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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Jun 28. 2023

나는 왜 쓰는가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를 읽고


1. 쓰는 것은 재생산이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읽는 것이라면, 운동하고 샤워하듯 써야지. 오늘이 피곤해서 쉰다면 내일은 당장 어디서 시작할지 조금 막막할 것이고, 일주일이 지나면 녹이 슬고 살이 찌기 시작할 거야. 맞다. ‘왜’에 대한 답이라기보다,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저 다짐이고, 선언이다.



2. 삶이란 순간순간 찍히는 점들로 가득 차 있으며 점들을 이어놓지 않으면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흘러가 버린다. 돌아봐야만 삶의 점들을 연결할 수 있고(103p.), 돌아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였다. 하루 내내 영상을 찍고 고프로를 돌려 유튜브를 찍어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비디오보다는 글의 효율이 높다고 믿는다. 사실, 돌아보는 일은 반드시 글로만 가능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짓거나 요리, 바느질을 하거나 다른 것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유일하게 남들이 봐줄 만큼 할 줄 아는 것이 쓰는 것이다.



3. 실은 읽고 쓰지 않고 다른 행위에 빠져들면 내가 나를 파괴할까 봐 쓴다. 정확히 나는 이미 그것을 경험했었다. 일에 지쳐 돌아온 밤이면, 그게 무슨 희생제의라도 되는 양 나는 TV를 켜고 좀비와 폭력과 피가 난무하는 시리즈물을 보며 술을 마셨다. 그러다 내가 제물이 될 뻔했다. 지금도 실은 위태롭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먹고 마시며 보고 싶은 몸의 관성이 움트는 밤이면 책을 펴고 키보드를 켠다. 소파에 누워 남에게 뇌를 내맡기지 말고, 허리를 곧추세워 삶을 직시하고 돌파하기로 한다.



4. 삶이란 계획대로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될까 봐 쓴다. 사실 삶은 던져진 것이고, 우연의 산물이자, 무심한 중에도 잘 살아남은 것은 억세게 운이 좋은 것에 불과했다. 대부분 내 계획대로 되질 않았고, 계획이라 생각한 것들도 대부분 상황과 여건에 맞게 기회주의적으로 대응한 결과였다. 삶에서 한번 미끄러져 보니, 그리고 하루하루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인과를 생각해 보며 쓰다 보니 조금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예측하고 계획하고 생각대로 안 된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지. 얼마나 자연스레 삶과 인연은 되어지고 흘러가는지.



5. 아니, 실은 다 바람이다. 쓰면서 저렇게 성인군자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날 쓰게 만드는 동인은 단 하나다. 질투심이다. 잘 쓴 글을 보면 미친 듯이 따라 쓰고 싶다. 너무 아름다워서 따라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나도 저렇게, 저만큼, 아니 실은 저보다 조금만 더 잘 쓰고 싶다. 그래서 쓴다. 억만금 벌고 싶은 생각 없다. 누군가에게 기억될, 아니 그냥 내가 보기에 기가 막힌 그런 글 한번 써보고 싶다.



6. 세상사 답답해도 대부분 가슴에 묻지만, 답답해서 쓸 때도 가끔 있다. 저걸 보라고 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가리키고, 빛을 밝히는 것. 우리를 붙드는 삶을. 우리가 아는 삶을. (177p.)사람들이 엉뚱한 말을 주고받고 있는데 듣고 있자니 답답해 울화병이 날 지경일 것 같으면 한 마디 결국 하고 마는 것이다. 논의의 시의성을 감안한다는 핑계로 일필휘지 튀어나오는 대로 지껄이고는 며칠 지나 후회하고 얼른 비공개로 전환하곤 한다. 하지만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닐지라도 가슴에 품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일을 이렇게 서투르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요즘 늘 괴롭다. 커서가 가장 오래 머무는 지점도 여기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확증편향의 시대에 솔깃하게 말을 거는 설득의 방법을 고안하고 싶다. 이미 보고 있는 사람 말고 안 보고 있는 이에게 보라고 해야겠기에.



7. 당신같은 글벗을 만나 말걸기 위해 쓴다. 인생의 하필 이때 우리는 만났고 모여서 4권의 책을 함께 읽고 썼다. 쓴 것을 나눠 읽고, 굳이 평은 하지 않았고, 그저 즐거웠다. 왜 쓰려하는지 서로 들어주고 북돋워주고 응원해주었다. 별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그저 빛나고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듯, 우리도 그렇게 쓰고 있는 서로를 확인하며 성실하게 반짝이며 웃어주자. 윤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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