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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Oct 24. 2021

아무 생각 없이 쉬려고 '노력'해봤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에 집중해보자.

근 3개월 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 찾아왔다. 이런 날은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지 어제부터 컨디션이 정말 안좋았다. 몸도 으슬으슬하고 잠도 많이오고. 아니나 다를까 황금같은 토요일 점심 12시에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늘은 아무것도 없는 날이라 늦잠을 자도 되지만 그래도 늦잠을 잘 계획은 없었는데..


잠에서 깬 내 몸은 축 늘어졌지만 머리는 '오늘 뭐해야하지? 어떤 일을 해치워야 하지?'하는 생각을 아주 빠르고 체계적으로 하고 있었다. 느린 몸과 빠른 정신의 괴리 때문이었을까 나는 계속 몸이 축축 쳐져서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일단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어제 사놓은 소보루빵을 앉은 자리에서 먹고 그 에너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쉬기로 마음 먹었다. 핵심은 지나간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만 사는 것이었다.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마음이 너무 커져 내 휴식을 방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시작한 건 세탁기를 돌리고 이전에 했던 빨래를 정리해서 옷장에 넣는 것이었다. 몸을 바삐 움직여야 생각을 덜 할 수 있고 단순 노동을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 단순노동이 귀찮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동안 바빠서 돌보지 못한 집을 돌보는 일은 간접적으로 나를 돌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진지하게 해야한다. 집이 깔끔해지면 그걸 보는 내가 행복해지니까! 나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빨래도 청소도 완료한 다음에는 나를 위해 먹어야했다. 어제 끓여둔 클램차우더 스프를 데워 정성껏 치즈를 갈고 크래커를 부셔 행복하게 먹었다. 속이 따뜻해지고 차가워서 깨질 것 같던 손과 발에도 온기가 돌았다. (설거지는 잠시 미뤄두었고 :-)) 이 기세를 몰아 또 하고 싶었던 걸 하기로 했다. 즐거운 일도 흐름이 끊기면 안된다. 잠깐이라도 끊기는 순간 핸드폰이 내 일상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안락의자에 앉아 담요를 목 끝까지 덮고 읽고 싶었던 책을 펴 느긋하게 읽어 나갔다. 책에 밑줄을 긋지도, 메모를 하지도 않고 정말 느긋하게, 나중에 내용이 기억나던 말던 상관없이 읽었다. 보통 같았으면 책을 읽는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잊지 않으려고 했을텐데 오늘은 목적있는 독서를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집착을 내려 놓고 머리가 아닌 몸에 활자들이 흡수될 수 있도록 지켜봤다. '지식 습득'이라는 부담을 갖지 않는 독서는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이 글도 목적없이 쓰고 있다.. 나의 하루를 기록한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을 뿐 글을 읽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라는 마음이 정말 1도 없다.) 나의 휴식이 이렇게 마무리 되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이 지루해질 때쯤 손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갔다. 자석이라도 달린 것 처럼 자연스럽게, 의지와는 상관없이 핸드폰을 집게 되다니.. 핸드폰을 열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타인의 일상과 나의 휴식이 비교되면서 내가 지금 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나는 나만의 휴식으로 에너지를 얻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쉬는 동안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고 나는 가만히 있을 뿐인데 뒤쳐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되는데... 내려놓기만 하면 되는데. 침대로 던져버리면 되는데... 무한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빨려들어서 그러질 못했다. 그 동안 나의 생각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게 되고 그러면서 불안감이 찾아왔다. 불안이라는 건 아주 질겨서 꼬리에 꼬리는 물기 때문에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좋다. 아니 빨리 빠져나와야만 한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곤해져서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꼭 물리적 자극이 있어야 하던 일을 멈출 수 있는 나란 아이. 아직 의지가 약하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붕 떴기 때문에 이전에 내가 하던 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이 부정적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샤워였다. 슬픔은 수용성이라 울거나 씻으면 해결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불안도 수용성이기때문에 따뜻한 물로 씻으면 물과 열이 불안을 앗아가 평정을 되찾을 수 있다. 샤워를 진지하게 하고 나와 다시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잘 세탁된 포근한 잠옷을 입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뭉친 어깨를 열어주는 간단한 요가를 하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쉬는게 왜 이렇게 어렵고 죄책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사실 내 마음만 내려 편하게 놓으면 휴식이란건 절대 어렵지 않는데 말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 나에게만 집중하는게 참 쉽지 않다. 집중을 잃어버리는 그 찰나에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온다. 그래서 항상 나를 바라봐야하고 지금에 집중해야한다. 오늘 나는 그 어려운 걸 시도했고 잘 이뤄냈다 :) 매주 주말마다 이렇게 휴식할 순 없겠지만 열심히 잘 살기위해 노력하는 만큼 잘 쉬고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건강한 내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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