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의 일입니다. 시험기간을 맞이한 저는 제일 자신 없는 사회 시험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 선생님은 문제를 까다롭게 내시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어설프게 공부했다가는 50점도 못 맞는다는 것을 저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험 보기 전에는 기필코 '잘 아는' 상태로 다시 태어나야만 했지요.
다음날 사회 시험을 앞두고 한차례 공부를 마친 저는 볼일이 있어 아랫집 동생을 찾아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그 집 큰언니가 물었습니다.
"시험 기간이지? 내일 시험 준비는 다 되었어?"
"응, 언니. 나 이번에는 공부 많이 했어."
"그래? 그럼 어디 볼까?"
'시험공부가 잘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언니가 내 손에 있던 사회 교과서를 빼앗아 질문 공세를 시작합니다. 질문은 개념을 묻거나(민주주의가 뭐지? 와 같은) 아니면 문장을 읽다가 중간에 단어를 빼고 말하는 일종의 가로 넣기 문제였습니다. 공부를 다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어찌 된 일인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 교과서에 저런 게 있었나?', '알긴 하는데 막상 대답하려니 못하겠네.' 생각하며 어물어물하니 언니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합니다.
"너 공부 다 했다며, 시험 치기에는 좀 위험해 보이는데?"
참으로 당황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시험에 대비해서 교과서도 여러 번 읽었고, 문제집 한 권도 범위까지 다 푼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내용을 달달 외운 것은 아니지만 시험은 대부분 객관식 문항이니 이 정도 공부하면 시험범위 안의 웬만한 문제는 맞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용어의 뜻이며 용어 간 관계들을 교과서로 꼼꼼히 물으니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질문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보아하니 시험에 나올 키워드임이 분명했습니다.
'큰일 났다, 어쩌지?'
사회책을 돌려받아 집에 오면서 저는 제가 했던 공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게 시험공부라는 것은 일종의 할 일 해치우기였습니다. ‘교과서를 3번 읽는다, 문제집 한 권을 푼다.’와 같이 말입니다. 이 일들을 다 했으면 공부를 다 한 것이고 시험 준비가 다 된 것이라고 생각했지, 교과서의 빈칸을 직접 채울 수 있을 만큼, 단어의 의미들을 술술 말할 수 있을 만큼과 같이 내가 아는 정도를 가늠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한 주요 단어와 정의들을 내가 진짜 알고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언니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시험에서도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부가 다 되었는가의 여부는 얼마나 공부를 오래 했나, 얼마나 갖가지 공부를 했나가 아니라, ‘그 내용을 내가 직접 이해하고 기억해서 진짜로 말할 수 있는가‘로 판가름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를 나보다 훨씬 잘 했던 아랫집 언니는 평소 이렇게 공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험 준비를 하려면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공부를 했다면 이제 내가 공부한 내용을 알게 되었는지, 공부가 충분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사고 능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와 같이 자기 생각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색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메타인지 덕분에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즉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민주주의가 뭔지 아니?'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은 누구라도 그 즉시 내가 안다, 모른다를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컴퓨터가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기억장치 전체에서 '민주주의'라는 내용이 있는지를 다 뒤져본 후에야 답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같은 방식의 메타인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자면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모르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내가 모르는 것을 찾아내어 알도록 바꾸는 공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며 이것을 알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메타인지능력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갖는 대표적인 특성이자 학습자에게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앞에서 저는 사회 시험범위 내용을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님에도 공부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착각에 빠진 것일까요? 그것은 익숙함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문제를 푸는 동안 전반적인 사회의 내용에 익숙해졌고 오직 그 느낌에 의존하여 ‘다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메타인지는 ‘그 정보가 익숙한가?’를 기준으로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판단합니다. 메타인지 덕에 기억 전체를 뒤지지 않고도 순간적으로 ‘내가 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지만, 반면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도 안다고 착각을 일으킨 것입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지식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2 하나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도 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지식만이 진짜 지식이며 내가 쓸 수 있는 지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지식은 익숙함에 속고 있는 가짜 지식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렇듯 내가 어떤 지식을 정말로 알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하려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안다는 느낌만 있는 것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메타인지능력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운동을 해서 근육을 단련시키듯이 메타인지능력 역시 자꾸만 사용함으로써 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3 즉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스스로 판단해보고, 실제로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서 내 판단과 실제가 얼마나 일치하는가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 작업의 대표적인 예로 ‘시험’이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시험을 치른 후에 의외로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을 깨닫게 되듯이, 시험을 보면 쉽게 내 생각 속 실력과 실제 실력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험 이외에 평소에도 메타인지를 활용해서 공부할 수는 없을까요? 그 간단한 비결이 바로 출력식 공부에 있습니다. 출력식 공부란 지식을 받아들이는 활동을 '입력', 알고 있는 지식을 꺼내보는 일을 '출력'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식을 꺼내어 확인하는 공부 방식을 말합니다. 출력식 공부는 입력식에 비해 에너지가 많이 들고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머릿속의 지식을 직접 쓰거나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학생들은 복습을 하자고 하면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책을 다시 읽는 것과 같은 편한 방법으로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공부에 관한 책『완벽한 공부법』에서는 직접적으로 입력식 공부인 '추가 강의 듣기'와 '단순 반복 읽기'가 매우 비효율적인 복습이라고 말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생각하는 복습이 추가로 강의를 듣는 것이거나 단순 반복 읽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공부의 효율성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공부는 했지만 자기 생각보다 성과가 나오지 않게 된다."4
그 이유는 입력 활동인 인터넷 강의 보기나 수업 듣기로는 뇌의 교감신경계가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아서입니다. 뇌가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실제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등의 입력식 공부와 설명하기, 가르치기와 같은 출력식 공부의 공부 효율을 비교했을 때, 출력식 공부가 입력식 공부보다 8배 정도 높은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5
이전 글에서 저는 복습하는 학생들이 적은 이유가 한 번 배우고 나면 다 안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메타인지의 착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습을 한다 하더라도 강의를 듣거나 단순히 여러 번 읽고 내용을 입력만 해서는 메타인지의 착각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공부는 효율 높은 공부입니다. 당장 번거롭더라도 내가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꺼내어 그 지식이 맞는 내용인지, 충분한지, 내가 잘 꺼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출력식 복습은 그냥 ‘공부를 많이 했다. 오래 했다’가 아니라 ‘공부가 되었다. 알아졌다’를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복습입니다.
메타인지가 단련되는 효과적인 복습을 하려면 공부의 목표를 '배운 내용을 내가 출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습하는 동안에 실제로 출력을 해봐야 합니다. 애써 어렵게 공부하면 더디게 잊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그 '애쓴다'라는 말은 ’오랜 시간, 놀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라는 뜻이 아니라 출력식으로 적극적인 공부를 하느라 두뇌를 최대출력으로 사용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 Image by Kevin Phillips fromPixabay >
2 김경일, (네이버캐스트) 『생활 속의 심리학』 「또 다른 지적 능력 메타인지」
3 리사 손, 『메타인지 학습법』 (21세기북스, 2019) 23~25쪽 참조
4 고영성, 신영준 『완벽한 공부법』 (로크미디어, 2017) 101쪽 참조
5 김경일, 『십대를 위한 공부사전』 (다림, 2019) 156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