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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이 Mar 24. 2023

내 주제에 무슨 기후위기.

기후위기 시대의 육아

고백을 하나 하고 싶다.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이기적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기적으로 살아갈 것이 아주 뻔한 인간이다. 이런 나에게 감히 ‘기후위기’라는 인류사적 재앙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차를 타고 다니고, 철철마다 해외로 여행 다니고, 육류와 해산물을 매 끼니 소비하며 한평생을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온 나에게 말이다.


두려웠다.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나에게 날아들 수많은 비난의 화살들이. 그래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소고기 안 먹을 수 있어? 해외여행 안 다닐 수 있어?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자본주의 시대의 한가운데서 태어나, 문명의 혜택을 호사스레 누리며 살아온 내가 그 편리와 안락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어제만 해도 커피를 사주겠다는 누군가의 말에, 커피와 일회용 컵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번뜩, 뇌리를 스쳐갔지만 당장의 허기짐과 공짜라는 유혹 앞에 쉽게도 굴복해 버린 나였으니.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나 같은 사람은 기후위기에 조금도 이바지할 수 없을까.


육식과 여행과 플라스틱 소비를 삶에서 완벽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걸까.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하여 나는 이 처절한 모순과의 싸움을 이 공간에 낱낱이 기록해 보기로 결심했다. 한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삶 속에서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발악하는 과정을 말이다.   







2021년 2월. 딸아이가 태어났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우고 살면 그만이던 30여 년의 삶을 뒤로하고 나는 남의 똥을 치우느라 내 똥을 치울 시간이 없는 극한의 상황에 직면했다. 내가 아닌 한 인간의 삶을 오롯이 책임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던 세계를 완벽히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동안은 나만 잘살고 못살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나의 선택에 따라 내 딸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이었다. 출산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부터, 분유와 기저귀를 고르는 사소한 일까지.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짊어져야만 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이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고민하다 보면 작은 선택조차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책임감의 무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부터였을까.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커녕 철석같이 옳다고 믿어왔던 내 라이프스타일의 일그러진 면면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예를 들면 이런거였다. 어느날 문득 거실을 둘러보는데-온 집안을 숨막힐 듯 잠식하고 있는 각종 육아템과 플라스틱 장난감, 책들의 산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는데 반!드!시!. 꼭!필요하다고 외치기에 산 이 물건들이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나의 가치관, 나의 신념, 나의 생활방식, 나의 정치성향과 사상, 내가 고수해 온 삶의 철학들이 아이를 키우는 일 앞에서 철저히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나를 고쳐야만 했다. 나는 한 길을 가다, 완전히 그 길을 뒤집어엎고, 그 길을 다시 뒤집어엎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어느 순간 누구의 말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나를 제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기후위기인간'이라는 웹툰을 접하게 되었다.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던 내 머릿속의 퍼즐들이 마침내 하나로 맞추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피부로 절절히 느끼고 있던 내 삶의 오류들이 보다 거대한 전지구적 문제를 초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세상을 대해왔던 나의 태도가, 나아가 우리 세대의 태도가, 나아가 인류의 태도가-어떤 끔찍한 결과들로 우리 모두를 몰아가고 있는지. 그 최후의 순간에 누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지를 확인하는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며칠간 잠을 이루질 못했다. 꿈속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고, 등에 총알이 박히는 선명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몸을 떨며 잠에서 깨어나곤했다. 그렇게 눈을 뜨면 곁에는 토끼 같은 딸아이가 숨소리를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젠장할. 내 인생은 망해도 되지만, 사랑하는 딸의 인생은 망해서는 안되었다.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어린 생명의 삶 앞에 가뭄과 재난, 전쟁과 종말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나는 명백한 '기후 우울'을 겪고 있었다. 이런 용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감정적 동요와 좌절을 겪고 있었다. 기후우울을 겪는 이들은 누구라도 극심한 무기력을 겪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문제는 명백하고 결과는 참대한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라도 된 것 마냥, 나는 절망하고 슬퍼했다가 이내 무기력해졌다. 무기력이 온몸을 잠식해 가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육아를 했다. 우울하다고 해서,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해서 삶은 속도를 늦춰주지 않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기후위기와 관련된 책들을 탐독했고 관련된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모든 과학적 데이터들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인간이 배출해 낸 탄소가스로 인한 지구 온도의 상승, 그로 인한 인류의 멸종을 예언하고 있었다. 가장 끔찍한 사실은 그 데드라인이 100년 뒤 200년 뒤가 아닌, 불과 2-30년 뒤라는 사실이었다. 내 아이가 한창 싱그러운 젊음을 누려야 할 시기에, 인류의 종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토록 의심이 많은 내가 왜 기후위기라는 담론 앞에서는 이것이 거짓된 데이터라거나, 누군가의 음모라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면 내 양심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모양 이 꼴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보다, 이렇게 살면 망한다는 명제가 더욱 타당하게 들릴만큼 나는, 삶을 일회용품 쓰듯이 흥청망청 낭비해 온 인간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아껴본 적'이 과연 있었나? 물을 펑펑 써대고, 여름엔 냉방을, 겨울엔 난방을 풀가동하며, 귀찮다는 핑계로 분리수거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계절마다 폴리에스터가 함유된 싸구려 옷들을 마구 사재 끼고, 다음 해가 되면 입을 옷이 없다며 다시 쇼핑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옷장안이 몇번 입지 않은 옷들로 터져나가도 멈출 줄을 몰랐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렸으며 그렇게 살면서도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사실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았다. 내 삶은 탄소를 뿜어대는 공장의 시커먼 굴뚝,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를 좌절케 한 건 결코 인류의 멸망 따위가 아니었다. 내 딸의 미래에, 이제 막 세상에 피어난 한송이 들꽃 같은 그 아이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아이의 미래에 멋진 학교와 좋은 친구들, 자아를 실현해 주는 직업과 따뜻한 가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가뭄과 재난과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자식의 안위만이 중요한 인간이었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았더라면, 과연 인류의 암담한 미래에 대해 일원만치라도 관심을 가지기나 했을까.


