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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이 Apr 25. 2023

내 육아는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

기후위기 시대의 육아


2021년 2월. 나는 마침내 엄마가 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착각을 앞세운 채로.


임신할 당시 나는 어느 중소제약회사에 취직해 연수교육을 받고 있던 신입사원이었다. 한 번의 유산을 한 뒤로 노력했지만 한 해가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임신테스트기 위에 단호하게 그어진 빨간 한 줄이 두 줄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눈을 사팔뜨기로 뜨는 짓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취직이 되자마자 갑작스럽게 임신이 된 것이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아기였는데, 막상 임신이 되니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가 모성이 부족한 엄마라고 느꼈다. 하지만 아이가 생겼다고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내 세대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으므로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 키우는 일보단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그때는 참 그랬다.


그렇게 출산 2개월 전까지 굴지의 대학병원 계단을 오르내리며 영업을 뛰었다. 배가 불러오고, 숨이 찼고, 잠이 쏟아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아이를 낳으면 3개월쯤 쉬다가(쉰다는 표현을 쓰다니, 이제와 생각하니 참 가소롭다.) 복직하겠다 마음먹었다. 나의 미래에는 화려한 커리어와 성공과 명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입주시터나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아 키우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모든 것이 아주 간단해 보였다.


그리고 6개월쯤 뒤. 나는 핏덩이 같은 아이를 안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나의 우주가 송두리째 뒤집히고 있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뱃속에 있던 아기가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아이를 위해 세치가 듬성듬성 난 머리를 질끈 묶고 온몸을 내던지는 엄마의 모습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나는 이미

엄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호르몬의 장난이었을까. 이 멈출 수 없는 광기(?)의 이유는. 산후조리원에서 한통에 6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분유를 선택했던 시점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레이스.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디딘 내 아이에게,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순결 그 자체인 내 아이에게 뭐든 최고의 것을 내어주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모성이라고 생각했다.


베이비타임이라는 어플이 있다. 아이의 수유텀과 수면 패턴 등을 기록하는 어플이다. 그 어플에는 공개육아일기를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내 아이와 같은 개월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적은 일기를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 일기장엔 온통 이런 이야기들만이 존재했다. 내 아이가 분유를 몇 미리를 먹었으며, 얼마나 잠을 잘 자고, 얼마나 놀라운 발달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단순한 기록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엔 내 아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크고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과시가 있었다. 그 일기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는 한없이 불안해지곤 했다. 아니 이 아기는 내 아이랑 개월수가 같은데 벌써 옹알이를 하네? 벌써 통잠을 자네? 벌써 분유를 하루에 1000미리를 먹네! 이유식을 이렇게 잘 먹네?


베이비타임 속 엄친아들을 따라잡기 위해 참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 노력이라는 것은 희한하게도 얼마나 좋은 물건(?)을 찾아내느냐의 싸움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나의 육아를 수월하게 해 주고 내 아이의 성장을 도와줄 최고의 육아템을 찾아내기 위해 눈이 벌게지도록 검색 또 검색을 했다. 참 많이도 샀더란다. 도대체 이 물건들이 없었던 과거에는 어떻게 애를 키웠던 걸까? 젖병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였다. 젖병 젖꼭지는 때 되면 사이즈를 업해줘야 했다. 젖병을 소독하기 위해 반! 드! 시! 젖병소독기가 필요했다. 아니면 엄마가 매일 같이 젖병을 삶아야 하니 말이다.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최고의 분유를 찾아내기 위해 수없이 분유를 갈아탔다. 심지어 분유를 타주는 기계도 있었다. 그 기계를 엄마들은 '브레짜이모'라고 불렀다. 현대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기계로 만들어진

이모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건 미련한 일 같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아이의 잠 문제를 도와준다는 물건들이 특히나 내 구미를 당겼다. 꿀잠 역류방지쿠션(역류를 방지해 준다는데 맨날 여기에다 토했다.), 꿀잠 침대(7만 원 호가. 여기에만 눕히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꿀잠을 재우기 위해 아이의 두 팔을 칭칭 묶어놓는데 쓰는 각종 천떼기들(아이가 극도로 싫어했다.), 아이를 재워준다는 온갖 바운서와 그네들...(아이를 앞뒤로 겁나게 흔들어준다. 여기에 태울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집 앞에는 매일같이 쿠팡에서 배달온 택배들이 한가득 쌓여갔다. 엄마는 대체 뭘 이렇게 많이 사냐며, 제발 좀 그만 사라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했다. 엄마가 뭘 몰라서 그래. 이게 꼭 필요한 거라니까? 그런데 아이를 케어하다 보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시간조차 없었다. 집 안은 잦은 택배로 인해 발생하는 박스와 비닐 등 각종 쓰레기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 쓰레기산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등골이 쭈뼛 솟는 기분이 들었다.


꿀잠 육아템들도 나를 도와주지 못하자, 아이를 '통잠(한 번도 깨지 않고 밤새 쭉 자는 것)'재우는 법을 알려준다는 온갖 육아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육아서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읽어치운(?) 육아서만 50권이 넘을 것 같다. 육아를 공부하면, 육아가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육아서 안에는 분명 필요한 정보도 있었지만, 나를 끊임없이 초조하게 만드는 '이맘때면 이래야 한다'는 공식들이 있었다. 특히나 아이 개월수가 어릴 때의 '잠'문제와 '먹는'문제가 그랬다. 우리 아이에게는 어느 공식하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육아서를 읽을 때면 나는 늘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것은 아이가 4개월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똑게육아'라는 육아서가 있다. 똑똑하고 게으른 육아를 줄여 '똑게육아'라고 칭한 그 책은 자칭타칭 수면교육계의 바이블로 불리고 있었다. 그 책에 따르면 엄마들이 아이에게 잠자는 법을 교육할 수 있으며, ‘꿀잠을 자는 능력‘은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그래 이거야! 사랑하는 너에게 엄마가 반드시 꿀잠을 선물해 줄께!


