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토트넘의 우승을 기념하며
연초마다 적어보는 새해 소원 리스트에 '토트넘의 우승'을 올려둔다. 쓰면서도 이게 될일인가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올려둔다. 평일 새벽 토트넘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워킹맘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맞춰 일어나서 경기를 보고 출근한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느라 일어난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기함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가시간에는 토트넘갤러리와 에펨코리아에 올라오는 축구소식들을 빠짐없이 훑는다. 그렇게 보다 보면 업데이트 속도가 내가 글을 읽는 속도보다 느리다고 생각한다. 여초보다는 남초커뮤니티의 밈에 더 익숙해진다. 남편이 이거 아냐고 이야기하는 해외축구 소식은 당연히 내가 먼저 알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행복으로 가득한 나날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2025년 5월 22일 손흥민이 몸 담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가 2024-2025 유로파리그를 우승하며 조롱감이던 무관 DNA를 극복하고 17년 만, 유럽대회로는 41년 만에 우승트로피를 들었다. 이 대목만으로도 엄청난 감동인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보다도 벅찬 드라마가 있을까 싶게 이 이 우승의 과정에는 범상치 않은 서사와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의 EPL 득점왕이자 주장, 푸스카스상 수상자, 올해의 팀 선정 등 수많은 업적을 세운 손흥민에게 선수 인생을 털어 이루지 못한 단 하나의 성과가 있었다면 바로 우승 트로피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심을 받는 순간이 오면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와 해트트릭을 하는 등 여지없이 증명을 해내던 그였는데, 아무래도 나이 듦과 함께 기량도 하락세에 놓인 것 같았다. 존재감과 역할을 의심하는 자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구단에서는 재계약을 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다른 구단에 보내주지도 않고 1년 연장 조항을 발동해 나를 비롯한 손흥민의 팬들을 화나게 했다. 우승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선수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최근에 '고소사건'과 겹쳐서 역대급으로 매도당하는 시기였다.
그런 순간을 지나, 본인과 팀이 모두 부진하고 공과 사적으로 모두 힘들었던 시즌에, 10년간 몸 담은 구단에서의 처음으로 들어 올리는 우승 트로피라니,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장으로서 태극기를 몸에 감고 고난을 함께한 동료들 한가운데에서 트로피를 번쩍 뜬 그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맞출 듯 맞출 수 없었던 슈퍼스타의 마지막 퍼즐을 향해 모두의 염원이 모인 결과였다.
역사 깊은 대형 구단, 그리고 최고의 선수가 갖지 못했던 단 하나의 꿈이었다는 점에서 그 우승컵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가치가 목숨을 처절하게 걸어야 할 만큼 중요했던 것은, 만약 이번 시즌 토트넘이 이 우승컵을 따내지 못했다면, 그 뒤로는 끝없는 절벽과 암흑뿐이었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간, 무리뉴나 콘테와 같은 명감독들도 못한다고 경질되고 이별하던 시기에도 아무리 못해도 7~8위였던 토트넘은 올해 17위까지 곤두박질쳤다. 입스위치, 레스터시티, 사우스햄튼- 18~20위의 강등권 3인방이 너무 초격차로 못해서 운 좋게 강등위기를 모면했을 뿐이지, 이번 시즌은 믿을 수 없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그런 17위 따리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주는 유로파리그의 우승뿐이었다.
학교 내신은 포기하고 수능시험을 통한 정시 올인을 결심한 9등급, 그리고 대결상대는 리그에서 토트넘 보다 고작 1위 높은 16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마디로 ‘병신과 머저리’가 결승에서 맞붙는다는 사실은 전 세계 축구팬의 도파민을 다른 의미로 터지게 했다. '멸망전', 정시파이터', '농어촌전형',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낮은 리그 순위의 진출팀'과 같은 밈이 쏟아져 나왔다. 오징어게임보다 더 잔혹해보이는 '높은 벼랑 끝에서 마주 보고 서서 손바닥 치기'와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이긴 사람은 모든 것을 단 번에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슈퍼컴퓨터의 예측 승률은 거의 50:50으로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경기였다. 그리고 그 승자는 다행스럽게도 토트넘이 되었다.