그날 이후로 엄마의 목소리가 헐벗은 유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너는 어떻게 너만 생각하며 사니."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의 나의 20대를 오롯이 바쳤는데.

나는 결코 이기적인 게 아니라 진취적이고 현명하고 논리적인 인간이라고.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내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엄마의 삶의 방식은 미련하고 멍청한 것이라고.

온 집안의 플러그를 매일같이 뽑으러 다니고, 강박적으로 분리수거를 하고, 시답잖은 물건 하나 버리지 못하는 엄마를 비웃었었다.


'아 그냥 좀 누리고 살아.'

'돈 벌어 뭐 해?'

'옷 좀 사 입어 제발. 해외여행도 좀 다녀, 근사한 데로.'

'제발 아끼지 좀 마. 아끼다 똥 돼.'

'제발 그냥 좀 버려!'

'제발 제발 제발.'


그 세월이 나를 지금 이 자리로 오게 했다.

이 뼈저린 참회의 자리로 말이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와중에 어디 지푸라기라도 없나 거품 속을 휘젓는 마음으로 갑작스레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물을 아끼고, 콘센트를 뽑고 다니고, 불을 끄고 다녔다. 그런 내 모습이 사실 우스웠다.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내가. 그 와중에도 허무주의적인 생각들을 하며 보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나 하나 바뀐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나.


분노하고 싶지도 않았다. 감히 누구에게 분노를 하겠는가. 내가 이모냥 이꼴로 살아온 것을. 그렇다고 마이크를 들고 광장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럴 배짱조차 없는 인간이니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데로 그냥 살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긴 동굴을 빠져나와 나는 이 공간으로 들어왔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수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남편과 세상을 떠도는 낙으로 살고 있었다. 여행기를 써보겠다 야심차게 시작한 브런치였건만, 그리스 여행기 한편만이 여전히 발행되지 못한 채 서랍 속에 쓸쓸히 버려져 있었다.


나는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환경과 육아라는 키워드로 갈아 끼웠다. 부끄러움에 치가 떨렸다.


누군가 나에게 완벽한 비건으로 살아갈 수 있냐고, 플라스틱을 사용 안 할 자신이 있냐고, 여행을 평생 안 하고 살 수 있냐고 물으면 솔직한 내 대답은 “법이 강제하지 않는 한 못 할 것 같다.”이다.


이런 내가 감히 누군가에게 환경을 보호하자느니, 쓰레기를 줄이자느니, 에너지를 아끼고 육류 섭취를 줄이자느니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변화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무어라도 해야만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삶을 살아가는 것은, 딸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는 일이라고 느꼈다. '기후위기인간'을 그린 구희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나의 딸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서다.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기후 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가올 기후위기에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게 될 세대이기 때문이란다. 이 아이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을까.


산업혁명 이후로 지구의 축적된 온실가스의 절반이 90년 이후에 배출되었다고 한다. 나의 탄생과 더불어 이 무차별적인 인류의 폭주는 시작된 것이다. 현대문명이 주는 짜릿한 속도감과 즐거움을 평생에 걸쳐 누리며 살아온 나는 그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삶이 어떻게 자원을 소비해 왔고,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굳게 믿었던 그 방식이 결과적으로 어떤 불행을 초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비단 기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환경보호를 독려하는 글이기보단 참회록에 가깝다. 어느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으니 부디 상처받지 말아 주시길. 그저 한 인간의 뼈저린 후회와 속죄의 고해성사를 묵묵히 들어주시길 바란다.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그 위로가 가능하다면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내 딸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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