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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Jun 13. 2023

스물여섯 명의 엄마들의 영화 이야기

 부너미,<우리 같이 볼래요?>를 읽고

덥다. 날씨 탓만은 아니다. 차가운 회를 먹다가 속에서 천불이 난다. 어른들 식사하는 자리였지만 버르장머리고 다 내던지고 또 끼어들었다. "아니 이건 돈 몇 푼 문제 아니라고요. 남의 성 가진 애 키우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 이름 석자로 살겠다는 문제입니다."

무슨 주제가 나와도 깔때기가 이리로 향하는 걸 보면 문제는 문제라고 인식은 하나보다. 오늘 뜨거웠던 중국대사 발언 문제에서 이민정책 문제로, 이민이 왜 필요한가에서 저출산 문제로 금새 불은 옮겨붙었다. 아재들의 대화란 그렇다. 자신의 삶은 점잖게 미뤄두고 세상사 논하기 바쁘다. '혼자사는 이기적인 사람들 싱글세 매기고 각종 사회안전망 서비스 혜택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그동안 찔끔찔끔 줘서 소용없었잖습니까? 그냥 애 낳으면 3억 딱 주고 시작하게 해야 해요'(?). 저마다 대책을 강구하시는데 참 듣는 입장에서 난처하다. 나도 묻고 싶다. 들인 돈이 얼마인데 인식이 아직도 이런지.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벗인 사비연필님의 책이 떠올랐다. 한참 전에 읽고도 따로 독후감을 쓰지 못한 채 차일피일 지나고 말았는데, 오늘 어르신들이 불을 댕긴 셈이다. 부너미. 결혼한 여성들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이란다. 26인의 저자가 본 영화, 그리고 자신의 삶 이야기를 담은 책. 이 중 한 대목이라도 남자으른들이 마음을 담아 읽어본다면.


남성들이 아무런 자각 없이 '무심코' 던지는 말로 그어지는 단절. '엄마는 참 대단해'. 칭찬이라고 했겠지만, 육아가 내 영역은 아니라고 전제하는 이 말의 차폐 효과는 얼마나 막막하게 느껴졌을까. 머리가 근질거렸다. 나도 무심코 던진 말들은 없었나? 말만 했겠나. 온몸으로 육아를 버거워하며 아내를 불안에 떨게 했었다. 몇 번이고 아내에게 물었었다. 저 울음소리, 고함소리, 부스럭 소리를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당신은 어떻게 견디냐고. 아내는 울먹였다. 나도 힘들다고. 하지만 그걸 못 견뎌서 어쩔 줄 모르는 당신을 보는 게 더 힘들다고.

그녀의 이야기 전개는 내 예상을 빗나갔다. 나는 남성을 대표해 혼날 각오를 하며 읽어내려갔지만 그런 꾸중은 확인할 수 없었다. 남편을 비난하거나 남편에게 전가하는 방식의 길은 고려조차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돌보고, 강해지기로 한다. 영화 주인공 샘처럼(영화 제목은 "펭귄 블룸"-넷플릭스에 있다). 가족은 그저 도울 뿐. 결국 일어서는 것은 스스로의 선언과 결단이라는 단단한 문구가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언어를 아재들에게 돌려준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삶, 자식의 오명을 뒤집어쓰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삶, 신모계사회-k 장녀로 이어지는 돌봄의 삶. 육아, 돈을 버는 남편 밥해주고 빨래해 주고 가정의 재생산을 담당하고, 어르신 돌보다, 다시 손주 육아로. 끝나지 않는 이 돌봄의 굴레와 순환. 그러면서도 그 돌봄은 단 한 푼의 경제적 가치로도 환산되지 않는다. 그림자 같은 삶이 아니라 그림자보다 못한 삶.


그 삶 돈 줄 테니 계속 이어가시라고, 얼마면 되겠냐고 묻지 마시라 제발. 얼마인지 세어본 적도 없지 않은가.

부너미 작가들 덕에 나도 적잖은 오해와 불필요한 죄의식에서 조금은 벗어난다. 그녀들은 남성들에게 무조건 죄인이라 손가락질하고, 반성하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나려 하는 것이다. 최대한 나눠지면 된다. 외면하지 말고.  

https://m.blog.naver.com/qir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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