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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토끼 Jun 15. 2023

어느 날 횟집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동물권 탐사기

내 고향은 바다가 있는 도시로, 나는 이곳에서 20여 년을 자랐다. 도시임에도 내가 살던 동네는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곳이라 자연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여름 보충수업 때는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학교 앞 바다로 놀러 가기도 했고, 자갈로 가득한 바닷가를 걸어 다니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면 큰 해산물 시장도 있어서 나는 자연스레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굉장히 잘 먹었다.



나는 비건은 아니지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신념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맛이 없어서였다. 특히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먹고 나면 그다음 날 내 몸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서 싫어했다. 하지만 양고기와 닭고기는 엄청나게 잘 먹었고, 동물의 부속(순대, 간, 양곱창 등)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나는 성격이 꽤 급한 편인데, 고기는 식당에 들어갈 때부터 음식을 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 좋아하지 않았다.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게다가 고깃집에 가면 누군가가 꼭 고기를 구워야 했는데, 그 누군가는 대부분 엄마였고 사회에 나가서는 가장 막내(그러니까 꽤 오랜 기간의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기를 안 먹는 건 아니다. 이미 구워져서 나오는, 그리고 좋은 품질의 맛있는 고기는 누구보다 잘 먹고 있으니까.



누군가 내게 ‘고기랑 해산물 중에 뭘 먹을래?’라고 물으면 항상 해산물을 선택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였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술안주로도 이만한 것이 없었다. 문제라면 가격뿐이었다고나 할까. 고기를 먹지 않아도 단백질을 먹을 수 있고, 포케나 덮밥에 올리면 가볍게 먹는 기분(?)이면서도 든든한 포만감이 들어 좋아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 치고는 생선 종류를 구분하지 못한다).



20대 중반 겨울, 서울에서 지내다 제주도로 이사 간 친한 언니의 초대로 제주도에 갔다. 나와 동향인 언니가 맛있는 생선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 따라간 곳에서 나는 처음 방어를 먹었다.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아니, 이런 맛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맛을 모르고 20여 년을 살았다고? 나 진짜 헛살았구나.’ 그 이후로 ‘겨울엔 방어!’를 머릿속에 새기며, 방어 맛집 도장 깨기를 하는 재미로 매 겨울을 났다.



그렇게 지내 오던 중, 어느 명절에 시할머니댁을 가면서 방어회를 사 가기로 했다. 시할머니댁에 가는 길에는 큰 농수산물 판매장이 있었고, 그곳은 내 고향에 있는 큰 해산물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여러 해산물이 수조에 담겨 있었고 커다란 방어들도 많았다. 물고기들은 힘차게 펄떡이고 있었다. 주문한 방어회를 기다리면서 가게를 구경하던 중, 나는 몽둥이로 방어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큰 생선이니까 당연히 잡기 어려우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몽둥이로 때리는지는 몰랐다(지금 생각하면 왜 몰랐나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겠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그동안 내가 맛있다고 먹었던 방어들이 생각났다. 이게 과연 개를 때려잡아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나는 정말 위선자였구나.



그 이후로 내 눈에 횟집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수조 속을 헤엄치는 생선을 보며 싱싱하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턱없이도 작은 수조를 헤엄치는 생선이 불쌍해 보였다.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선의 눈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고 나니 차마 횟집에서 회를 주문하기가 어려웠다.



고기를 먹는 것을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는 고기가 되기 전 살아있는 동물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생선은 살아 있는 걸 보자마자(심지어 그것을 싱싱하다고 하면서) 회를 뜨는데도 왜 난 이 행위가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왜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던 걸까? 어쨌든 나는 그 사건 이후로 방어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참 위선적이게도 다른 생선은 여전히 먹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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