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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이 May 28. 2023

기후위기 때문에 부모를 용서하게 된 썰

기후위기시대의 육아

나는 나의 부모를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다.(나의 인스타를 팔로우하시는 분들이라면 대충은 알고 계실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나의 부모는 지독하게도 검소한 사람들이었다. 두 분은 대학에 들어간 오빠에게 차를 사주기 전까지 20년을 자차조차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다. 어디라도 갈라치면 애 넷을 택시에 꾸겨넣어 타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하다.(그런 일들이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살면서 부린 가장 큰 사치는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50평대 아파트로 이사한 것일 테다.(50평대라 하니 뭐 대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지방소도시에서 50평대 아파트는 서울의 20평대 아파트 전셋값보다 못한 가격이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이사를 했는데, 그전까진 애 넷을 32평 아파트에서 키웠다. 바퀴벌레가 드글거리던 그 오래된 아파트는 방이 3개였는데 하나는 안방이고 하나는 오빠가 차지했고 하나는 내가 차지했다. 셋째와 막내는 엄마 아빠와 같이 자거나 가끔 셋째가 내 방에 와서 자는 식이었다. 나는 그럭저럭 불만 없이 살았는데 자기 공간이 따로 없었던 동생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로 더 많은 걸 누리고 자란 게 동생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렇게 50평대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자 엄마는 늘 근심이 가득했다. 좋은 집에 사는 게 주변인들의 시기와 질투를 살까 봐 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도 남의 눈치를 보며 자기 자랑일랑 일채 안 하는, 어찌 보면 좀 답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아마도 일본인이라 더 그런 성향이 강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리고 철없던 나는 당연히 부모님의 라이프스타일에 불만이 많았다.


부모님이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으면 하는 기저에는 뿌리 깊은 죄책감이 존재했다. 나는 누리고 싶으니까. 나만 누리고 사는 게 미안하니까. 그런 나에게 똑같은 옷을 10년씩 입고 사는 아빠 엄마의 존재가 편했을 리 없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끊임없이 내가 이기적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며 죄책감을 고무시키는 재주가 있었다.(내가 좀 누려보려고 할 때마다 등장했던 엄마의 단골 대사:너는 어쩜 너밖에 모르냐... 너는 어떻게 너만 행복하려고 그러냐... 블라블라)


그래서 어떻게든 이 행복(?)의 대열에 엄빠를 합류시키려 노력도 많이 했다. 엄마 아빠가 행복해지면 나도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마음껏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며 공항에서 아빠에게 줄 브랜드 시계를 사 왔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 고가의 제품을 사 보기는 나도 처음이었다. Iwc제품이었고 4-50만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가 그 시계를 받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처음 깨달았다. 아빠도 좋은 걸 좋아하는구나. 싫어해서 안 사고 안 쓰며 사는 게 아니구나. 그 뒤로 아빠에게 비싼 물건을 참 많이도 사다 바쳤다. 하지만 시계만큼 큰 호응을 얻은 물건은 그 뒤로 없었다.


동생들과 십시일반 해서 100만 원을 호가하는 아우터를 엄마에게 사줘 본 적도 있다. 엄마는 기뻐했지만 그 멋진 코트는 요즘도 옷장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아빠는 내가 사준 시계를 매일 차고 다니기라도 하지. 좋은 걸 사줘도 도대체가 쓸 줄을 모르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점은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처음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끼리 제주도 신라호텔에 묵었었다. 우리의 마음은, 이거 봐봐. 엄마 아빠도 좋지? 이런 걸 즐기며 살라고! 였지만 엄마 아빠를 제일 기쁘게 한건 제주도 어느 꽃집에서 사 온 화분과 숙소에서 주워온 동백나무 가지 하나였다. 그 나뭇가지를 벽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고 내내 좋아하셨고, 나뭇가지에서 씨가 떨어져 나오자 그 씨를 화분에 심어 키우셨다. 물론 숙소도 좋아하셨고, 여행 내내 행복해하셨지만 그렇다고 후에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하는 말씀은 좀처럼 꺼내질 않으신다. 그게 우리 가족의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여행이었을 거다.


그런 부모님이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과 달리 여행도 다니시고 골프도 치시는 다른 부모님들이 멋있어 보였던 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나 역시 오랜 세월 지켜봐 온 부모의 삶에 감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공부하며, 마침내 나의 세계가 붕괴되었다. 지금껏 잘못되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내 부모의 삶의 방식이 가장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엄마를 미워했던 마음, 오랫동안 참 많이도 미워했던 그 마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케케묵은 감정의 응어리가 서서히 녹기 시작하더니-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이, 자식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주는 일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니 엄마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도 매듭짓지 못했던 부모 자식 간의 긴 갈등의 세월을 기후위기가 해결해 준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부모처럼, 내 아이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어졌다.




내가 하는 노력들, 솔직히 말하자면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는 노력에 비해 효과는 형편없는, 말하자면 가성비가 최악인 노동인 것이다. 그래도 내가 꿋꿋이 노력하며 살겠다 다짐하는 이유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랑스러운 엄마로 기억되고 싶어서다. 그래, 우리 엄마는 참 검소하고 사치를 안 하는 분이셨어. 그럼에도 진정 삶을 음미할 줄 아는 분이셨지!라고.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부모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일 테다.


옛말에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조선의 정도전이 궁궐을 지을 때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잃는다. 너무 누추하면 조정의 존엄을 보일 수 없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스럽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미(美)이다. 검소한 것은 덕과 같고, 사치스러운 것은 악(惡) 중에서도 큰 것이다. 사치스러운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다.’ 고 말한 내용이 전해진다. 이런 가치관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지금의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등이다. 지난주 엄마학교 소풍으로 간 종묘와 창덕궁 안을 걷는 내내 정도전의 저 말이 뼈아프게 가슴을 맴돌았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으며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삶. 역사 속에서 사치를 일삼은 지도자들은 후세에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정된 재화를 나눠가져야만 하는 세상에서 사치란 나만 더 많은 재화를 차지하는 꼴이니 말이다.


도시에 살며 불자처럼 살겠다는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건 아니다. 도인의 길을 걷기엔 나 역시 5성급 호텔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백화점 쇼윈도에 예쁜 옷을 보면 사고 싶어지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다만, 0보다는 100에 가까워지고 싶다. 100이라는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100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고 싶은. 인간은 늘 완벽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내가 나의 부모를 지켜보며 늘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건 아마도 검소하게 사시는 모습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는 세속적인 것들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관심이 없었고 엄마는 항상 미래를 걱정하며 안절부절하기에 바쁜 사람이었다. 엄마가 검소하게 살면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아빠가 때로는 삶에 실용적인 부분들에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았더라면... 나는 두 분을 언제나 사랑하고 존경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어려운 건 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순간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산다는 건 그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지구를 위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기후위기 덕분에 나는 오늘도 조금씩 더 성장해 나가고 있다. 아마도 부모를 용서하게 된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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