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골 생활 희망편 (3)
쟤네 외* 키스해? (어리둥절)
미국의 연말 홀리데이 시즌의 시작은 할로윈 파티이다. 미국 깡시골도 다르지 않다. 시골의 캠퍼스 타운이라면, 반드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파티 하우스들이 몇몇 있다. 시골엔 큰 영화관도, 데이브 앤 버스터즈같은 아케이드 게임장 (Arcades game: 오락실 게임들)이 없다. 도시처럼 다채로운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에 밤이면 집에 모여 술 마시는 분위기이다. 미국 전체가 연말 분위기에 휩쓸린 가운데, 대학교의 가을 학기는 술게임과 함께 쭈욱 달리다가 끝난다. 그 안에서 영화같은 파티 안의 NPC가 되는 경험도 가능하다. 다음날은 행오버 (Hangover: 숙취)로 고생하게 되는 그런 파티에서 미국 MZ들은 어떤 술게임을 할까?
미국 대학생 파티 = 할리우드 대환장 영화
미국 시골의 대학생들은 바 보다는 친구의 집에서 모여 술파티를 한다. 신입생들은 서로 친해지는 밍글링 (Mingling)을 하느라 더더욱 달린다. 요즘 한국의 새내기들은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 때문에 상황이 좀 다르겠지만, 시골의 놀고 싶은 프레쉬맨 (Freshmen: 1학년)과 소포모어 (Sophomore: 2학년)들은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공부한다. 목요일 밤부터 다운 타운에 있는 조그만 바는 술에 취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젊은 영혼들로 미어터진다. 하지만, 바에서 먹는 술은 한계가 있다. 일단 리쿼샵 (Liquor shop)보다 술이 훨씬 비싸고 바텐더에게 팁도 줘야 하기 때문에, 취할 만큼 많이 마시지도 못한다. 그래서 시골 캠퍼스 타운에서는 누군가의 집이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고 모두가 모이는 파티 하우스가 된다. 그 파티 하우스에서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초대하고 서로 누군지도 모른 채 파티를 이어간다.
왁자지껄에서 와장창창, 결국엔 삐용 삐용
시도 때도 없는 대학생들의 술파티 때문에 학부생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들은 밤에도 시끄러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학원생들은 요주의 아파트들을 피해서 렌트 계약을 하기도 한다. 잘못 하다가는 써라운드로 남들이 파티하는 소음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골 주민들은 소음에 관대하지 않다. 밤에는 특히 시끄러운 파티 음악과 함성 소리에 열받은 주변 주민들이 철없는 이웃을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신기한 건, 그러면 시골에서는 바로 경찰이 온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경찰에겐 워낙 다양한 사건 사고와 진짜 범죄가 많아서 소음 따위는 신고 대상이 되기 어렵지만, 범죄율이 아주 낮은 뉴 잉글랜드 시골에서는 이웃 간의 소음 갈등도 경찰의 주된 임무이다.
2004년작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Mean girls)> 속 할로윈 파티를 4D로 체험하기
대학원 신입생일 때, 어쩌다 할로윈 홈파티에 건너 건너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그니까 그 홈파티의 호스트는 학부생으로 나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그만큼 누구나 웰컴이었던 대규모 파티였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물을 찾으러 주방으로 갔을 때이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주방 한가운데에서 키득거리고 있던 두 사람이 갑자기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마도 신입생인 것 같은-아주 어려 보이는 세 명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둘만 뭔가 통했던 것 같다. 어둑어둑한 로맨틱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갑자기 펼쳐진 생판남의 실시간 키스신에 무척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봤던 미국 대학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지극히 현실적이었음을 내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할로윈용 거미줄 (Spider web)으로 집을 잔뜩 장식해 놓아서 으스스한 (Spooky) 분위기도 나고 귀신 든 집 같았다. 아파트가 아니라 지하실도 있고 꽤나 큰 주택 구조라서 미국에서의 홈파티라는 실감이 더더욱 났다. 집 안엔 30-40명 이상이 서서 맥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술 게임을 하고 있었고, 항상 누군가가 떠나고 누군가가 새로 입장했다. 다들 더 재밌는 파티 장소를 찾아 열심히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처음 미국의 전통적인 술게임인 비어퐁도 해봤다. 나도 새내기 때는 술자리에 꽤나 참여해보았지만, 이런 대규모 미국식 홈파티는 처음이라 어리둥절하면서도 신기했다.