더불어 토트넘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며 EPL 역사상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합작해서 최고의 듀오로 평가받았던 손흥민-해리케인 콤비가 동시에 인생 첫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었다는 점이 이 서사에 특별함을 더한다. 해리 케인은 월드클래스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업적을 거의 다 이뤘으나 역시나 우승컵을 드는 길은 늘 요원했다. 주장을 맡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번번이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결국 그는 토트넘에서 우승을 할 만한 각이 도무지 안 나오자 독일 분데스리가의 최정상 구단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뮌헨은 늘 우승을 하다가 공교롭게도 케인이 합류한 2023-2024년에는 레버쿠젠의 기세에 밀려 리그 2등을 했고 컵대회에서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원인은) 난가?'라고 의심하는 것 같은 표정의 해리케인 이미지와 함께 무관귀신이 붙었음을 조롱했다. 그런 케인과 손흥민이 같은 시기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세계선’을 뒤틀어 '성불'을 했다는 점이 수많은 화제를 모았다. 나 역시 둘이 더 이상 같은 구단에서 뛰지는 않지만 동반 성공을 늘 염원했던 터라 차례로 자신의 징크스를 극복하는 모습에 더없이 기뻤다.
토트넘이 유로파리그 결승에 오르고 우승하기까지 그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고 위태로웠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신음했던 팀이었다. 든든한 센터백 로메로와 반더벤은 나란히 부상을 입고 오랜 기간 팀을 떠나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자 주장 손흥민이 이번엔 발 부상을 입었다. 제임스 매디슨은 가장 난이도 높았던 유로파리그 8강 프랑크푸르트와의 2차전에서 활약하며 팀을 준결승에 올리는데 결정적인 기회였던 페널티킥을 얻어냈으나 이를 자신의 부상과 맞바꾸고 장렬히 전사했다. 클루셉스키 역시 결승을 앞두고 무릎 수술을 했다. 베리발도 훈련 중 부상을 입었다.
중요한 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며 팀의 전력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무엇보다 손흥민이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뛸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다행히도 손흥민은 리그에서 크리스탈팰리스 전으로 복귀하여 20여분을 뛰었고, 다음 아스톤빌라 전에서는 70여분을 뛰었다. 그래서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도 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유로파리그 결승전 당일, 나는 새벽 4시에 경기를 보기 위해 전날 밤 9시부터 잠들었다. 새벽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라인업을 확인했다. 과연 부족한 미드진에서 대체 누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웬걸 선발 라인업에 손흥민 이름이 없는 것 아닌가. 순간 벙쪄 잠이 확 달아났다.
손흥민은 벤치에서 출발했다. 부상에서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했고 폼이 올라오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감독이 내린 결단이었다. 혹시나 경기에 뛰지 못하면 어쩌지, 만약 선제골을 먹힌다면 후반에 투입되더라도 아무것도 못하고 끌려가다가 끝나버리면 어쩌지, 이런 걱정과 초조함이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토트넘이 1-0으로, 봉준호 감독의 표현으로는 '아주 지저분한 골'을 넣어 전반을 안도감에 마무리했다.
토트넘이 이기더라도 손흥민이 출전하지 않으면 감동이 반감될 텐데 하는 마음이 계속 있던 후반전, 몸을 불사르던 히샬리송이 갑자기 몸에 무리가 왔는지 잔디에 누웠다. 그리고 손흥민이 드디어 그라운드로 나왔다. 수비에 치중하며 맨유의 공격을 버텨내는 초조한 후반부, 마침내 선수들은 몸을 던져 한골차 리드를 겨우 지켰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구단의 역사와 선수들의 사연과 힘든 일들이 얽히고 연쇄작용해서 만들어낸 기쁨의 순간이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었다. 부둥켜안고 함께 우는 손흥민과 매디슨의 모습은 지금도 보기만 하면 눈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우승컵 세리머니, 애프터 파티, 경기 비하인드, 그리고 퍼레이드 행사까지 모두의 행복한 기분이 그대로 전해지는 콘텐츠들이 온라인에 가득하다. 나는 이런 콘텐츠를 말 그대로 종일 보고 있다. 남편은 온갖 비하인드 영상들을 보며 질질 짜고 있는 나에게 자기가 승진해도 이만큼 좋아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아니지라고 대답했다. 여보가 승진을 몇 년 누락하다가 되면 이만큼 기뻐해주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냐며.
