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고 나서 사람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아침을 먹는 사람과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 나는 아침을 먹는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프다. 배고픔을 출근 전에 해결할 것인가, 출근해서 해결할 것인가만 고민할 뿐이다. '먹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바쁜 일정이 있지 않는 한 선택지에 없다.
엄마품을 떠나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아침은 꼭 먹었다. 친구들이랑 강의 시작 전에 일찍 만나 학생들을 위해 이벤트성으로 열리는 천 원 조식을 먹으러 갔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때면 편의점에서 우유나 빵, 김밥 같은 것을 사 먹었다. 아침을 먹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20년을 아침을 먹었던 탓에 일어나서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침을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밤사이 굶주린 배가 에너지원을 달라 아우성이었으므로.
오전 6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했던 신규 간호사 시절에도 나는 아침을 꼭 먹었었다. 점심을 교대로 먹어야 했기에 점심시간은 그때마다 오전 11시 반에서 오후 2시까지 랜덤이었고,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한다면 운이 좋지 않은 경우 오후 2시에 밥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밥을 먹지 않고 8시간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8시간은 한치의 여유 없이 수술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긴장해야 했기에 에너지는 더 빨리 닳았다.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해가 뜰 기미 없던 새벽, 프라이팬에 1인분씩 냉동 포장된 낙지볶음밥을 올리고, 5분 정도 출근 준비를 하고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으면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 낙지볶음밥을 고된 훈련을 겪어내야 하는 운동선수처럼 먹었다.
수술실 산부인과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였다. 수술방은 각 방마다 방장 선생님이 있었고, 각 방장은 그 수술방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트레이닝을 오는 신규 간호사들을 가르쳤다. 산부인과 방장 선생님은 마르고 키가 컸고,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매번 목소리를 걸걸하게 내면서 나를 혼내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 방장 선생님한테 처음으로 칭찬을 받는 날이었다.
"너 아침은 먹고 오니?"
"네. 저 아침은 꼭 먹어요."
"오, 뭐 먹고 오는데?"
"오늘은 냉동으로 된 낙지볶음밥 먹고 왔어요."
"잘하고 있네"
수술 스크럽을 잘해서 칭찬받은 게 아니라 아침을 먹어서 잘했다는 말이었지만, 나는 좋았다. '아침을 먹는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서 좋았다. 나와 같은 공통점이 '아침식사'라는 것에서 그 선생님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다. 산부인과 트레이닝이 끝나고 나서는 아침 먹을 시간이 없었다. 메이저 파트로 가면서 준비해야 할 수술기구와 세트들이 더 많아졌다. 아침을 먹지 못해 공복시간이 길어졌지만 살은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쪘고, 스트레스는 더 많아졌다.
병원을 그만두고 나서야 나는 다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닐 때도 아침은 꼭 먹었고, 부모님 집에 내려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도 아침을 먹고서야 책상에 앉았다. 공무원이 되자 아침을 먹는 것은 더 쉬워졌다. 집에서 못 먹으면 회사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을 수 있었다. 출근하는 길에 빵과 커피를 사서 갈 수 있었고, 업무를 보면서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침 안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좋지 않은 신호였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이런 나라도 아침을 먹지 못했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팠지만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식욕이 떨어져서 먹고 싶지 않았다. 먹는 것조차 하나의 일로 느껴졌고, 조금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재생용지가 된 기분이었다. '사용용도'에 따라 태어났으나 용도가 다해도 쉽게 편히 누워있는 상태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잘게 찢기고, 비슷한 애들과 만나, 섞이고 싶지 않아도 뭉탱이로 넣어 섞어놓고선 "짜란! 이것 봐 넌 아직 다시 쓸 수 있어" 라며 또다시 각 잡힌 뻣뻣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재생용지. 아니, 어쩌면 배터리였나. 이미 에너지를 다 썼으나 내 원소기호까지 탈탈 털어가며 소진시켜야만 하는, 마치 정말 배터리 갈아쓰듯. 배터리 5% 남겨놓고 퇴근시키고는, 20% 충전되면 다시 출근시켜서 저전력 모드로 어떻게든 쥐어짜 내 쓰다가 3% 남으면 퇴근시키고, 이제 정말 방전되었다 여겨지면 막 입사한 100% 풀 충전된 배터리로 교체해버리는. 왠지 모르게 야만적이게 보이는 그 행위들이 이루어지던 때. 그때 나는 아침을 먹지 못했다. 목구멍은 덜 굳은 시멘트로 항상 가득 차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한 의사가 나에게 "쉬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진단서'라는 서류 한 장을 손에 쥐어주었고, 나는 그 서류를 인사과에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아침 먹는 사람'이 아침을 먹는다. 드디어 '내'가 '내'가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 데워진 물을 마신다. 잠시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다 보면 배가 고파온다.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세 걸음 걸으면 부엌에 도착한다. 냉장고를 열어 아침으로 뭘 먹을지 고민을 한다. 요구르트에 과일을 먹을지, 사과와 삶은 계란을 먹을지, 밥을 먹을지 고민한다가 냉동실에서 요즘 자주 먹는 새우볶음밥을 꺼냈다. 병원다닐 때 자주 먹던 냉동 볶음밥이다. 몇년 전과 똑같이 냉동되어 1인분 씩 한 봉지로 포장된 새우볶음밥을 프라이팬에 올리고 5분 정도 나무주걱으로 휙휙 젓는다. 5분 후면 따뜻한 볶음밥이 완성된다. 나는 이 볶음밥을 간단히 조리할 수 있어서 자주 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맛있어서 먹는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퍼지지도 않은 적당히 고슬고슬한 밥이 잘게 잘라진 야채랑 조그마 난 새우가 만나서 식욕을 돋우는 냄새를 풍긴다. 맛은 어떤가. 그저 그렇게 나온 레토르트라고 얕봐선 안된다. 내가 직접 만든 볶음밥보다 훨씬 맛이 좋으니. 이것은 바로 대기업의 맛. 취업난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해서 몇 날 며칠 고민하던 연구원들이 대중들에게 팔겠다고 내놓은, 고심 깊은 밤들이 축약되어 여러 사람들의 결재를 받고, 포장지의 디자인까지 컨펌받고 나온 이 대기업의 맛. 누가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간편식이지만 맛까지 놓치지 않은 이 노고. 그 고됨은 '소비자'라는 관계를 형성해서 알아줘야 한다. 그리고 난 그 역할을 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직접 해서 먹든, 대기업의 맛을 먹든 지금의 나는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예전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프고 뭔가를 먹어야만 하는 상태로 돌아왔다. 공복을 8시간 이상 유지하고 나서 자연스레 음식을 요구하는 생리적인 행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침에는 입맛이 없는 사람들이 대체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표적으로 내 남자 친구가 그렇다. 남자 친구는 저녁이나 야식은 잘 먹는데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 나는 반대로 야식을 잘 먹지 않는다. 자기 전에 뭔가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자는 내내 힘이 든다. 그래서 남자 친구는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은 '난이도가 낮은 남자'라고 말한다. 아침을 차려주라고 칭얼대는 남자가 아니라는 뜻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난이도가 높은 여자'다. 아침마다 배고프다고 칭얼대서 아침을 차려줘야 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누군가 밥을 차려주는 것은 행복하고, 남이 해주는 밥은 맛있기에. 또한 결혼을 하게 되면 누구나를 위해 '차려줌'의 행위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에. 우리는 웃으면서 서로의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쩔 수 없어. 난 아침은 꼭 먹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