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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수 Dec 13. 2023

사람을 잇다. 커뮤니티 디자인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커뮤니티 디자인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약간 낯선 표현이다. 커뮤니티란 무엇일까? 커뮤니티는 사전적으로 공통적인 장소, 관심과 의식, 가치, 규범 등으로 모인 사회의 단위라고 지칭한다. 과거에는 주로 지역적인 테두리 안에 모여있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현재는 지역과 관계없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모이는 다수가 커뮤니티를 형성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오랜 기간 커뮤니티 디자인을 고민해온 일본의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는 과거 커뮤니티 디자인이 어떤 물리적인 주택 배치를 위한 디자인이나, 광장, 집회장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생각하는 디자인이었다면 지금의 커뮤니티 디자인은 사람을 잇는 디자인이라 말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잇고, 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지가 목표인 것이다. 일본은 이미 100만 명 이상 추정되는 우울증 환자, 연간 3만 명의 자살자, 3만 명의 고독사 발생으로 인한 '무연고 사회’가 도래했다. 무연고(無緣故)란 한자어 그대로 '관계나 인연이 없음'을 뜻한다. 즉 개인이 지역사회나 사회적 네트워크와의 연결이 약화됨에 따라 고립되는 경향이 많은 사회가 무연고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주택과 물리적인 공원을 개선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야마자키 료의 출발점이었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미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전 세계 1위인 나라. 무연고 사망자가 매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고독한 사회에서 커뮤니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커뮤니티의 특성상 구성원과 목적에 따라 성격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떤 법안의 제제를 위한 모임, 순수하게 건강 증진을 위한 모임, 학습을 위한 모임 등 모임에서 가지고 있는 공통된 지향점에 다라 완전히 다르다. 특별히 이번에 내가 만난 커뮤니티는 평균 연령 75세 이상 어르신들이 배움을 위해 모이는 학습 커뮤니티다. 이분들과 함께 지난 3주간 디자인 싱킹 기반의 문제 해결 워크숍을 진행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어르신들이 당면한 삶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장벽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 공통적인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그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의견을 좁히고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대화 속에서 나온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커뮤니티의 중요성과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의 여정을 위해 필요한 커뮤니티의 방향을 공유한다. 


어르신들이 느끼는 삶의 장벽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 ©미션잇


함께 하는 것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커뮤니티가 중요한 이유


어르신들이 모인 커뮤니티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만 달려가지 않는다. 광범위한 영역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지만 모이는 이유도 다양하다. 배우자와의 사별, 자녀들의 출가 등으로 혼자 거주하는 경우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외로움을 벗어나 사람들과 즐겁게 교류하기 위해", "배움을 통해 어렸을 적 익히지 못했던 것들을 학습하기 위해", "젊은 세대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일을 만들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등 모인 어르신들마다 한 마디씩 하신다. 어떻게 보면 생존과도 같다. 내가 살기 위해 모인다. 아래 어르신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건강을 1순위로 뽑은 어르신들이 의미있게 생각하는 프로그램들. 저염식. 걷기 운동. 재미를 위한 프로그램. 수영 등 ©미션잇

생활의 동기부여 

"솔직히 저는 어제 하루 종일 세수도 안 하고 집에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오늘 이렇게 교육이 있으면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하고 옷도 챙겨서 입고 화장도 하고, 활동의 계기가 되는 거예요. 제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거죠. 이런 시간이 있기 때문에 활력이 생기고 너무 좋죠."


치매에 대한 예방

"며칠 전에도 옆집 할머니인데 길을 잃어버리셨어요.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오시는데, 어제는 주일이다 보니 요양보호사가 없어서 혼자 외출을 하셨더니 집을 못 찾으신 거예요. 남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방 차원에서요." 


세대 따라가기  

 "지금 세대를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강의를 듣다 보면 젊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또 영어 공부도 부족하니까 애들하고 대화를 할 때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공부는 나이에 따라 끝이 있는게 아니고, 많이 하면 좋죠."  


