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커리어, 중요하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이었음을.
1년 전의 나는 번아웃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였다.
다니던 직장에서 일했던 상사는 말로만 듣던 '악덕 상사'였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그의 밑에서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상사가 보내는 메시지에 응답하고 일을 했어야 했고, 기분에 따라 폭언을 서슴지 않던 그의 갑질 때문에 모두가 눈치를 봤어야 했다.
회사로 출근하는 날들은 지옥 같았고, 난 오늘 그와 마주치질 않길 기도하면서 전철에 올랐다.
상사 때문에 괴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더 괴로웠던 건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부터였다. 새로운 걸 느끼며 자극받고 싶었던 디자이너로서의 갈증은 날이 갈수록 더 목말라갔지만, 난 그 어떤 새로운 배움도 교훈도 느끼지 못하고 슬럼프를 찍고 있었다.
크고 작은 변화의 시도들도 있었다.
디자인의 '디'자도 알지 못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들을 앵무새처럼 내뱉기만 하는 상사와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팀 내에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아트 디렉터 자리에 내가 예전부터 따르고 존경해 왔던 멘토 분을 추천해 영입했고, 나는 그 분과 일하면서 내가 다시금 디자이너 대 디자이너로 일에 대한 영감과 멘토링을 계속해서 주고받을 수 있길 내심 바랬다.
하지만 그 멘토 분도 악덕 상사와 텃세에 못 이겨 결국 3개월을 못 채우고 퇴사를 선언했다.
창의적인 마케팅 캠페인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마케팅 팀원들과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가졌다.
일주일에 한 번, 못해도 2주일에 한번, 나는 이벤트 코디네이터와 소셜미디어 마케팅 매니저와 함께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을 다른 팀원이 내놓는 과정에서 시야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즐거웠다. 요즘 유행하는 틱톡트렌드를 반영한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기획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번번이 악덕 상사의 뒤늦은 피드백에 반려되어 무산되기 일쑤였다.
좀 더 체계적으로 앞 날을 예측하고 업무량을 조절하기 위해 매 분기별로 마케팅 캠페인 캘린더를 작성해 팀원들과 나누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악덕상사의 무능함으로 프로젝트 마지막에 반려되거나, 데드라인에 임박해 새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했다. 무능한 상사로 인해 아래 부하직원들이 고생을 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 몇몇이 인사과에 팀 분위기를 흐리는 악덕상사에 대해 말을 꺼내보았다. 하지만 인사과에서는 알아보겠다는 말뿐, 그 어떤 피드백도, 변화가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 그때 느꼈었던 것 같다. 인사과는 직원의 편이 아니구나, 회사의 편이구나라는 걸.
2022년 3월,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회사가 가기 싫어 울면서 잠들기를 반복한 지 몇 달째, 어느 날 문득 무력감대신에 분노가 치밀었다. 더 이상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있다가는 내 건강을 잃을 것 같았다. 이직이야 예전에도 해봤지만, 이번에는 정말 내가 살려고, 살고 보기 위해 떠나야 했다. 이력서를 고치고,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했다. 주말이 사라졌지만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회사에는 나 말고도 이직을 준비하는 이 들이 여럿 있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팀원들은 각각 일하는 부서도, 담당하는 일들도 달랐다. 우리는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나 아무도 없는 빈 회의실에서 술을 마시며 회사 욕을 안주삼아 수다를 떨다 친해졌다. "사실, 나 이직 준비하고 있다?" "어? 나도." "너도?" "깔깔깔, 뭐야! 우리 다들 여길 탈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잖아?" 다들 퇴사를 희망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나처럼 무능한 상사의 괴롭힘에 못 이겨서, 뉴욕의 스타트업 회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종차별과 성추행, 그리고 대표 부부의 독재자 스타일의 리더십에 환멸을 느껴서, 열심히 일해도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상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것에 진절머리를 느껴서, 등등. 알고 보니 이 회사는 비리가 한둘인 아니어서 휘말린 송사가 여러 개인 문제점도 많은 회사였던 것이었다.
그렇게 친해진 4인방은 서로의 레쥬메를 봐주거나, 서로의 인터뷰 프로세스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쇼생크탈출, 아니 회사 탈출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싹트는 동지애가 이런 걸까. 그렇게 우리는 한 명 한 명씩 이직에 성공했고, 마지막으로 나까지 이직에 성공하자 다 같이 축배를 들고 지옥 탈출을 축하했다. 다른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아 퇴사 노티스를 줄 때의 그 악덕상사의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내 수모와 정신적인 고통이 반절은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직에 성공한 새 직장은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팀원들의 워라밸을 중요시하고, 모두를 제대로 된 인격체로 대우하고 존중해 주는, 그럼 꿈만 같은 회사.
하지만 나는 아직도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아직 전 직장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환경을 바꾸고, 새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 번아웃이 사라질 줄만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무기력함, 상처, 그리고 정신적인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새 직장으로 가서도 새 매니저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머릿속으로는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난 내심 내가 조직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은 아닌 걸까. 나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건 아닐까란 임포스터 신드롬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새 매니저가 나의 일에 대해 피드백을 줄 때면 혹여라도 내가 실수한 건 없는지 불안에 떨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은 늘 마음 한편에 자리했고, 그걸 쉽사리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불필요하게 생각이 많고, 고민을 늘 달고 다니는 성격 탓에 더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던 듯했다.
재택근무와 스타트업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데에는 나 스스로가 바운더리를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갈 길이 먼 기분이다. 하지만 조금의 실천이 쌓여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병가를 내고, 그날 여덟 시간 업무 시간을 채웠으면 로그오프를 하고. 주말에는 컴퓨터를 멀리하는 대신에 바깥공기와 햇살을 가까이하고. 그렇게 나는 나의 직장 라이프와 일상을 구분 짓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그렇게 시간을 구분 짓고 나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 추구의 삶이 무엇인지 점점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서서히 버리고, 효율과 간소함, 그리고 나다움을 추구하는 삶. 아침 일찍 일어나 나 자신을 위해서 요가 수업을 들으러 집을 나서고, 먹고 싶었던 요리 레시피를 찾으면 식재료를 사서 만들어보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삶. 힘들었던 작년 회사 생활에서 벗어난 지 1년이 되었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이다. 번아웃과의 싸움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래도 난 점차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