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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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참여한 한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나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진이 빠져요. 그렇게 겨우겨우 회복하면 또 새 프로젝트를 맞이하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퇴사하고...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고... 그런데 거기서 여전히 같은 삶을 살고. 이런 주기가 4-5년마다 찾아오는 게 정상적인 건지 비정상적인 건지 너무 헷갈립니다. 저의 이런 성향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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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답을 해드리기엔 너무도 무거운 주제라 다들 입을 떼기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저도 타인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말할 수 없으니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제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오더라고요. 바로 '내가 만든 결과물에 어느 정도까지 애정을 쏟아야 하는 것인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즉 질문하신 분을 힘들게 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일에 대한 과한 몰입과 애정 때문이었던 거죠.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를 맡든 간에 본인도, 그 결과물도 하얗게 불태울 때까지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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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에 애정을 갖는다는 게 일을 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수 항목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나의 시간과 노력과 각종 리소스가 들어가는 일에서 남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그 일을 좋아하기까지 한다는 건 여러모로 내 삶을 즐겁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어도 그때 참 좋았다'고 회상하는 부분 중 하나는 '내가 얼마나 그 일에 큰 열정과 애정을 가졌었던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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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애정을 갖는 것과 이른바 '뽕(?)'에 취하는 것은 구분하고 가야 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얻은 중요한 레슨런 중 하나는 누군가가 그 대상에 얼마나 큰 열정과 애정을 보이는 지가 반드시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펼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거든요. 물론 뭔가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 일에 몰두하기 위한 남다른 뭔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게 내 눈앞에 있는 대상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데서 빚어지는 결과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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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2년 가까이 회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제품, 서비스, 브랜드, 비즈니스의 실패를 목격했습니다. 심지어 다양한 영역과 서비스를 다루는 회사의 특성상 (안타깝지만) 그 실패의 수장이 어떤 분들인지, 어떤 방식으로 실패의 길로 들어섰는지조차 꽤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죠. 그중 큰 패착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특징은 앞서 설명드린 '자기 뽕에 취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는 누가 뭐래도 최고이고, 자신들이 선택한 방향은 결코 틀리지 않았으며, 지금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가 열정과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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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께서 보인 끈기를 폄훼하려는 것도 아니고, '세상사 어찌 될지 모르니 적당히 합시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자기 뽕에 취해서 결과물을 바라보면 어디서,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객관화하는 게 거의 불가능 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리더의 이런 특성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내부적으로 건전한 비판이 오갈 수 없는 문화를 만들 뿐 아니라 마치 좋은 점괘가 나올 때까지 점집을 옮겨 다니는 사람처럼 늘 자신들에 대한 좋은 평가는 높게 치부하고 신랄한 비판은 평가절하하며 무시하는 스탠스가 돋아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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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이른바 뽕에 취하는 효과는 자기 도메인을 둘러싸고 더 공고해집니다. 즉, 본인이 마케터 출신의 리더이면 우리 프로덕트에서 마케팅 역량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하고, 개발자나 엔지니어 출신이면 적어도 기술 부분에서는 본인이 확신한다는 기조가 강해지는 거죠. 그러다 보니 자신이 도메인을 갖춘 분야는 잘 작동하고 있는데 그 외 분야가 받쳐주지 못해서 아직 우리가 빛을 보지 못했다는 기묘한 논리가 탄생하는 현장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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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가치관은 평소 담당자의 커뮤니케이션 습관으로도 이어집니다. 보통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했고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고 있고 나아가 데이터나 근거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뽕에 취한 사람들은 늘 이 과정이 모두 왜곡되어 있거나 과한 자기 해석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타인이 데이터를 들이밀어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하고, 근거를 통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네거티브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하죠. 정작 중요한걸 모르는 사람이 누구이고, 네거티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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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저는 스스로 자기 일에 애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늘 한 걸음 떨어져서 그 대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맘대로 잘 안된다면 의도적으로 자신의 결과물을 비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좋고, 수시로 솔직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자기 결과물을 공유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 뽕에 취해 허우적대는 그 순간만큼은 방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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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문화 평론가 '프랭크 리비스(Frank Raymond Leavis)'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흔히 천재들은 모두 자기 멋대로고 고집 불통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거대한 작품을 남긴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자기 객관화를 멈추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과 도움을 구했고 작은 수정 사항도 놓치지 않았죠. 괴팍하고 고독한 천재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더 분명한 사실은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자신의 결과물에 더 좋은 영향력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글의 마지막은 어쩌면 리비스 박사의 이야기로 대체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예술가들조차 취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기 뽕에 우리처럼 대중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