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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여곡쩔 Apr 01. 2024

글로 밥 벌어먹는 삶에 대한 고찰- 드라마 작가 2

우여곡쩔 OO 도전기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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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대중 콘텐츠를 마케팅하는 일을 했다. 마케팅직무는 콘텐츠를 제작투자할지 말지 결정하는 GLC(Green Light Comittee) 회의 때 마케팅 사이드에서 찬성/반대 의견을 내는 것부터 출발한다. 콘텐츠를 기획/투자하고 제작관리하는 팀들은 본인들이 성공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발굴/소싱해 와서 투자 통과시키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에 보통 감독/작가/제작사 등 크리에이터 사이드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나는 그와 반대되는 대중의 시선에서 이 작품, 이 콘텐츠가 시장성이 있을지, 타깃에게 소구 할만한 지점이 있을지, 사람들이 돈 내고 볼만한 콘텐츠인지, 마케팅 단계에서 화제를 모을만한 콘텐츠인지를 판단하고 소싱팀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딴지를 거는 역할을 했다.


영화의 시나리오, 드라마의 대본, 예능의 기획서를 보고 이것의 기본적인 컨셉과 재미는 어떤데, 이건 마케팅하기에 이런 어려움이 있고, 이 배우와 이 제작진은 이래서 매력적이지만 저래서 문제고, 이게 논란거리가 될 것 같아 걱정이고 이런 부분이 엄청난 화제를 모을 것 같고, 그래서 찬성! 혹은 반대! 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리고 내가 몸 담았던 팀의 의견들은 대부분 반대가 많았다. 잘 안 될 것 같은 콘텐츠가 많았기도 하고, 또 알리거나 팔기 어려운 콘텐츠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케터의 직업적 고충과 늘 직결되는 부분이므로.


나는 마케팅이라는 업무가 결국 아무리 일을 열심히 잘 해내도 콘텐츠를 잘되게끔 서포트하는 역할이지 중심이 될 수 없는 역할인 데서 오는 허무감이나 상실감을 종종 느꼈다. 마케팅 외에 투자/기획 업무들을 꿈꿀 때도 간혹 있었지만 그 꿈은 그렇게 오래 꾸지 않았고 관련 일로의 직무전환 기회들도 아예 노리지 않았다. 왜냐면 그 일들 역시 크리에이터에 한 발 더 가까울 뿐이지 주변인이나 마찬가지요, 키 플레이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콘텐츠 산업의 꽃은 크리에이터이므로, 산업의 코어에 접근하고 싶다면 크리에이터의 삶을 꿈꾸는 것이 옳다. 그리고 작가가 영화에 비해 더 대우받는 산업인 드라마를 꿈꾸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직업으로써 시나리오와 대본 검토를 많이 했고, 대중의 시선에서 작품의 상업성을 평가하는 연습을 오래 해본 것이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또 일로 만난 주변의 지인들이 대부분 그 업계에 몸 담고 있으므로 훗날 네트워크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하여 퇴사를 하고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이전글에서 밝힌 여러 가지 동기가 있지만, 조금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드라마 작가를 꿈꿔도 될지 위의 생각들을 포함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았다. 결국 내가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에 뛰어들어도 될까 말까에 대한 일종의 투자타당성 분석인 셈이다.



나라는 사람이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에 베팅해도 괜찮을 것인가?


1.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에 대하여

1) 매력 요인

- 작가는 드라마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

- 성공한 스타작가가 된다면 글로 벌 수 있는 돈이 막대하다. (우리 남편은 장항준을 롤모델로 삼으면 되냐고 묻는다.)

- 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

- 그밖에 주변에서 들은 썰들이 매력적. ‘입봉 하면 그다음 회당 계약금이 많이 뛴다 / 작가 친구 여의도 고층 빌딩의 작업실 놀러 가봤는데 멋졌다. 자료조사비로 맛있는 것도 잘 사준다’ 등등 ㅋㅋ

-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 이게 난 제일 매력적... 하고 싶다 재택근무 (관련글 : 장래희망은 재택근무입니다 )


2) 감점 요인

- 계약금 받은 뒤 편성이 확정되어야만 나머지 잔금을 받을 수 있어 수입이 불안정하며, 편성되기까지의 과정이 늘 지난하기 때문에 작가로 첫 계약이 성사된다고 해도 버티기가 힘들다.

