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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Oct 20. 2019

혜인이 엄마 말고, 영숙씨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를 읽고


나는 박막례 할머니의 유쾌함과 호탕함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편’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셨고, 지금은 손녀와 함께 유튜버로 활동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고 계신다. 항상 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따뜻하신 분이다. 할머니의 편으로서 할머니의 책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사실 책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의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유튜버로서의 성공기, 그러니까 항상 희망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오늘을 살아보라는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산 책이었는데, 읽는 내내 참 먹먹했다. 나의 감정을 자극한 것은 글 곳곳에 묻어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녀분의 지극한 마음이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요즘, 퇴근하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엄마 뭐해?”라고 물으면, 엄마의 대답은 어쩌다 친구분들을 만나 술 한잔 하는 날이 아니고선 늘 비슷하다. “그냥 있어.”, “그냥 TV 봐.” 엄마가 요즘 따라 의욕이 없어 보여 조금씩 걱정이 늘던 찰나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우리 엄마, 막례 할머니 못지않게 참 고생 많이 하셨다. 속 썩이는 아빠와 같이 살면서 오빠와 나를 낳고, 키우시는 동안 엄마 삶에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가 당신의 삶을 포기하시며 악착같이 사셨기에 나는 돈 걱정,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한 걱정 없이 온전히 나의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 오빠와 내가 자리를 잡고,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없어도 괜찮을 때, 우리 엄마는 무얼 위해 살아 가실까?


이제 엄마가 하고싶은 거 다 하면서, 엄마 마음대로 살아봐, 라고 말하기에도 미안하다. 여지껏 나 때문에 엄마는 다 포기하며 살았는데, 이제 난 괜찮으니까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을 텐데, 그런 엄마에게 ‘하고싶은 걸 한다’라는 것은 가장 어려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딸로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가장 먼저, 엄마가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해 항상 고마워하고 있고, 엄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 다음으로는 엄마 인생에서 엄마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넓은 세상에서 보고, 듣고, 누려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자식 이외에도 온 천지에 깔려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꼭 비행기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엄마와 많은 것들을 함께 하며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닌 “이영숙”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찾도록 도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엄마에게 립스틱 두 개를 선물했다. 하나는 엄마가 평상시에 잘 바르는 색상의 립스틱, 또 하나는 과감한 빠알간 립스틱. 우리 엄마 얼굴이 하얘서 빨간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줘도 참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뭐 이런 색을 줬어, 한마디 하면서도, 딸이 준 거니 그 자리에서 발라 보신다. 어색해하셨지만,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립스틱을 바르고 한참동안 거울을 보며 얼굴을 살피시는 엄마를 보며, 앞으로 이렇게 엄마가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선물 해야겠다,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 좋은 책을 써주신 박막례 할머니, 그리고 유라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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