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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Hur May 06. 2024

100년 된 동네 식당

Legacy가 주는 특별함

지금 살고 있는 Culver City는 내 가족에게 특별한 곳이다.  이 동네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사랑하는 딸이 태어났고 돌 직전까지 건강하게 잘 자랐다. 6 유닛 아파트 건물 1층에 있는 방 하나 화장실 하나짜리 작은 월세집이었다.  학생 부부여서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나름 안전한 편이었고 기분 좋은 주말 산책이 가능했다.  아기띠 메고 15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서 커피와 아침브리또를 사 오는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이 가능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추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엘에이를 돌고 돌아 결국 이 동네로 돌아왔다.  집 계약이 끝난 금요일, 집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이전 집에서도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불멍 하며 금요일, 토요일 밤을 보내곤 했다.  캠핑장보다 편해서 꽤 좋다.)  이 동네 분위기를 빨리 느껴보고 싶었나 보다.  근처 공원 언덕배기가 동네 주택 지붕 위로 잘 보인다.  아침에는 새가 지저귄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엘에이에 살면서 이사를 10번도 넘게 했지만, 그때의 이사는 조금 특별하게 느껴졌다.  행복했던 과거와 오늘이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다.


우리 동네에는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특이한 Market and Deli가 있다.  미국 주거지역은 Zoning으로 구분되어서, 주택가 안에서 상업활동을 할 수 없다.  아마도 Zoning이 생기기 이전에 생긴 가게인가 보다.  Perplexity.AI로 찾아보니, 1925년에 Butcher(정육점)로 시작되었고, 1950년대에 Market and Deli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MGM Studio에서 일하는 영화산업 종사자들과 배우들이 식사를 하고 휴식을 즐기는 곳이었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이 한가롭게 점심, 저녁, 주말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 가족과 그곳에 찾아갔다.  동네의 다른 식당과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인테리어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산속 작은 카페나 산장에서 쉬어가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마치 AirBnB 집의 뒷마당처럼.  음식 가격은 동네 다른 음식점보다 훨씬 쌌고, 맛도 좋았고, 소소하게 장식된 정원에서 Welcoming이 느껴졌다. 한편, 예전 시골 할머니댁에서 30분을 걸어가야 나오는 작은 슈퍼가 생각났고, 오래된 동네 노포 식당도 생각났다. 재미있는 곳이다.


이 동네는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Apple TV, Amazon Prime Video 등 거대 IT 기업의 오피스와 스튜디오가 들어왔다. 그와 함께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다. 비싼 upscale 식당과 가게들이 들어섰고, 크고 비싼 주택들로 바뀌었고, (인플레이션이 심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런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오늘 갔던 가게처럼 legacy도 함께 남아있다.  독특한 색깔이 분명한 재미있는 동네다.  지난 100년간 이 동네가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Legacy를 지켜온 이 가게 주인은 어떤 사람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이어진 시간의 흔적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그 변화된 과정이 물리적인 흔적으로 진하게 남아있는 곳.  그리고 그 흔적들을 그대로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곳.  앞으로 10년 동안 이 동네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런 Legacy들이 앞으로도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은 동네 상점이든 한 가족의 결혼생활이든, 하나의 가치가 수십 년을 관통할 때 느껴지는 특별함이 있다.  그것 다움이 느껴져서 좋은 걸까?  내가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만들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될까? 그리고, 무엇을 하면 그렇게 오랜 시간 지키고 싶어 질까?  마침 쉬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볼 수 있는 일요일,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은 예술로 빛난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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