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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Apr 15. 2022

목숨의 가격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교육을 듣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몰아 아빠를 모시고 간 B병원은 A병원보다 훨씬 한산했다. 우리 집에서 B병원까지는 겨우 10분이 걸리는 아주 짧은 거리였지만 아빠는 발걸음이 상당히 무거워 보였다. 조수석에 앉아 잠시도 쉬지 않고 구시렁거리기 시작하는데 은근히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못할 짓이다. 자식 배까지 갈라서 이것이 못할 짓이다. 5년만 살다가 어떻게 죽으면 안 될까? 네 동생이 장가만 빨리 갔어도 어쩌고저쩌고 기타 등등 아주 사람 환장하도록 푸념을 하다가도 근데 복강경은 안 아프지 않을까? 아기 낳는 것보다 안 아픈 거 아닐까? (설마!!) 하며 속을 긁어대는데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속과는 대조적으로 그날 봄 날씨가 그리도 푸근하고 좋았던 것이 몹시도 기억에 남았다.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영상기록을 전달하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A병원에서와는 달리 의외로 모든 절차가 대기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자 되려 인기가 없는 병원인가 싶다, 괜히 온 것 같다 등등 또 말 같지도 않은 불평이 시작되었다. 다만 내가 그것까지 다 들어줄 정도로 마음이 한가하지 않았으므로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두어 차례 주의를 주었던 것 같다. 아침부터 쭉 긴장하고 다니느라 나도 이미 약간 지친 상태였다. 알쏭달쏭한 입원 처방만을 내리고 진료실에서 내쫓은 A병원과는 달리 B병원은 비교적 시간을 가지고 교수가 직접 환자를 면담하였다. 그게, 누가 그러던데, 간은 쓸 때까지 쓰고 이식은 제일 나중이라고 하던데요. 아빠는 아마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답변을 기다렸는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그러던데, 하는 바보 같은 소리로 서두를 열고 말았다. 다행히 교수님은 사람이 좋은 편이어서 "누가 그러던데..."라는 어리석은 발언에도 일일이 대꾸를 해 주는 사람이었다.


"지금부터는 누가 그러던데, 하는 말을 들으시면 안 됩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어요. CT는 2년 전 자료를 가져오셨네요. 간경화가 많이 진행되면 딱딱해지다 못해 쪼그라드는데 지금 이미 간이 다 쪼그라들었습니다. CT상으로나 지금 증상으로나 말기 간경변 환자로 판단이 됩니다. 더 지체하시면 안 되고 기증자가 있는지 알아보셔야겠습니다."

여기에 또 바보같이 아... 탄식이나 하고 있는 아빠를 보니 또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기증자 인적사항을 읊어내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B병원은 이식 분과에서 초진을 본 그날 바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상담을 거치는 시스템이었다. 상담이 진행되기 전 잠깐 밖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빠는 또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하며 나를 열 받게 하기 시작했다. 이거 끝나고 나면 직장 그만두고 편히 살아라, 내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너 하나 편히 살게는 해주어야 할 것 아니냐 하며 갑자기 되지도 않는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아주 침착하게(나는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침착한 편이다.) 아빠 내가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연금도 타려면 몇 년 더 다녀야 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는데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다고 짚어주었더니 이번에는 바보같이 계산기를 꺼내어 이상한 셈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앞으로 받게 될 연금을 어림하여 계산해보는 것 같았는데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집어넣어 뚱땅뚱땅 얻어낸 그 숫자는 어딘지 애매모호한 금액이었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많은 것 같기도 했지만 "내 목숨 값"이라고 당당히 들이밀기엔 어딘지 소박한 금액이랄까. 우리 둘 다 휴대폰 계산기에 찍힌 숫자를 우두커니 바라보다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이미 두 병원의 이식외과 진료를 예약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대부분을 정보를 얻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실제 이식센터 코디네이터 간호사 선생님이 진행하는 교육은 의미가 있었다. 보다 구체적인 간이식 수술의 절차와 주의점, 합병증과 예후에 대해서 현실적인 설명을 듣게 되었다. 1시간가량의 이식 교육이 마치고 난 후 코디네이터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수혜자 전신 검사를 먼저 진행하는 A병원과는 달리 B병원은 기증자 검사를 먼저 진행하게 된다. 우선 기증자의 간 사이즈와 상태가 이식 수술의 가능 여부를 가장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기증자 간 CT를 먼저 찍어보고 이후 일정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매우 합리적으로 느껴져 만약 진행한다면 B병원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다만, 생체이식은 전적으로 기증자의 자유의사로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식센터에서 적극적으로 일정을 잡아주는 일은 없으며 기증자 본인이 충분히 고려해보고 의사가 있을 때 가능한 일정을 먼저 알려주면 그에 따라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하며 연락처를 남겨 주었다. 별로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서 바로 예약 데스크로 가서 기증자 검사 예약을 마쳤다. 오늘 외래 진료 본 내역에 대해 수납을 마치고 나오는데 이식 코디네이터 교육을 같이 들은 환자의 가족이 뒤에서 전화로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본래  가족씩 이식 교육을 진행해야 하나 지방에서  환자가 둘이고 진료 마감 시간이 임박했다며 부득이  환우 가족이 함께 교육을 듣게 되었다.  과정에서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자연스레 그들의 인적사항도 알게 되었다. 76세의 간암 환자, 알콜성 간경변에서 암으로 진행하였으며 복수가 차서 풍선처럼 부푼 배를 끌어안고 병원을 찾았는데 아내는 이미 고령에 함께 동행한 딸도 전화기 너머의 아들도 별로 기증 의사는 없어 보였다. 검사는 별거 아니니 검사라도 받아보면  되겠냐는 가족들의 간청에 수화기 너머에서 어떤 대답이 들려왔는지는 표정으로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수서역에 아빠를 내려다 주는 ,  망할 염불처럼 못할 짓이다, 참으로 못할 짓이다를 되뇌며 이제는 훌쩍이기까지 시작하는데 나야말로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자들이란 이렇게 마음이 약한 존재였나. 아빠는  이후로도 서울로 오고 가는 기차에서 그렇게 눈물바람을 해댔는지 수서역으로 아빠를 픽업 나가면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코를 훌쩍이며 차에 올라탔다. 당신의 짧은 다리는 생각지도 않는지 큰맘 먹고 장만한 나의 번쩍이는 SUV 올라타면서 아이고, 이놈의 차는  이리 높은 거야라고 불평불만하는 것도 물론 매번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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