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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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선악의 저편⟫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부당한 것들에 저항하는 행위 자체는 매우 중요하고 용감한 것이지만 그 대상을 다룰 때는 오히려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들이 저토록 나쁜데 어떻게 좋게 해결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 심취하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괴물이 되어간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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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나와보면 좋은 사람만큼 나쁜 사람도 많다는 걸 절실히 체감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적당히 좋고, 적당히 나쁜 중간인 사람을 찾는 게 현실적으론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죠. 지금 여러분들께서 떠올릴 수 있는 주위 사람들만 봐도 '좋은 사람'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범주에 바로 포함시킬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을 테니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고 그들의 속 사정을 하나하나 헤아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인간관계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건 사실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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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짧지도, 마냥 길지도 않은 정도의 사회생활을 해오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나쁜 사람들은 혼자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바빴고, 합리화의 과정이 끝나면 누군가로부터 동의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내가 하는 이 언행들은 합당한 목표나 이유가 있는 것이고, 여기에 뜻을 같이 해주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공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전혀 우발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나쁜 것들을 행해 끝없는 빌드업(?) 하는 부류의 사람들에 가까웠죠. 심지어는 나쁜 행위가 끝나고 나면 그 행위에 동참한 사람들이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케어해주는 행위까지 잊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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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이런 과정에 동원되는 사람들은 소위 말에 늘 '만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괴물과 부딪히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는 같이 괴물이 되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종족이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본인의 선함을 놓지 않고 정공법을 택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니 악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 두 부류 모두 달가울 수 없습니다.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과의 싸움도, 자기와 똑같이 나쁜 길을 택한 사람과의 싸움도 버거운 것은 매한가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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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제 주위 경험에 비춰봐도 나쁜 사람은 늘 만만한 사람부터 골랐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선명하지 않은 사람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지만 타이밍에 따라서 쉽게 양쪽을 오갈 수 있는 사람들, 나쁜 것도 금방 잊고 좋은 것도 금방 잊는 사람들, 누군가의 설득에 쉽게 감화되고 타인의 사정에 극한 공감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인간 군상을 일반화한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적어도 이런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할 땐 또 그에 맞는 표현법들이 있는 것이니까요, 제 경험에 기대어 제 기준으로 분류해낸 것임을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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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사 생활을 오래 같이한 동료들 중 일부는 가끔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인지도 몰랐고, 우리에게 시킨 지시들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인지도 몰랐다'고 말입니다. 이 역시 각자의 가치관을 가늠좌로 놓고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적어도 '뒤돌아보니 나쁜 사람의, 나쁜 지시였던 것 같다'는 걸 인정하는 걸 보면 모두가 느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쁜 사람이 하는 나쁜 일에 일정 부분이라도 동원된 사람들이었거나 동의 혹은 공감을 해준 사람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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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만만한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은 것은 아니니 스스로 빠져나올 힘 역시 갖추고 있겠지만 제가 안타까웠던 부분은 누군가는 그런 일로 인해 악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끔은 그 사이에 저와 친한 사람도 끼어있어서 나름의 해명을 해주려고 해도 '애초에 그런 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따랐다는 것에서 본인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반문을 들을 때면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아,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도, 이 사람에게도 더 해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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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슬프게도 만만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 중에 스스로를 '만만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사람이 만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왜 그 사람을 선택하는지가 뻔히 보이곤 하죠. 자신의 목표를 감화시키는데도 유리하고, 때론 자신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기 손으로 직접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는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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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다'란 말은 우리말 중에서도 정확한 어원을 찾기 어려운 말 중 하나입니다. 유력한 설은 '찰 만(滿)'자 두 개 이어 붙여서 '이 정도면 적당히 찼고, 부족함이 없는 상태다'를 뜻하는 말이 형용사로 굳어지며 '다루기 쉽고, 접근하기 쉬운 상태 혹은 그런 사람'으로 확대되었다는 가정입니다. 물건이야 이 만만한 상태가 쓸모를 가질지 모르지만 사실 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 좋은 평판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길을 자의로 택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오늘의 결론이 '모든 아젠다에 있어서 선악 중 하나를 택하라'고 귀결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 삶에 이토록 다양한 문제들을 모조리 심판대에 올린다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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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나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의 역량도, 인품도, 평판도 모조리 깎아먹는 행위가 됩니다. '끼리끼리는 공학'이라는 가벼운 말로 대체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때로는 '나쁜 사람을 걸러내는 능력이 없는 것만으로도 나쁘다'는 평가가 존재하는 만큼 이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능력치 중 하나이기도 하죠.
조금 씁쓸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지만 한 달의 마지막이 저무는 시점에서 또 한 번 저 스스로를 바로잡게 되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쁜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무너질 정도로 어리석은 행동을 한 적은 없는지, 그게 나쁜 행동임을 알면서도 좋은 사람 컴플렉스를 버리고 싶지 않아 거절을 미룬 적은 없는지 일단 저 자신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