- 자리에만 앉아서 종일 글 쓰면 힘들겠지. 창작의 고통뿐 아니라 신체적 고통도 있을 것 같다.

- 시간에 쫓겨 글 쓰는 일에 매진하다가 밤새고 체력 축내는 일도 부지기수 일 것 같다.

- 글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반대급부로, 글 또는 글 속의 가치관이 이상하면 욕과 비난의 중심이 될 수 있음.


2. 내가 드라마 작가를 꿈꿀 자격이 있는지 여부

1) 나의 강점

- 콘텐츠를 취미로써 일로써 많이 봤고, 여전히 재밌는 콘텐츠 보는 것을 좋아한다.

-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나름 글 칭찬도 많이 받고 나름 자신도 있다.... 고 생각하니까 이걸 고민하는 중이겠다.

- 마케터로서 시나리오와 대본 검토를 많이 해서 대중 관점에서 상업성 있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높다.

- 관련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작가의 주요 업무 파트너인 제작사나 PD와 커뮤니케이션이 힘들지 않을 것 같다.


2) 나의 약점

- 나이가 준비하게 좀 늦은 느낌이 드는 40대에 접어듦. 사상도 글도 늙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나도 모르게 글에서 틀딱 냄새를 줄줄 풍길수 있다. (제작사에서 나이 든 작가를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는 가능성?!)

- 아직 객관적으로 능력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 보기 전이므로)

- 쫄보라서 장르물 범죄/스릴러/공포 등에 대해 낮은 이해와 선호. 쓸 수 있는 장르가 한정적일 가능성

- J가 아니고 파워 P.. 글을 꾸준히 써낼 근육이 내게 있을 것인가. 두둥


3. 드라마 작가 직업을 꿈꾸기 위한 환경

1) 도움이 되는 기회 요인

- 정정당당히 내 능력으로 데뷔만 한다면, 주변에 많은 업계 지인 네트워크 활용 가능성

- 방송사 공모전 등의 제도를 활용 가능해 데뷔가 가능한 시스템

- 드라마에 대해 알려주는 교육기관과 서적, 강의 자료 등이 넘쳐남


2) 꿈꾸기 어렵게 만드는 위기 요소

- 현재 콘텐츠 및 드라마 시장이 어렵고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내가 봐도 요즘 이 산업이 영상콘텐츠 업계의 IMF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렵다. 창고에 쌓여있는 작품들 무지 많은데 이거 다 재고처리 할람 몇 년 걸리지 않을까. 지금 투자 편수 자체 줄어서 기성 작가들도 살아남기 어려워 보인다. 준비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아 치열하다.

- 산업이 호황이라고 하더라도 데뷔와 성공 자체가 힘들고, 성공하기 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 꾸준히 쓰고 준비하는데 꾸준히 하려면 그만큼 생활비가 받쳐줘야 한다.



사실 이 3-2. 위기요소 때문에 그간 꿈만 꾸고 뛰어들지 못했으며, 백수가 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도 자꾸 이것이 발목을 잡아서 아직도 나는 드라마작가에 대한 꿈에 올인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웃대고 있다!


사실 아카데미 선생님은 버티는 게 중요하다며 절대 본업을 그만두지 말라고 수강생들에게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이미 그만둔 상태에서 시작했으므로 이것만 꿈꿀 수는 없다. 하여, 이곳저곳 이미 기웃대보고 나가떨어진 것 들과 현재도 찝쩍대고 있는 중인 것들에는 다음 편에서 차례로 풀어 나가 보겠다.




논의하던 있는 회사들과 빠그라지거나 불합격 통보가 날아올 때마다 생각한다. 이거 혹시 회사 다시 들어가지 말고, 다른 거 하지 말고, 드라마 작가에 집중하라는 하늘에 계시인 건가? 신이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런 어리석고 한심한 인간... 이거 내가 나설 타이밍인가 보군." 하고 합격을 불합격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꿈에는 냉철한 현실직시도 중요하지만, 자만이든 낭만이든 꿈을 향해 몰입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연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드라마작가를 꿈꾼다. 50% 정도는 다른 데 좀 걸쳐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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