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가는 글
인천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다. 벌써 다섯 번 째다. 딸이 미국 살아서 외손주들 돌본다는 핑계로 미국 여행을 즐기고 있다. 아내는 여섯 번, 나는 다섯 번. 손주들 돌보미는 주로 아내가 나는 그냥 미국 여행 기분. 복에 겨운 노인네!
혁대를 풀고 신발까지 벗고 출국 심사를 받는다. 신발을 벗으니 문득 떠오르는 젊은 날의 삽화 하나.
어설픈 산사나이 흉내를 내던 시절. 큰맘 먹고 밑창에 금속 클립이 장착된 이태리제 등산화를 구입했다.
동계 훈련과 암벽 등반 시 요긴하게 사용. 그 크고 무거운 등산화가 발에 익숙해질 즈음 결혼.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한라산 설경을 감상하기 위해 그 등산화를 신고 비행기 탑승.
출국도 아닌 비행기 탑승을 위한 신체검사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신부는 한 번에 통과해서 나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몸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쇠붙인데 금속탐지기는 울어댄다. 드디어 밝혀낸 비밀. 아이젠 장착을 위해 만들어진 문제의 그 등산화가 범인이었다. 맨발로 통과 후 무사히 아내 곁으로.
미국으로 출국은 한 번에 통과. 면세점 구경하는 약간의 기다림 후 손주들 곁을 향해 출발!
몇 번을 나가도 출국은 설렘이다. 들뜬 마음에 잠도 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키드였던 나. 영화를 켰다. 미국 클래식 영화를 찾으니 고교 시절 단체 관람으로 본 무척 감명 깊었던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멋대로 놀아라!" 란 이름으로 개봉되었던 영화. 엘비스 프레스리와 앤 마그릿이 주연했던 "비바 라스베이거스"
젊은 시절의 그 감흥만큼은 아니지만 앤 마그릿의 다리와 섹시한 목소리는 역시 매력적이다. 영화 한 편 더 보고 기내식을 먹어도 아직 반도 오지 못 했다. 외국 여행은 설렘만큼이나 지루함도 더 해야 한다. 아내의 와인까지 더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억지로 눈만 감고 있으니 선잠이 들었던지 비행기가 랜딩을 한다.
입국 심사대에서 사진을 찍고 지문 채취를 하니 컴퓨터에 내 사진들이 나타난다. 과거에 검사받은 사진들인 모양이다. 검사원이 자신의 폰을 내민다. 노안이다. 눈을 찌푸리니 어느새 옆에 온 아내가 대답한다. "쓰리 먼스!" 통과. 몇 번 다녀왔으니 하자 없는 외국인. 체류 목적은 딸네 방문. 폰에 한글로 얼마나 머물 거냐고 적혀 있었다는 아내의 말씀. 지구촌 실감.
팬데믹 전에는 마지막 검사 시 아내의 대답. "없어요!" 우리말만 하고도 통과. 귀까지 속 썩이는 나.
"백 인 푸드?"란 물음에 그냥 우리말이 나왔단다. 한국어를 알아 들었는지 샅샅이 검사한 뒤의 통과 의례인지 무사히 딸과 만났던 기억도 있다.
공항문을 나서니 딸이 기다리고 있다. 출입국에 힘든 점은 없었지만 비행기에 시달려 몸이 찌뿌듯하다.
아무리 지구촌에 세계화 시대라 해도 태평양은 크고 미국은 멀리 있다.
실감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 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