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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Dec 24. 2024

딸을 키우는 일은 왜 이렇게까지 특별해졌을까


유튜브 쇼츠를 습관적으로 내리던 중 한 남자 아이돌의 발언을 보았다. “나는 딸라방구 낳으면... 벌써 막 눈물 날 거 같아. 딸라방구 생기면은 나 진짜 맨날 울 거 같아.” 또다른 남자 연예인은 말했다. “딸은... 딸은 달라. 딸은 내 마음을 만져줘요.”  


 우리 사회에서 딸이라는 존재는 일종의 ‘종교’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밀한 내 마음을 만져주고 말만으로도 눈물 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작 딸을 키우는 나는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딸 키우는 일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은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전통이 해체되고 문화적 불확실성이 일상의 구석구석에 깃들게 된 현대 사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삶에 새로운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해주고 ‘진정한’ 관계에 바탕을 둔 행복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현세의 희망이 덧없어진 바로 그 곳에서, 아이는 단단한 발판과 가정을 발견할 기회를 준다.”(192쪽) 아이가 ‘삶의 의미’이자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고 ‘성장의 계기’가 된다는 주변의 발언들을 떠올려보면, 정박할 곳이 없는 현대인에게 가족과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왜 하필 딸일까? 한국 사회에서 딸은 왜 이렇게까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까?


딸이 있는 남성 연예인이 방송에서 자신의 ‘딸바보’적 면모를 자랑하는 장면을 종종 본다. 국민MC라 불리는 유재석도 여러 차례 자신이 딸(“나은아아~~”)과 아들(“지호야압!!!”)을 부르는 톤이 다르다며 방송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방송인들이 딸바보적 면모를 자랑하는 것이 용인되고 더 나아가 권장되는 것은 그런 면모가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올 것을 상상하면서 분노를 표출하고, 아들과 딸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대놓고 이야기할 때, 이들이 과시하는 것은 딸을 사랑하며 ‘보호자 남성’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스윗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딸바보 아빠가 스윗한 이미지를 알뜰히 챙기는 동안, 딸은 그저 작고 귀엽고 무해한 존재로만 남아있다. 위험한 장난을 치고 짜증을 부리고 진상짓을 하는, 그래서 양육자의 혈압을 오르게 하는 다른 면모들은 탈각된 채. 


‘작고 귀엽고 무해한 존재’라는 타자화에 기댄 애정을 과시하는 한편, 딸을 키우는 양육자는 점점 더 딸을 ‘보호’하는 일에 사력을 다한다.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고,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은 여성의 안전 이슈에 천착하는 경향이 커졌다. 좀더 어린 나이의 여성을 대상으로, 좀더 촘촘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기반 성범죄는 딸을 키우는 양육자를 끊임없는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그 결과 딸을 양육하는 일은 ‘알파걸’(학업,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을 뜻하는 말로 2006년에 처음 사용된 말)을 키우는 일에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딸 엄마들이 아이의 안전이나 보호에 너무 예민한 거 같아”라는 한 초등학교 교사 지인의 발언은 투덜거림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러한 양육 방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딸이라는 존재가 신성시되는 시대, 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이 목표인 시대, 이런 시대를 딸들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디어에는 딸바보 아빠뿐 아니라, 딸들도 넘쳐난다. 이들은 학대받는 아이(tvN드라마 <마더>, 영화 <미쓰백>), 실종된 아이(영화 <미씽 : 사라진 여자>, 영화 <아저씨>)의 얼굴을 하고 있다. 쌍커풀이 도톰하게 진 큰 눈을 깜박거리며 어른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정의감과 부채감을 자극하는 존재들이다. 영화 <도희야>에 등장하는 도희(김새론)는 다르다. 도희는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딸이자, 자신이 가진 자원을 이용해 의붓아버지를 직접 처단하는 딸이다. 그는 마을 어른들이 의붓아버지의 상습적인 구타에는 무감각하지만, 성폭력에까지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도희가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을 꾸며내기 위해 술취한 그의 곁에 옷을 벗고 누울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딸은 tvN 드라마 <마더>(2018)의 속깊은 애어른 윤복이(허율)일수도 있지만, 도희일 수도 있다. 우리는 도희와 같은 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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