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여곡쩔 Mar 25. 2024

도서관 잔혹사, 연체료 31,400원의 스노우볼 -1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어렸을 적, 그러니까 초/중학교 시절 나는 엄청난 책벌레였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책의 반 이상을 이때 당시에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는 주요 루트는 당시 동네 곳곳마다 있었던 책 대여점이었는데, 나는 우리 동네의 '열린 글방'에서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한 달 동안만 총 68권을 대여해서 읽어 '열린 글방' 아저씨에게 VIP 손님 대접을 받기도 했다.


책을 빌려 읽느라 용돈이 모자라다고 학원 수학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니 선생님은 나를 기특하게 보시고 본인의 아버지의 차를 세차하는 알바 자리를 급 마련해주시기도 했다. 추운 겨울 선생님의 아버지 단독주택 앞마당에서 손을 호호 불며 어설프게 세차를 하고 만 원을 벌었던 내 인생 첫 '체험 삶의 현장'은 아주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 중에 재미있게 읽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신경숙의 <바이올렛>, 미하엘 엔데 <모모>  등등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은 '소설가'로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자 독서량이 이상하리만큼 급격히 줄어들었다. 책만 읽기엔 놀고 술 마시고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랬던 걸까. 책 대여점과의 거리가 가까웠던 유년시절과 달리 도서관과의 거리가 유난히 먼 20대 청춘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때 생활기록부에 '소설가'가 꿈으로 적혔다면 중학교 지나고부터 내 장래희망은 '카피라이터'로, 조금 지나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했고 대학교 다닐 때까지 광고 대행사에 취업하는 것을 꿈으로 삼았다. 내 잠재의식 속 KBS 드라마 <광끼>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TBWA, 제일기획 등을 비롯한 종합 광고 대행사는 들어가기 힘든 인기 회사였고, 광고업은 트렌디하고 핫한 인기 직종이었다. 나는 기발한 크리에이티브와 감각적인 문장을 만들어내는 광고인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고 그들을 선망했다.


나는 대학 입학 하자마자 교내 광고 동아리를 지원해 들어갔다. 즐거웠던 동아리 생활과 별개로, 대학교 1학년 1학기는 새로운 친구들 사귀고,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빗장 풀린 망아지 마냥 성인으로서의 생활을 만끽하느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여유 따위가 도통  없었다.


날이 좋았던 어느 봄날이었다. 광고에 대한 열망이었던 걸까 아니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대학생 신분에 도취되고 싶었던 걸 까, 나는 갑자기 광고 서적을 한 권 빌렸다. 그리고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책은 대학생 시절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첫 책이자 마지막 책, 그리고 20~30대를 통틀어 도서관에서 빌려본 유일한 책이 되었다.


책을 다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명확한 것은 책의 존재를 한동안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책을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책은 또다시 집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다가,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야 도서관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당시에 나에게 청구된 연체료는 총 31,400원. 더불어 연체료를 내지 않으면 다음 책을 빌릴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서울로 상경하여 하숙을 하던 나는 하숙비 외에 아빠에게 하루 1만 원 꼴의 용돈을 받고 있었는데, 약 3일 치의 용돈을 연체료로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까웠다. 이상한 반발감에 나는 그 돈을 내느니 대학 시절 내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않겠다는 굉장히 과격한 마음가짐과 선언을 하고야 만다.


비뚤어진 듯 곧은 심지로 대학 4년, 휴학 1년의 기간을 포함한 총 5년의 재학 기간 동안 단 한 권의 광고 서적을 제외하고 한 편의 책도 빌려보지 않았다. 31,400원은 4년 내내 나의 부채로 남았고, 졸업을 할 때도 나는 의지 굳건하게 이 돈을 정산하지 않았다. 이 연체료를 나중에 이상한 형태로 다시 조우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입사를 하고  회사를 다니던 이십 대 시절 종종 학교에서 연체료를 내라는 문자가 날아왔지만, 나는 가뿐하게 그 문자를 무시했다. 4년 동안 책을 한 번도 안 빌려 봤는데 31,400원의 연체료를 그제야 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똥고집이었다. 연체료를 내지 않으면 졸업증명서를 떼지 못한 다는 소식도 알게 됐다. 하지만 첫 직장으로부터 이직의 계획이 없었던 나는 '졸업증명서 뗄일이 없는 걸, 나중에 뗄 때 내면 되지' 하고 연체료를 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맞이하게 된 30대의 어느 날, 엄마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 글 도서관 잔혹사 2 에서 이어집니다.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기억과 뒤늦은 깨달음을 정리합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