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의 부재
첫눈이 폭설처럼 내렸다. 첫눈 치고는 많은 양을 쏟아낸 올해의 첫눈이었다. 11월 마지막 그쯤에 엄마의 49제를 지냈다. 지난 10월 엄마는 고인이 되셨고 당신의 삶도 거기 까지가 전부였다. 재작년 봄 엄마의 수술은 우리 형제들에게 선택해야 할 사항들이 각자에게 주어지며 갈등도 뒤따랐다. 누구에게도 떠미는 일을 싫어했던 나는 엄마의 병간호를 자처했고 내 생활을 잠시 등뒤로 떠밀었었다. 후회하며 떠날 때 눈물은 보이지 말자고 몇 번의 다짐도 했다. 그러나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세월 앞에서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었다. 당신의 몸을 대신하던 일은 나의 위로였을 뿐 10월 엄마의 그 가을은 내 안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2) 마지막 봉투
49제를 지내던 날 큰올케 언니가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친언니와 내게 각각의 봉투를 내밀며 딸들에게만 주는 거라고 했다. 엄마가 주는 마지막 돈이라며 엄마 대신이라고 했다. 엄마의 수술 이후로 통장은 큰 올케 언니가 관리해 왔다. 큰 며느리 역할 하느라 고생 많았던 큰 올케 언니였다. 자신의 친정 엄마 보다도 내 엄마에게 정성을 더 쏟았던 큰 올케 언니였다. 생전 엄마는 내가 이것저것 사들고 가면 그 돈을 다시 용돈처럼 돌려주곤 했다. 큰 올케 언니는 이런 엄마 마음도 모두 읽고 있었다. 미안한 손이 주저 없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엄마와 큰 올케 언니의 냄새도 함께였다.
3) 스스로의 위로
2년 하고도 절반이라는 시간이 더 흘러갔다. 남편과 아이는 가끔 나의 뒤끝에 있었고 나는 엄마의 아픔을 이고 지냈다. 명치끝에서 자주 걸리던 음식들의 소화제가 식탁 위에 아직 그대로 놓여 있다. 제대로 된 음식의 맛을 느끼며 지내기엔 엄마에게 많이도 미안한 날들이었다. 오래전 아버님의 암투병 중 일 때도 그랬다. 나 좋자고 넘기는 음식들이 제대로 된 목구멍 일리 없었다. 허기짐은 스스로의 위로였다.
4) 떠나고 보내며.....
지난 흔적들이 저리도 숱하게 등 뒤에 걸려 가끔 나를 헤집고 달아난다.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의 숫자를 읽는다. 고등학생이던 아이는 이제 대학 1년을 다 마치고 내년엔 군대를 가려한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아무 때고 찾아와 내 심장을 박차고 올라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고 보내는 일은 누구라도 아프고 슬픈 일이다. 몇 날의 아픔을 거듭해서 곪아 터지고 난 뒤에야 새 살이 돋아 나는 일이다. 숱한 시간들 더 보듬고 다듬지 못했다. 불어서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내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애써도 후회라는 것은 늘 내 미련마저 떨칠 수도 없게 만든다. 내일은 조금 덜 부족하기 위해 이쯤에서 나의 한해도 놓아주기로 한다.
하 많은 날들 중에
떠나고 보내는 것들이
우리 곁에 얼마던가요.
가슴은 그를 향하지만
발걸음은 닿지 않아
손마저 만져질 수 없을 때,
얼마나 많은 날들
애태우던 가요.
녹이지도 못하고
애만 태우며
삶과도 같은
더욱 간절한 것.
그것이
당신이라서,
얼마나 많은 날들
많이도 아프던가요.
가빴던 호흡을
이제 잠시
허공에 내걸어 봅니다.
숱한 날들 안부도
내려놓으며 이쯤에서
안녕도 토닥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