비록 우승이 처음이라 그런지 폭죽이 터지는 타이밍만큼은 어설펐지만 신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7살 딸아이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다. 딸은 나를 통해 '감동의 눈물, 기쁨의 눈물'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딸은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기뻐했던 그 순간을 커서도 두고두고 기억하겠지. 물론 바이에른 뮌헨과 토트넘핫스퍼의 트로피 세리머니를 몇 번씩이고 다시 본 여자아이도 참 드물겠다
응원하는 팀의 승리, 그 순간의 희열과 감격이 서포터에게 전파되고 그것은 다시 선수에게 큰 힘으로 전해진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으로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스포츠' '팬질' '덕질'의 낭만이자 가치가 아닐까.
요즘 이때다 싶어서 온라인에 터져 나오는 수많은 행복치사량 콘텐츠들 중 눈길을 붙잡은 것이 있었다. 2018-2019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비롯해서 번번이 우승의 문턱 앞에서 좌절해서 눈물을 흘리던 손흥민의 사진들 뒤로 '중요한 것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실패가 반복되다 보면 사람들은 그 실패에 익숙해지고 최종적으로는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당사자도 점차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생인가'. '성공운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하지만 몸과 마음이 무너졌어도 꿋꿋이 일어나다 보면, 힘들어도 다시 도전해 보다 보면, 해낼 수 있다고 믿다 보면, 흔들림 없이 결과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결국 갈망하던 꿈은 이뤄진다. 토트넘의 역사가, 손흥민 그리고 해리캐인의 인생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
그렇게 한번 꿈을 이뤄내면, 그 꿈을 이뤘을 때의 행복감, 고난을 이겨낸 순간의 초인적 힘과 가능성을 믿고 다시 한번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명문구단들은 매해 우승을 하고, 트로피를 들어본 선수들은 유관 DNA를 몸에 새기고 사나보다.
한편 토트넘의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올시즌 내내 '전술이 늘 똑같은 감독', '입만 터는 감독'으로 조롱받았고, 실속이 없는 '우리의 축구'만을 주장해서 복장 터지게 했으며 선수들을 갈아버리는 경기 방식으로 줄부상시켜 거세게 비난받았다. 나도 작년까진 '포버지'를 외치는 사람이었지만 올해는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 감독이 '나는 보통 2년 차에 우승을 한다'라고 자신 있게 외치자 사람들은 이게 무슨 근자감의 발언이냐며 비난했다. 그러자 감독은 '내가 보통(usually) 2년 차에 우승한다는 발언을 정정한다. 나는 항상(always) 2년 차에 우승한다'라고 한술 더 떴다. 사람들은 '말이나 못 하면'이라고 이야기하며 그가 겸손하게 '아닥'하길 원했다. 그런 그가 2년 차에 항상 우승한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냈으니 이 역시 참으로 드라마가 따로 없다.
역대 최악의 리그 성적을 낸 포스테코글루감독과는 이쯤에서 좋게 바이바이하기를 바라지만, 어쨌거나 감독의 최면요법과 벼랑 끝 승리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려고 저렇게 입터나 싶었지만 나 역시 왠지 감독의 팔자가 맞아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우승을 이번에는 할 것 같은 촉이 강하게 왔었다.
포스테코글루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의 긍정적 효과를 노린 것 아닐까. 뒤돌아보니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좋은 전략이었던 것 같다. 성공을 향한 강한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번 시즌은 축구보고 토트넘을 응원하는 것이 그야말로 고통이어서 취미 생활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었다. 만약 토트넘이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졌다면, 손흥민이 뒷맛 씁쓸하게 토트넘과 이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면, 축구를 벗어나 어떤 새로운 취미를 찾아야 하나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손흥민이 언젠가 토트넘과 훈훈하게 작별하기 전에 런던에 가서 경기 직관하는 것 그것이 나의 버킷리스트로 다시 올라왔다.
자꾸 달력을 뒤적이며 휴가를 노려볼만한 긴 연휴날을 찾게 된다. 비행기표를 검색해 보면서 곧 좌절하지만 에너지만큼은 샘솟아 오른다. 남편과 딸과 조만간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환호성 하는 날을 꿈꾼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2025년 5월이다.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기억과 그 속에서의 깨달음을 정리합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