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쩔 OO도전기 - Prologue
이제 내가 몇 살인지 나이 계산기가 없으면 헷갈리는 구 한국나이 기준 41세 여름 8월, 24살에 처음 입사한 회사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햇수로 장장 17년 차의 시간 동안 소속과 팀명이 자잘하게는 수십 번, 굵직하게는 5번 정도 바뀌었고, 최대 2주 정도의 휴가 기간과 5개월의 출산 기간을 제외하면 쉼 없이 일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버텼나 싶지만, 입사 이후 회사가 계속 성장해 몸집을 불려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직과 산업을 이동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는데 바빠 이직을 시도할 시간도 회사에 정을 뗄 겨를도 없었다.
시작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을 매우 행운이라고 느끼는 대학 4학년이었다. 그 이후는 줄곧 일을 배우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재미, 빌런이 가득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레벨 업하는 과정에서의 뿌듯함, 회사가 성장하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연료 삼아 노동의 태엽을 자발적으로 감던 순수한 일개미였다.
결혼 후 대출과 직장어린이집이라는 강력한 족쇄가 더 해지자 일을 계속할 구실만 되새기는 치열한 워킹맘이었다. 공적인 관계를 넘어 사적인 영역을 공유하게 된 사람들이 생기자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는 깔깔 대는 수다 한 판이면 잊을 만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다 정말 심신이 위태로운 순간에 의지하게 되던 각종 샤머니즘은 하나같이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팔자로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권력자였다.
그러다가 대표보다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림에 감사하는 시점이 되자 퇴사를 결심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회사도 늙어가자 ‘위기’와 ‘쇄신’이라는 구령에 맞춰 시작된 매서운 채찍질에 그간 무리하게 늘어나있던 태엽의 고무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웠고, 스스로 발을 내딛게 하던 연료가 끊기자 모든 것이 한순간에 탁 끊겨버렸다. ‘대가리꽃밭’이라는 ENFP의 낭만력으로 버티기엔 역부족인, 걸음을 내딛을수록 나를 갉아먹는 시간이었다.
늘 퇴사한다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본격 이직 시장에 뛰어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는 못했던, 일을 스스로 멈추는 방법을 몰랐던 나에게 찾아온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 같은 하늘의 계시. 최종 빌런이자 알고 보면 귀인과의 만남. 모든 조건이 딱 들어맞자 한 순간에 미련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비로소 게임오버 화면에 투비컨티뉴 대신 파워오프를 버튼을 힘차게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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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는 저도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었습니다. 퇴사한 전 김부장의 인생 2막을 차례 차례 기록합니다. <우여곡쩔 OO도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