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토끼 Feb 26. 2023

신혼 영화제 여행 - 프롤로그

영화를 만들던 남자와 영화를 좋아하던 여자가 만났다

"섬토끼씨는 취미가 뭐예요?"

"저는 영화 보는 거랑 책 읽는 거 좋아해요. 또 뭐 있지...? 아,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요."


처음 보는 누군가와 스몰토크를 해야 할 때 사람들은 종종 취미를 묻곤 한다. 나는 언제나 내 취미가 '영화감상'과 '독서'라고 말했다. 꽤나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대한민국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취미. 나는 그 취미를 (처돌이답게) 좀 더 깊이, 꽤나 오랫동안 좋아했고 지금도 즐겨하고 있는 중이다.


평소에도 부모님과 영화를 종종 봐왔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2000년 중반은 한국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역작들이 쏟아졌던 시기였고, 부산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부산국제영화제를 접했다. 멀지 않은 시내에 나가면 피프 광장이 있었고 그곳에 있는 영화관을 주기적으로 드나들었다.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대신, 독서실을 핑계 삼아 학교를 나온 뒤 영화관으로 가곤 했다. 당시 영화표 가격은 학생 할인과 통신사 할인을 중복 적용할 수 있었고, 평일 중에는 단돈 1,0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날도 있었다. 저렴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을 놓치기 싫었던 나는 그날이면 기어코 자율학습을 제치고 영화를 보러 갔고, 그렇게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에 취해 있었다. 예술허세병과 함께 그렇게 나는 점점 영화와 가까워졌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더 많은 영화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18세 관람가) 볼 수 있었기에, 천국을 만난 느낌이었다. 다양한 영화 취향을 가진 친구들 덕분에 나는 잡식성 영화처돌이로 무럭무럭 자라났고, 불어를 배우면서 아주 잠깐 프랑스 영화에 심취하기도 했다(물론 내 취향이 아니라 일찍 접기는 했지만...). 그렇게 영화는 생활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급기야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남들이 다하는 취업 준비 대신 영화제 자원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봐오던 부산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영화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정말 짜릿했다! 영미새(영화제에 미친 새끼)처럼 일 년을 보내고 난 후 나는 대학원 입학을 위해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다. 서울로 올라오니 다양한 주제의 소규모 영화제도 손쉽게 즐길 수 있었고, 영화제가 열리는 서울 곳곳의 독립극장을 찾아다니는 재미에도 푹 빠졌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영화 관련 대외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반려인을 만났다.


우리의 시작에는 영화가 있었고, 만나온 시간 속에도 항상 영화는 존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기 시작한 2020년에 우리는 결혼했고, 자연스레 영화관보다는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우리가 자주 다녔던 영화제를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이나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영화제에서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022년 프로젝트는 '신혼영화제 여행'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이 붙게 되었고 우리는 총 10개의 영화제를 방문했다. 더 많은 영화제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기간이 겹치거나 일정상 갈 수 없었다. 올해 또다시 영화제를 방문하기 전에 작년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반려인과 함께 각자의 시선에서 써보기로 했다.


그럼, 신혼 영화제 여행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