홀로 서기 준비   

"제가 남편하고 똑같이 나이가 72세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만 못하는 것은 그냥 남편한테 맡겼었어요. 메시지 보내는 거나 네이버에 들어가서 궁금한 것 찾아보는 것은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 수영 강습 신청을 하는 데 아침에 출근하려는 사람 붙잡고 해달라고 하기가 자존심이 괜히 상하더라고요. 제가 하면 더 수월할 것 같았어요. 남편과 나중에 누가 더 오래 살지 모르는데, 내가 아직은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고 의지하고만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홀로 설 수 있는 것,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75세 이상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커뮤니티의 조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관계가 있는 커뮤니티 "여기는 공간의 직원분이 상시로 반겨주고, 관계를 맺잖아요. 그런 것들이 중요해요. 주민 센터 수업처럼, 딱 수업만 듣고 가버리는 게 아니고요. 이렇게 되면 더 오고 싶은 공간이 되는 거죠."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관계가 친밀감과 몰입을 더한다. ©미션잇


당구공과 당구공이 부딪히는 듯한 만남. 당구공이 서로 맞부딪히면 반대편으로 다시 빠르게 움직인다. 요새 만나는 꽤 많은 관계들이 이렇게 흘러간다. 짧게 만났다가 목적을 이루면 헤어진다. 사실 지역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어왔던 예전은 그렇지 않았다. 수십 년간 함께 생활하며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왔다.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어르신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3주 정도로 짧게 끝나는 것이었다. 목적만 달성하고 해체하는 목표 지향적인 모임이 아닌 오랜 기간 함께할 수 있는 지속적인 모임에 대한 갈망이 컸다. 배움의 지속성도 중요하지만 관계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고정된 관리자가 상시로 반겨주는 것에 상당한 호감을 가졌다. 


스스로 선택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얻는 자존감을 주는 커뮤니티


학습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월 2회 어르신들끼리 걸푸드Girl Food라고 부르는 ‘함께 식사하기’ 모임을 조성하고 있었다. 평균 연령 75세인 어르신들끼리 걸푸드라니. 할아버지 네 분, 할머니 열 분. 그래서 남자분들은 '곁다리'라 우스갯으로 붙인 모임 이름이라고 한다. 출석률 100%다. 메뉴를 정해서 함께 요리하고 나눠 먹고, 생동감 넘친다. 레시피에 맞춰서 각자 재료를 가져온다. 누군가는 음식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한다. 외부에서는 공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어르신들 스스로 결정한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의 자기결정성 이론 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도 이처럼 내재적 동기에 의한 자율성을 강조한다. 노인이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하고 통제할 때 본인의 커뮤니티 참여가 '가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어르신들은 노년기에 자주 겪을 수 있는 고립감과 우울감을 줄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커뮤니티는 구성원의 참여를 유도하되, 모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구성해가는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가 '가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미션잇


신뢰성 있고 안전한 정보가 공유되는 커뮤니티 

 "인터넷 상에 떠도는 정보가 많거든요. 누군가는 노른자가 좋으니까 먹어라. 누군가는 콜레스테롤 높으니 먹지말라. 이런 식생활 정보가 나에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죠."



며칠 전 아버지가 보내신 이미지. 한 번쯤 이런 감성의 SNS 글을 부모님께 받아본 적이 있지 않는가?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성 글 말이다.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약간은 아리송한 생각이 든다 (섭치하라에서 빵 터졌다). MIT 연구진이  2006년부터 2017년 까지 트위터에서 300만명이 트윗한 12만 건의 뉴스를 추적조사한 결과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6배 이상 전파 속도가 빨랐다. 소셜미디어 상의 새로운 정보가 공유될 경우 다른 사람보다 해당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건강 정보에 민감하다보니 건강 관련된 글을 지인들끼리 자주 공유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렇게 SNS에서 떠도는 글 중에서는 정확한 근거가 없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어르신들은 현재 건강상태나 체질에 따라 정확하게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나 건강 정보를 얻거나, 운동방법을 학습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았다. 어르신들의 학습 커뮤니티는 전문가에 의해 인증된 정보가 공유되는 신뢰성 높은 곳이어야 한다.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시간과 경험을 디자인할 것

“공원을 디자인하는 것은 단순히 수목과 꽃을 아름답게 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장소에서 어떤 친구들과 무슨 체험을 할 수 있는지를 디자인해야만 한다.”
<커뮤니티 디자인, 야마자키 료>


디자인은 지금까지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유형의 디자인 요소들은 고정적이지만, 경험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은 사용자의 행동, 심리, 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복잡하다. 특히 커뮤니티가 사람 간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모이는 구성원들끼리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의미있는 시간과 가치있는 경험에 대해 고민. 그것이 커뮤니티 디자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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