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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Apr 22. 2022

우엽(右葉)의 크기

첫 CT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다

공여자 1차 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금식한 채로 가서 CT만 홀랑 찍고 돌아오면 끝. 엄청 쿨한 척 길을 나섰지만 CT촬영이 처음이라 몹시도 긴장했었는지 전날부터 CT촬영 후기, 조영제 부작용 같은 키워드를 수도 없이 검색했었다.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검사를 마칠 수 있었고 심지어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날씨가 살짝 덜 풀리기도 했고 걱정하느라 덜덜 떨고 있었는데 조영제가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느낌이 훅 퍼져서 오히려 긴장이 풀렸달까. 금요일에 촬영을 하고 그다음 주 수요일에 결과를 들으면서 가능한 사람에 한해 2차 검사를 진행할 수가 있는데 2차 검사에 mri검사와 혈액검사가 있는 만큼 금식이 진행되어야 하므로 2차 검사일 하루 전날인 화요일 오후에 코디네이터실에 전화를 걸면 1차 적부 여부를 미리 알려주겠다고 했다.


1차 검사 결과를 판가름하는 것은 기증자 간의 우엽과 좌엽의 비율과 혈관의 모양, 그리고 수혜자 체중에 비례한 내 간의 크기이다. 생각했던 것처럼 큰 간 덩어리를 스테이크 썰듯 뚝 잘라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좌엽과 우엽의 경계로 일종의 절개선이 존재했고 이 라인을 기준으로 나는 더 작은 쪽인 좌엽을 남기고, 아빠에게는 우엽을 기증하게 된다. 남는 간인 좌엽은 기존 간의 30% 이상이 되어야 기증자 생명에 지장이 없고, 주는 간인 우엽은 수혜자 체중의 0.8% 이상이 되어야 본인 간을 완전히 절제하는 수혜자가 이 간을 받아 정상적인 대사를 이어갈 수가 있다. 최초 외래를 보았던 A병원은 이 기준이 더 엄격해서 공여자 간은 35% 이상을 남기고 수혜자는 체중의 0.85% 이상의 간을 받아야 수술 승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빠는 이미 간성뇌증과 식도정맥류 파열이 병발한 말기 간경변 환자였으므로 A병원의 공여자 검사에서 탈락하여 다음 병원으로 옮겨가게 되면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애초에 문턱이 낮은 B병원부터 공여자 검사를 진행하기로 한 나의 계산이었다.

  주말은 태어나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간의 크기를 가늠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만져지기라도 하면 얼추 느낌이라도 잡을 텐데. 어디에 있다는 느낌조차 나지 않는  얌전한 장기의 크기와 무게를 달아보는 검사를 내가 하고 왔다니. 나는 비교적 대범한 편이니 간도 크지 않을까? 이런 실없는 생각도 해보며 화요일을 기다렸다. 아빠는 마음이 싱숭생숭한지 하루 걸러 장문의 톡을 남기고 사위에게 장문의 반성문을 보내질 않나 화요일 저녁에 유선으로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수요일에 남은 검사를 하는 일정을 10번도 넘게 일러주었건만 그래서 언제라고? 그래서 월요일이면 안다고? 화요일이라고? 하는 식이었다. 실로 나에게도 입사 최종면접 기다리는 시간보다  기간이  긴장되었다.


월요일 저녁, 오래간만에 남편은 식사 후 맥주를 두 캔 마셨다. 우리 부부는 사실 엄청난 애주가였기 때문에 김치냉장고에 김치 대신 맥주를 궤짝으로 사다 놓고 식사 때마다 물처럼 마셔대는 수준이었는데 아빠의 간이 망가지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나는 반사적으로 금주를 시작했다. 함께 잔을 부딪혀줄 사람이 술독을 잠그자 남편도 자연스레 술을 멀리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굳이 월요일부터 캔맥주를 딱 딱 거리며 따기 시작하더니 실은 내일 검사 결과가 부적합이 났으면 좋겠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 일이 오롯이 나만의 일이라고 이기적으로 생각해왔었는지....  나는 아빠의 딸이기도 하지만 이 남자의 아내이기도 하고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데, 무책임하게 너무 큰 일에 뛰어들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최초에 마음먹기까지 남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저 통보만 해버렸던 게 아닐까. 그저 해맑게 내 간이 충분히 크려나 오직 그것만을 걱정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수없이 복잡한 생각을 했을 텐데 그걸 미처 헤아리지 못할 만큼 나는 왜 이리도 사려 깊지 못한 인간일까. 비로소 심란한 남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검사에 통과하지 못할 경우 계산했던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모두 막을 거두고, 이번에는 내가 실제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감당해야 하는 장애물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 진작에 생각했어야 하는 문제들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그때서야 이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한동안 몸을 회복해야 하는 기간과 그 기간 동안 육아 공백을 해소하는 문제, 긴 입원생활과 잦은 외래를 보아야 하는 아빠의 보호자는 누가 해야 할 것이며(지금까지는 내가 도맡아 하고 있었으므로), 시부모님들께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일도 미처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화요일은 차마 하루 종일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일찌감치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장난감 상자를 모조리 엎어 작은 조각 하나하나 짝을 맞추고 교재와 교구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 몰입감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저 할 만한 일이 그것뿐이라 장난감 상자를 쑤시고 있는 나 자신이 좀 한심했는데 끝마쳐놓고 나니 사실은 매우 뿌듯해졌다. 이마저도 내가 수술을 받고 집을 비우면 영영 하지 못하게 될 일인데 속이 후련하다 싶었다. 그리고 시간도 물 흐르듯이 잘 갔다.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사실 "저녁"에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저녁"시간에는 근무시간이 아닐 것이 분명하므로 저녁에 가까운 오후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너무 늦은 오후에 전화를 걸었다가 미리 퇴근이라도 하셨으면 어떡하나 싶어 고민 끝에 나는 4시 30분 즈음, B병원의 장기이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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