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인에 대한 단상
연인을 처음 만난 건 2011년, 학교 강의실이었다.
까까머리 수줍은 복학생. 소년미를 뽐내던 그는 12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날 웃게 한다.
우리가 연인이 된 건 2014년, 그러니까 벌써 9년 전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알기에도 벅찬 시기에 만난 인연이다. 운이 좋았는지, 복을 받은 건지 어린 날을 지나 지금까지 서로 함께 있는 순간이면 늘 수다스럽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사람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9년의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세상을 깨닫고, 성장했다. 긴 시간 지켜본 바, 나의 연인은 무언가 반짝이는 것들을 가득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는 한 계속 알려주고 싶었다. 그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이롭고, 따뜻하게 주변을 밝히는지.
이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배려였다. 여기서 말하는 배려란, 인간으로서의 배려. 즉,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배려는 공감과도 연결되고, 사람을 아우르는 어떤 능력과도 이어진다. 연인을 만나기 전의 나는 이것이 이토록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능력이라는 걸 몰랐다.
연인은 나를 비롯한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모습이라고 날을 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는 휘어질 줄 아는 사람이었고, 길이 없으면 길을 내어 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안심하고 정말 온전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말이다. 어쩌다 내가 날을 세우면 재치 있는 농담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 그 덕분인지 나는 부러지는 사람이 아닌, 휘어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 때는 그의 이런 능력 때문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기도 했다. 지나 보니 그것은 내 마음의 문제였다. 그가 그대로의 나를 사랑으로 채워준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한 존재가 되면 빚이 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 얼마 전, 이를 확신했던 한 마디가 있었는데,
"역시 너랑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해져."
그가 짧은 고민을 건네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내게 한 말이었다. 이 순간 얼마나 기쁨으로 차올랐는지 나의 연인은 모를 것이다. 고민을 끝낸 연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왔고, 그는 요즘 즐거워 보인다. 그가 해온 일로 주변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중인가 보다.
9년 간 우직하고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 준 연인이 여전히 내 곁에 있고, 겹겹이 흐른 시간 위로 우리는 웃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앞으로 30대가 지나 중년이 되고,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되어도 서로의 성장에 축배를 기울이며 함께 수다스러운 하루를 보내리라.
길지 않은 생에 온 선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지구에서 만난 이 사람이
나는 꼭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선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