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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n 30. 2024

걱정과 위로의 탈을 쓴 비아냥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07

01 . 

연차가 높아지면서부터는 윗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저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연차가 적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을 대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요즘 세대가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말하는 세대라고 해도 모든 사람이 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특히 제가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가 후배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건 스스로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분명한 것이니 말이죠.


02 . 

뭐 사람 좋은 척하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일종의 계기가 있었거든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구분하게 되는데 사실 그 대부분의 근거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정확히 얘기하면 상대방이 쓰는 말로부터 기인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만 대화를 나눠봐도 '아, 이 사람과 대화할 때는 늘 조심해야겠구나'라는 긴장감이 들 때가 있고 '이 사람이 하는 말에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말아야겠다'처럼 아예 내 감정이나 의견 자체를 아끼게 되는 경우도 있죠.


03 . 

그중 저는 참 교묘한 습성을 가진 사람들을 가장 조심하는 데요, 바로 걱정과 위로를 가장하며 늘 상대방을 비꼬는 부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사실 살다 보면 타인과 생각이나 의견이 달라서 서로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도 있고, 때론 의도와 상관없이 불필요한 표현이나 적절치 않은 단어를 사용해서 불화를 일으키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진심 어린 사과와 또 넓은 포용으로 이를 잘 매듭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비아냥'이라는 영역은 꽤 복잡한 로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꼼의 말들은 상대에게 정말 정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마련이죠.


04 . 

저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솎아내는(?)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나를 걱정하거나 위로해 주고자 하는 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과 경험이 동시에 쌓이다 보니 그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큰 악영향을 주더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나라면 그런 일 안 했을 거야',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그건 왜 하는 건데?'처럼 겉보기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평범한 말들도 누가 하느냐, 언제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뿐 아니라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상처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05 . 

주변 사람들에게 제 생각을 자주 강조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가 자주 반복하는 말 중 하나가 '상대를 부정하면서 내 존재감을 키우려 하는 것만큼 못난 짓도 없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뭔가를 보여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인데 이들은 늘 상대가 어떤 잘못을 하기만을 기다렸다가 그 잘못을 질타하는 사람들을 포섭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반증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섣부른 사람들은 그 썩은 동아줄을 덜컥 잡고서 특정 대상을 함께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죠. 하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꽤 씁쓸한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례만도 부지기수고요. 


06 . 

때문에 정말 누군가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면 사실 우리가 건네야 하는 질문은 무척 단순합니다. '지금 어떤 부분이 가장 당신을 힘들 게 하나요?', '혹시 제가 작게나마라도 도와줄 부분이 있을까요?', '대화 상대가 필요하거든 저에게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정도 인거죠. 

물론 제가 인간관계 전문가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기에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게 분명할 테지만 지극히 평범한 생각 회로에서 나올 수 있는 대처법은 이 정도가 최선이더라고요. 


07 . 

내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인지 그게 아니라면 작게나마라도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지에 대해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고 그가 고민하는 문제에 함께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가 가장 진정성이 있는 노력이 아닐까 싶었던 겁니다. 

그렇지 않고 '누가 봐도 뻔히 잘못되었다는 게 보이는데 넌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니? 나라면 그런 곳에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텐데 넌 참 대단하다'는 식의 화법은 정말 말 그대로 1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거든 그냥 얼른 입을 다물로 자리를 피하는 게 상대를 위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08 . 

'존중'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이 꽤 묵직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존중이라는 건 특별한 순간에 발휘해야 하는 기술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언제나 장착하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이자 마인드 셋입니다. 즉, 특별한 순간에, 상대를 봐가며, 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타인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모든 대상에게 나의 친절함과 온화함을 느낄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게 맞는 거죠. 다만 그런 기회를 여러 번 베풀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오는 피드백이 비꼼과 비아냥이라면 그때는 냉정하고 과감하게 잘라내야 할 관계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자신의 부정적인 대화를 잘 받아주는 사람에게 더 집착하기 때문이죠. 


09 .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제 후배들에게 우리가 건네야 할 인사는 두 가지뿐일지도 몰라. '잘 지내세요?', '별일 없으시죠?'. 그리고 고민이 있다면 이 작은 질문에도 우리에게 먼저 그 고민을 말할 수 있도록 좋은 선배가 되어주는 수밖에 없지. 매번 하고 싶은 말 못 참고, 지적하고 싶은 거 다하다가 어느 순간 '피하고 싶은 선배 1순위'가 되는 것만큼 슬픈 것도 없으니까."


10 . 

그러게요. 진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작은 뉘앙스의 인사 한마디에도 '저 선배..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라며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테니까요. 굳이 비꼼과 비아냥을 장전한 꼰꼰의 아이콘이 되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친절하고, 많이 베풀고,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네요. 부디 저 스스로도 늘 그런 자기검열을 통해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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