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던 2020년에 결혼했다. 결혼식 날은 2단계의 마지막 날이라 기념사진도 마스크를 쓰고 찍었다. 이 시기는 전 국민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민감했던 시기였고, 건강염려증이 있는 나에게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전년도에 출장과 여행으로 많은 국가를 방문한 데다, 하반기에는 유럽에서 살았기 때문에 해외여행에 대한 큰 욕구가 없었다. ‘언젠가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국내로 짧은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주춤해지자, 반려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6년을 연애한 후 결혼했는데 한 번도 함께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반려인은 랜선 여행을 더 즐겨 했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동안 각자 해외여행을 가긴 했지만, 한 번도 함께 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늠하기 힘들었다. 멀리 떠나기 전에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 우리의 여행 스타일을 실험하기로 했다. 메인 음식을 먹기 전에 식전 음식을 시켜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정한 여행지는 방콕이었고, 작년 12월에 3박 5일짜리 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어서 그랬던 걸 수도 있지만, 우리 둘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래, 이 정도라면 같이 더 멀리 여행 갈 수 있겠어!’
이 생각이 들자마자, 우리는 유럽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었고, 상반기에는 한 박자 쉬어가며 개인적인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반려인의 회사도 보통 하반기에 더 바빠지기 때문에 상반기가 여행하기에 적절했다. 그렇게 여행 시기를 좁혀나가다 보니 그나마 날씨가 조금 따뜻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5월이 좋아 보였다. 5월에는 휴일이 있어 연차를 조금 덜 쓸 수 있었고, 반려인의 생일도 있었다. 내가 생일을 방콕에서 보낸 경험이 좋았기 때문에, 반려인에게도 이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5월에 약 3주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유럽의 어느 국가를 여행할지 반려인과 의견을 나누다 베를린으로 좁혀졌고, 베를린에 2주간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김에, 근처 다른 도시도 가보는 게 어때?”
“나 디즈니랜드 가고 싶어. 파리로 들어가서 디즈니랜드만 보고 독일로 이동할래? 나는 파리 구경 굳이 안 해도 돼서.”
“나는 축구 경기를 보고 싶은데. 그럼, 프랑스에서 축구도 보자. 우리가 갈 시기에 파리 생제르맹 경기가 있어.”
그렇게 베를린 2주는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여행이 되었고, 기차를 더 선호하는 반려인의 제안으로 이동은 기차로 하기로 했다. 중간에 브뤼셀도 잠깐 들리고, 뒤셀도르프 근교의 가고 싶었던 미술관도 방문하기로 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여행이 되면서 여행 일정도 며칠 더 늘어났다.
5월에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찾아보니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기기 전보다 훨씬 비쌌다. 예전에는 경유하는 항공편을 5~6개월 전에 찾아보면 꽤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평소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러시아의 정세 때문에 우회하는 항로로 비행하다 보니, 경유지인 헬싱키에 도착하는 데만 13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뭐, 신혼여행이니까 마냥 즐겁지 않겠어?’ 그런 용감하고 순진한 마음으로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