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elaide Son May 13. 2022

김치 콩나물국과 로봇

5분도 쉬지 못한 하루의 기록

  나의 아버지는 정말 지독하게 귀가 얇은 사람이다. 아빠가 귀가 얇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나는 시사 다큐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어쩐지 불편해졌다. 사회적으로 멀쩡하고 고등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사이비 종교와 다단계에 빠지고, 사기를 당하는 이야기를 보며 더 이상 맘 편히 혀를 끌끌 찰 수가 없게 되었다. 모자이크로 가려진 화면 속 인터뷰이가 언젠가는 나의 부친일까 봐 때때로 나는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수 운운하며 500ml 페트병 하나에 몇만 원씩 주고 조악하게 포장된 물(아, 그것은 소금물이었다.)을 사 오기도 했고, 수익률 16%를 보장한다는 사기꾼에게 거액의 돈을 배팅했다가 그가 잠적하는 바람에 몇 년간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귀 얇은 사람들이 응당 그렇듯이 엄청나게 많은 보험을 들고 있었는데 그 보험이 죄다 무슨 용도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부모가 생각보다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남편은 장인어른이 용케 부자가 된 것에 대해 늘 의문을 가졌다. 우리 모두가 아빠가 망하지 않고 사업체를 여태껏 영위한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고 여겼다. 고인이 된 엄마가 옆에서 피땀 눈물을 바쳐 사업을 키워냈다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쓰리고 안타까웠으므로 그냥 차라리 이것이 다 운이 좋아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한 수준이었다. 내 가정을 꾸려 집에서 독립한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원한다면 아버지의 이 불합리한 결정들을 모르쇠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이제 간을 나눠가지기로 하였으므로 이제는 내가 부모의 선택에도 부득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B병원에서 2차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수술 일정을 가늠해보고 있는 그 짧은 기간 동안, 나의 귀 얇은 아버지는 어느새 유튜브를 통해 무한한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뚱맞게도 A병원도 B병원도 아닌 C병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C병원의 유튜브 채널에는 집도의가 직접 출연하여 깜찍한 제스처와 함께 우리 병원의 간이식 수술을 홍보했다. 그리고 철없는 우리 아빠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바로 무려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수혜자 로봇 수술이었다. 20분 상당의 짧은 클립 영상 속에서 집도의는 로봇 수술의 단점이 단 두 개라고 설명했는데 첫째는 다소 긴 수술시간이며 둘째는 비싼 수술비용이라고 했다. 그중 수술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많은 연습을 통해 개선하고 있음을 어필하였고 비싼 수술 비용은 아직은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식이었는데 어쩐지 부친은 비싼 수술비용에 더욱 열광하는 듯 보였다.


  아빠는 네 살 난 나의 큰아이보다 더 로봇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날마다 전화기가 로봇 이야기로 북새통이 났다. 결국 성화에 못 이겨 B병원 외래일을 이틀 남기고 C병원 외래 예약을 잡았다. 1시 30분 진료를 잡아놓고 아이를 우선 등원시킨 다음에 아빠를 역에서 모시고 집으로 와서 점심 식사를 했다. 혹시 내가 하원 시간에 맞춰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재워둔 닭갈비에 간단히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출발한 C병원까지는 차로 꼭 1시간이 걸렸다. B병원은 겨우 15분이면 도착했을 텐데, 자꾸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A병원과 B병원의 진료를 모두 보고 로봇 수술 때문에 찾아왔다고 하니 집도의의 얼굴에서 화색이 퍼졌다. 수술용 로봇인 다빈치는 여러 과에서 공용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간이식 팀이 이 로봇을 쓸 수 있는 날은 매월 셋째 주 목요일로 정해져 있다. 마침 4월 21일에 로봇 수술을 하겠다고 나타난 환자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너무도 반가운 환자인 셈. 준비 기간이 다소 촉박하였으나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수술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보여 수술 날짜가 안 잡힐까 봐 걱정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진료 후에 지난번 B병원에서처럼 코디네이터실을 경유하였다. 이미 내가 공여자 검사의 상당 부분을 마친 상태이고 가장 중요한 MRI 검사와 CT 검사를 마쳤으니 해당 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오면 인용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장 다음날 아빠는 입원하여 수혜자 검사를 받게 되었다. 공여자의 경우 B병원에서 미처 받지 않았던 정신과 상담과 사회복지사 면담을 진행하고 수술 전 마취에 적합한 상태인지 확인을 위하여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와 요분석 검사를 다시 진행하기로. B병원과는 달리 위내시경 검사결과지와 유방초음파 결과지를 요구하였는데 집 근처 병원에서 받아 제출하면 인용해준다고 하니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잡기로 했다. 검사 일정 전반과 함께 비용에 대한 안내도 받았는데 로봇수술은 전액이 비급여로 처리되기 때문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게 되었다. 직장인 한 사람 연봉보다도 큰돈이라 다소 심란해하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차 속에서 아빠는 뚱땅뚱땅 또 계산기를 눌러 상급병실 차액, 앞으로 들어갈 요양 비용 등등 어림하여 셈을 하더니 여태껏 돈 벌어 나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순 남 좋은 일만 해왔으니 이제는 나를 위해 쓰겠다며 단호하게 핸드폰을 닫았다. 그래 그 말도 맞다 싶어 더 이상 수술 비용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은 대체 어디에 쓰고 겨우 이 수술비용 만을 자신을 위해 쓰는지 조수석에 앉은 아빠의 옆모습이 너무도 바보스러워 불쌍하고 화가 났다.


  저녁 시간 지나고 느지막이 차표를 끊으라고 했으나 아이들도 있는데 저녁까지 먹고 가는 건 너무 미안하다며 그렇게 고사하시더니 결국 염치도 시장기는 못 이겼는지 슬며시 밥을 찾는 것이 몹시 얄미웠지만 늙고 병든 아버지는 솔직히 대적 불가한 존재 아니겠는가. 촉박한 열차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저녁밥을 차려 내고는 아버지를 배웅하는데 "너는 오늘 5분도 쉬지를 못하는구나!"라는 애매한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나 때문에 5분도 못 쉬고 바빠서 미안하다는 말로도 대체 뭐가 그리 바빠서 5분도 안 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로도 들렸는데 주로 아빠의 화법은 후자에 가까웠으나 오늘만큼은 딸한테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이 커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5분도 쉬지 못한 하루가 모두 지나고 보니 종아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매번 김치 콩나물국을 끓이면서 아, 이 국을 아빠가 참 좋아하시는데 언젠가는 끓여드려야지 했는데 따뜻한 콩나물국을 대접해서 보내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다음 주에 계속 연재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크고 싱싱하고 말랑말랑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