그 책이 알려주는 방법대로 어느 날 나는 아이를 방에 가두고 1시간을 울렸다. 찢어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 안의 무언가가 갈갈 히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이게 맞다고? 진짜로? 레알? 결국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같이 울었다. 난 실패했다. 내가 충분히 똑똑하고 야무지지 못해서 수면교육에 실패한 것이다. 수면교육에 성공해 아이에게 '통잠'을 선물했다는 인터넷 속 수많은 엄마들을 보며 나는 그들보다 유능하지 못한 엄마라고 느꼈다... 유능하지 못해서 내 아이에게 꿀잠을 선물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무능한 엄마였을까?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고 나 역시 고통스러운 이 방법이 정상 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건 아주 오랜 후였다. (아이를 울려 재우는 방법을 발명한 퍼버 박사는 자신의 방법이 틀렸다는 걸 애저녁에 인정했다는데, 퍼버법은 여전히 수면교육 방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아이가 5개월이 되었을 무렵. 나는 매일 같이 도망치고 싶었다. 잠이 부족했고, 늘 지쳐있었으며 살이 빠졌고 우울했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래서 아이와 있으면서 항시 sns에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어 올렸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이 고독과 권태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지푸기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아파트 단지 단톡방에 공동육아를 하자는 글을 올리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H엄마를 알게 되었다.


오해를 할까 미리 말해두면, H엄마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좋아한다. 인품도 훌륭하고 아이도 이쁘게 잘 키우고 있다. 다만 H엄마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키우며 이 문화 속에 함께 휩쓸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좋아 보였다. 그녀의 아이는 진즉에 수면교육에 성공해 분리수면을 하고 있었다. 수면교육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뒤에서 후광이 나는 것 같았다. H엄마를 따라 수많은 육아템들을 구입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야무지고 성실했기에 그녀가 좋다고 하면 다 좋아 보였다. 그녀가 사용하는 물건들을 따라 사기만 하면 그녀처럼 똑부러지게 육아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삽시간에 우리 집에는 50만원을 호가하는 아기 의자와 거대한 매트가 깔렸고 더 많은 물건들과 장난감이 쌓여갔다.


화룡정점은 그녀가 프뢰벨 사의 토탈시스템을 계약한 일이었다. 이 토탈시스템이란, 몇 개월마다 고가의 아이 책과 장난감이 배송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아이가 6개월 정도 될 무렵이면 모든 엄마들이 육아 권태에 빠지며 이제 아이를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각종 사교육(문센, 방문수업, 센터수업 등)과 이 개미지옥 같은 전집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나는 h엄마가 전집을 사는 것을 보고, 뭐에 홀린 사람처럼 매일 같이 아이책을 사들였다. 당근에서 중고로 구입하기도 하고, 어린이 책방에서 구입하기도 했으며, 인터넷으로 사기도 했다. 인스타와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공구(공동구매)는 놓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를 설명하자면 사실... 미친년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나는 미쳐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애 책을 사댔던 것일까. 매일 밤 뺑구닷컴(어린이 책 리뷰와 정보들이 올라오는 카페)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좋다는 책들을 모조리 사 제꼈다. 집에는 새 책장들이 끊임없이 들어왔으며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쌓여갔다.


한글 책을 살만큼 사들이 고나니, 또 영어책을 사야 한다고 했다. 지금부터(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는 6개월이다)영어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영어책이 또 그만큼 쌓여갔다. 나의 통장잔고에는 적색신호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해지자 남편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아아, 여기까지 적으련다. 너무 부끄러워서 더 이상 적을 수가 없다. 이쯤 되면 당신도 눈치채셨는가. 내 육아가 어떤 방식으로 지구를 향해 탄소를 내뿜고 있었는지를 말이다.(비단 일회용 기저귀와 물티슈 사용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데 이 많은 물건들이 정말로 필요했을까?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사 쟁이게 만드는 '불안감'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비교'였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게 만드는 힘. 우리는 이 비교의 노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더 있어 보이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물건을 사들인다.


좋은 집, 좋은 차, 멋진 옷... 비단 물건뿐일까? 해외여행, 호캉스, 오마카세 식사... 이런 것들은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모든 게 다 남들과 나를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환경에는 무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안하지만 모든 종류의 사치는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의 시커먼 굴뚝, 그 자체다.


내 육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바로 비교 때문이었다. 50일에 벌써 통잠을 잔다는 옆집 순둥이, 분유를 1000미리씩 먹는다는 뒷집 통통이, 프뢰벨 영아다중을 무려 80만 원이나 내고 새 걸로 사줬다는 남편 친구 엄마, 아기에게 백화점 옷만 사 입히는 인스타 속 화려한 인플루언서들... 그들과 비교했고 이기려 들었기 때문에 나는 수많은 물건을 사들였고, 결론적으로 행복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비교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사들인 물건들이 내 집을 잠식하고, 내 마음의 평온을 갉아먹고, 결과적으로 육아에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았으며, 이 지구까지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오 마이 갓.


이건 아니지. 이건 정말 아니지! 나는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

정말이다. 단 한 번도 이런 양육방식을 원한 적이 없었다.


비싼 장난감을 들고 다니며, 명품옷을 입고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다른 아이들을 기죽이는 아이가 아니라 세상과 공존하고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었다.


이건 잘못돼도 한참을 잘못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내 방식을 과감히 뒤엎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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