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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07. 2022

사타구니 병

사타구니. 사타구니..사..타구니..

"겨드랑이는 한글인가?"

남자 친구 겨드랑이를 만지면서 말했다. 겨드랑이. 겨드랑이. 한자인가? 네이버에 겨드랑이를 검색해보았다. 한글이었다. 곁이라는 말에서 따온 건가 라는 추측을 하면서 "겨드랑이 털!!" 하면서 장난을 쳤다. 왜 몸의 부위를 가리키는 말은 대부분 한 글자이거나 두 글자인데, 네 글자를 만들었을까. 눈, 코, 입, 귀, 발, 손 등 부르기 쉽게 한 글자로 만들어놓고 겨드랑이는 4글자로 만들어 놓은 거지. 4글자로 된 부위가 뭐가 있을까. 


"사타구니!" 

"사타구니. 사타구니." 계속 발음해 보았다. 무슨 주문처럼 들리는 것 같다. 사타구니, 사타구니, 타구니, 타구니, (죽을 사) (타오를 타) 구니, 마음대로 한자를 정해 본다. 

"왜 사타구니는 사타구니라고 지었을까?" 나의 물음에

"어? 왜 그러는 거야....?"라는 답변.

하긴 누가 봐도 좀 이상한 대화 주제이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를 연인 사이에 대화 주제로 삼지는 않으니, 아니 그 어떤 관계에서도 이 주제를 대화로 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대화를 이어나가 본다.


"내가 만약 불의의 사고로 인해서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사타구니' 밖에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당황)"

"사타구니. 사타구니. 사아아 타구니! 사타구니? 사. 타. 구. 니!!" 

정말 안타깝게도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사타구니'밖에 없는 사람 말이다.

경건한 상견례 자리에 가서도 "사.. 타.. 구니 사타구니" "ㅅ.. 타구니.. 샅 구니..."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데도 '사타구니'라는 단어밖에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래도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만 같은, 무슨 단서를 주는, 신의 계시 같기도 하고.

만화나 영화에서 조금 덜 떨어져 보이는 캐릭터가 항상 한 가지 단어만 말하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그걸 잘 캐치하지 못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어... 사타구니? 걔가 사타구니라고 말하고 다녔지?!"라고 마치 '시크릿 키' 역할을 맡는 사람처럼 말이다. 단지 그 사타구니의 뜻이 조금 입밖에 꺼내어 말하면 곧바로 그 뜻을 상상하게 돼서 그렇지. 단어 자체의 발음은 귀여운 발음 같기도 한데. 일본어 같기도 하고. 


사타구니 : '샅'을 낮잡아 부르는 말

샅 : 두 다리의 사이 


찾아보니 사타구니가 정확한 명칭이 아니었다. 샅이었구나. 그렇다면 사타구니는 그 사타구니가 아니구나. 아니 맞는구나. 그래 사타구니. 사타구니. 타구니. 타구니.


어렸을 때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잊어먹을까 봐 계속 입으로 되뇌면서 슈퍼를 가고는 했다.

"두부. 두부. 두부. 두부. 두부. 두부"

이렇게 두부라는 단어를 입에 머금고 가다가 

"아주머니, 두부 하나만 주세요"라고 심부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또 

"두부.두부.부두.부두.둡.두.부.둡.부.두.두부." 

다시 두부를 되뇌어 말하다 보면 '두부'는 내가 알던 '두부'가 아니게 된다

처음에는 '두부' 하면 하얗고 네모난 육면체의 탱글탱글한 물체가 생각났다면 

계속 '두부'를 외쳐 대다 보면 그저 '하나의 소리'로 느껴진다. 

언어의 기능을 잃고 그저 하나의 소리로 인식하게 되면 그 소리가 보드라운 입을 통해 내뱉어서 귀에 들릴 때 과연 아름다운지, 좀 투박하지는 않은지, 어쩌면 좀 귀여운 지, 아니면 좀 징그러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부'는 마치 두꺼비가 낼 것만 같은 소리였다. 

"...ㄷ붑" "...ㄷ붑" 이렇게 조금 간격을 두고 소리 내는 두꺼비 소리.

그리고 이 생각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한테 '두부'를 건네고 심부름이 끝이 나면

언제 두부를 외쳤는지 까먹고 만다. (미션 클리어)


누군가 사타구니에 대해서 미션을 좀 주길 바란다. 미션을 클리어하고 사타구니를 까먹을 수 있게.

이러다 정말 '사타구니'라는 말만 되뇌는 사람이 될까 겁이 난다. 사타구니. 사타구니. 사타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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