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눈 뜨고 나니 퇴사 요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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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라'고들 하던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일단, 소비자의 심리를 내가 어떻게 간단히 이해를 할 수 가 있나? 그건 논리에 가까운 얘기다. 논리라.. 결국 머리 속에만 있는 얘기라는 소리다. (모르겠다. 이게 또 경력도 쌓이고 내가 얍! 하면 옛! 하고 머리 속에 소비자의 심리가 들어올 지는 모르겠지만)
부딪혀봐야 안다. 머리 속의 논리로는 내부 설득도 힘들다. 내가 부딪혀볼 수도 없다면, 부딪혀 본 과거 경험을 찾으면 된다. 부딪혀볼 게 너무 많아서 막막해도, 일단 몇 개라도 부딪혀보면 된다. 사실 이론 세우는 건 너무 재밌는데, 막상 가설 검증을 하려니 좀 떨릴 때가 많았던 거 같다. 전화하는 것도 떨리고, 직접 만나는 건 더 떨리고.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한데 괜히 부딪혔다가 내 실력이 뽀록나면 어쩌지?? 뭐 이런 생각이랄까나.
근데 작게 부딪히면 작게 부딪힌만큼 작은 부스러기가 떨어지더라. 안하는 것보다는 낫더라. (매번 알지만 매번 어려운게 부딪히는 거라 좀 구구절절하게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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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딱 그랬다. 어느정도 내부설득을 포기(?)하고 '내가 하고싶은 걸 하겠다. 뒷감당도 지겠다.' 선언하고 이런저런 일을 벌리다 보니 진짜 망하고 잘되는 것들이 생겼다. 물론 아예 모든 설득을 안한 건 아니지만 그간 스트레스를 받아온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게 일을 진행시키는 속도를 더 진척시켰다. 결국 이론들이 현실에 많이 부딪히게되었고, 그 와중에 건진 것도 버린 것도 많았다. 그래도 그간 부딪히며 주워 온 부스러기들을 모아보면 안한 것보다는 괜찮은... 종종 돈이 될 법한 것들을 발견했던 것 같다.
실 예로 가장 설득이 어려웠던 '남들 다 하는 데 그걸 왜 똑같이하니?' 같은 것들. 회원 유치를 위해 하는 '신규회원 100원 이벤트', '온라인의 오프라인 프로모션화, 팝업스토어', 'PR 활동', '데일리 광고 집행' 등등이 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신규회원 유치 이벤트는 성과와 상관없이 무조건 해야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어떤 메세지를 갖고 있든 상관없다. 규모가 작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면 이것부터 해야한다. (아니다 아닐 수도...? 아니라면 미래의 내가 와서 부끄러워하겠지...) 프로모션.. 이것도 또한 브랜딩 활동으로 하면 좋은 것이다. 여기서 큰 성과를 바라면 안된다. 마치 스키 타기 좋아하는 사람은 매년매일 못가도(?) 시즌권 끊는 것처럼. 그래야 내가 '스키 좋아하는 애'로 스스로가, 주변에서 인정해줄테니깐. 그 외에 인터뷰를 하는 PR활동들이나 돈쓴만큼도 구매전환이 안되는 광고집행까지.. 부스러기들은 많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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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그 부스러기 속에서 돈 될만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사실 큰 돈을 안썼으니 큰 부스러기는 없었고 내가 '발견'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실질적으로 수익이 된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돈 쓴만큼 수익이 된건 하나도 없다. 원금 보전이라도 한 것도 단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큰 돈을 쓰면 그만큼 수익이 전환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맞다고 본다. 하지만 더 정확히 이해해야하는 건 '큰 부스러기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맞다. (이 또한 아니라면 미래의 내가 부끄러워 하는 걸로...)
결국 (금전적 수익이 안난) 실패들 속에서 수익화를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건져내는 것인데, 아주 의외로 그 경험들은 반드시 일어난다. 물론 그 경험들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필요하다. 능력이라 함은 '내가 할 일을 컨펌해준 상사'에게 보통 있다. 만약에 없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솔직히 운이다. 본인이 얼마나 업과 업무에 능력을 쌓았는가... 거기에 달렸겠지. 조건이라 함은 '목표와 달성하는 과정을 세웠고, 그 성공 실패 여하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서 깊이있게 프로젝트에 몰두했는가?'에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내 부스러기들은 단지 부스러기들일 뿐이다. 거기서 뭐 얼마나 대단한걸 찾겠다고 뒤질 생각이 나겠나? 대부분 '시켜서 한 일이다' '내 의도와는 많이 벗어나서 변화했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똥길로 갔다해도 최선을 다 했어야 했다. 그래야 부스러기 하나도 값어치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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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예로 발견했단 부스러기는 오프라인 프로모션 때 만난 기자, 신규회원 100원 이벤트에 참여했던 이용자 하나였다. 오프라인 프로모션 때 만난 기자 분은 우리가 만든 작은 행사를 온라인에 작게 글을 써서 올려주셨다. 추후 그 작은 기사는 우리가 '친환경 식자재'에 관심이 아주 많은 스타트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주는데 이바지를 했고, 더 큰 기사로 인터뷰화되어 반짝 매출을 올려줬다.
신규 회원 100원 이벤트에서 주운 부스라기는 단골 손님의 친구분이었다. 그 분은 100원 이벤트에서 달걀을 구매하셨고, 그 달걀에 반해 매월 친구 분의 생일마다 달걀을 선물하셨다. 아직도 기억난다. 정확한 액수를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분은 친구가 굉장히 많았나보다. 아주 많은 선물을 하셨고, 아주 많은 컴플레인도 해주셨다(?) 그래서 아주 아주 잘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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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 책임감. 혹자는 좋게 평가할 지 모르겠지만, 결과로만 보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실컷 내부 설득해서 일을 벌리면 뭣하나? 그 책임감에 과감하게 베팅을 하지 못하면 10개 벌릴 일도 2개만, 10번 반복할 일도 2번만 한다. 어차피 해봐야 알고, 부딪혀봐야 안다.
확실하지 않다면 승부를 걸어서는 안된다. 지금 하려는 일이 확실히 본인 설득도 안되고, 남들 설득이 안되고 있다면 아직 해야할 타이밍이 아니다. 다시 얘기해보자. 확실하게 안할 꺼면 안하는 걸로 승부를 봐야한다. 하지만 해야할 게 하나라도 있다면 그 하나라도 승부를 걸어보자. 생각보다 그런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논리가 생각보다 먹히는 일도 되게 많다.
내 스스로가 확신이 없는데, 남이.... 아니지 예산 집행을 허락할 사람이 설득이 되겠나? 작게 하겠다고 해라. 솔직히 다는 모르겠다고 해도 무방하다. 만약에 뭐든 아무것도 모르겠다 싶으면 뭘 해야할 지 물어라도 봐라. 해보고 내가 해야할 일을 그 다음 찾겠다고. 아무래도 선임자가,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이 더 감이 있겠지. 혼나더라도, 맨날 하던 거 또 똑같이 하냐는 핀잔을 들어도 해라. 당장 생각 안나는 데 어쩔꺼냐. 그게 가장 빠른 길이다. 그렇게 쓸 줄 알아야한다. 어떻게든 돈을 써봐야한다. 그렇게 작은 부스러기라도 만들어봐야, 큰 부스러기가 떨어졌을 때 비로소 내가 떨군 부스러기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