‘육각형 인재’의 다른 이름인가? 물론 내 아이가 육각형 인재가 된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하지만 아이돌 세계에도 노래, 춤, 비주얼, 피지컬이 되면서 예능감도 있고 팬서비스도 확실한 육각형 멤버가 있는 반면, 노래나 춤에 능력치를 ‘몰빵’한 멤버가 있다. 이들은 모두 팀에 꼭 필요한 멤버이며 모두가 육각형 인재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발달을 자극하라는 명령은 ‘빵빵한 발달 오각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아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책 37쪽)


“네 잘못 아니냐”는 비난은 “양육태도를 돌아보라”는 세련된 성찰의 말을 입고 베리베리에게 당도했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던 베리베리는 무엇을 더 돌아보아야 했을까? 계속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성경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된다)이나 돌(의림지 전설에서 부잣집을 빠져나오던 부잣집 며느리는 뒤를 돌아보다 돌이 된다)이라도 되면 어쩌라고?  (책 150쪽)



글 쓰면서 자주 들여다본 책장 칸



+ 더 자세한 책 이야기가 듣고 싶으신 분은 북토크에서 만나요!


- 일시 : 7월 13일(토) 오전 11시

- 장소 : 원미동 용서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부천로136번길 24)

- 참가비 : 5000원 (우리은행 531-176291-02-101 이슬기) 

- 신청 : 신청서 작성 및 입금

https://forms.gle/jFDp3mNAEEmURed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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