이거 지어낸 거 아니야?
미국 MZ이자 인싸 재질인 지인이 자주 한다는 요즘 유행하는 술게임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했다. 미국인들은 술 마시며 대화하는 걸 즐기고, 지나친 술 문화에 대해 곱게 보지 않는 편 (알콜 중독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많다보니)이라 술게임을 잘 안 하는 줄 알았다. 미국에 살면서도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게임들이 많았다. 내 동년배인 다른 미국인 지인도 이런 게임들은 처음 들어본다고 할 정도이다. 미국 술문화를 즐기는 데 있어서도,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결이 다른가 보다. 이 중에선 나도 꼭 해보고 싶은 게임도 있었다.
샷 스키 술게임 (Shot ski drinking game)
굳이 스키에다가 잔을 올려놓고 다 같이 마시는 게임이다. 심지어 이 샷 스키를 위해 만든 스키를 엣시 (Etsy: 미국의 개인 브랜드 판매 플랫폼)에서 따로 판매할 정도이다. 겨울에 스키 트립을 가면 내 스키를 가지고 이 게임은 꼭 해보려고 한다.
비어 다이 (Beer die: 맥주 주사위 게임)
유튜브에 재밌는 비어 다이 모먼트가 숏폼으로도 많이 올라와 있다 (사실 그 영상들 자체가 그리 재밌게 보이진 않는다. 그저 술 취해서 웃겨 보이는 것 뿐. 아마 직접 해보면 다르겠지). 보통 2:2나 3:3의 팀 게임으로 공격과 방어를 차례로 진행한다. 테이블의 반대편에 서서 주사위를 던져 상대방의 컵에 넣거나 컵을 맞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드시 주사위를 높게 던져야 한다. 이때 공격을 하는 상대편이 던진 주사위가 테이블에서 튕겨 나오면, 수비 팀은 주사위가 땅이나 다른 물건에 닿기 전에 한 손으로 잡아야 공격팀에게 술을 먹일 수 있다. 공격팀이 던진 주사위가 천장에 닿거나, 컵에 닿지 않고 테이블에 떨어지면 공격팀이 술을 먹어야 한다.
비어퐁 (Beer pong)
미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아주 전통적인 술게임이다. 특별한 룰 없이, 테이블 위에 맥주를 따른 컵들 안에 탁구공을 던져서 들어가면 마시는 게임이다. 빠르고 단순해서 재밌다.
내가 절대 해본 적 없는 것 말하기 게임- 네버 헤브 아이 애버 (Never have I ever or ten fingers game)
한국에서 유행한 손병호 게임과 비슷하다. 질문자가 "나는 ~ 해본 적 없다"라고 말하고, 그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술을 마신다. 말하기 곤란한 짓궂은 질문이나 본인 빼고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을 하는 게 포인트이다.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신다. 우리 모두 마신다.
미국의 술게임은 한국처럼 서로 둘러앉아서 정말 게임처럼 룰을 제대로 알고 하는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이다. 오직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고, 모두가 지든 이기든 술을 마시는 합리적이면서 요상한 구조이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하지 않다. 평소엔 남에게 강요나 권유를 안 하는 미국인들이지만, 학부생 파티나 친구들끼리의 술게임에선 그런 조심스러운 매너는 개나 준다. 그냥 즐겁게 술 마시며 취하면 된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술파티가 많기 때문에, 굳이 서로를 몰라도 쉽게 쉽게 할 수 있는 술게임들이 인기 있다.
반면, 나는 미국 유학 이후엔 오히려 술을 안 마시게 되어서, 점점 취미나 대화 중심의 모임이나 보드게임 동호회를 즐기게 되었다. 술 안 마시는 사람들을 위한 미국의 보드게임 문화는 다음에 소개해 볼 예정이다. 뉴욕에서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술을 마셔야 편하다. 모임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될 때가 있다. 직장 내 팀 회식도 절대 강요는 안하지만, 어쩐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끼리 친한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내년을 위한 나의 목표 (New Year's Resolution)는 술 안 마셔도 즐겁게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더 사귀는 것이다. 숙취 없이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많이 마주칠 수 있는 행운을 바라본다.
* 왜를 외로 일부러 틀리는 외않돼? 밈을 응용한 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