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시대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1959년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이 20대 중반에 발표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는 다들 읽어보진 않았어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사강은 이미 18살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문학 비평상을 받으며 스타작가가 되었고,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많은 나라에서 번역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그녀의 대표작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죠.
2000년대에 들어서 50대의 나이에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당당한 발언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던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입니다.
이 소설은 러브스토리입니다.
작가가 24살의 나이로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놀라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은 주인공인 39살의 실내 장식가인 여자 ‘폴’과 그의 오래된 애인 ‘로제’ 커플의 이야기입니다.
이 커플의 오랜 연애에 권태로움이 찾아 왔을 때, 폴에게 ‘시몽’이라는 부잣집 도련님이자 잘생긴 외모의 25살의 변호사가 등장합니다.
시몽은 폴에게 첫눈에 반하고 젊은 열정으로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며 폴의 마음을 흔듭니다. 폴의 애인인 로제는 폴의 고객이자 시몽의 어머니인 ‘반 데 부시 부인’과 과거에 밀회가 있기도 했고, 로제 이외에 ‘메지’라는 젊은 여자도 있으나 마지막에 폴은 결국 로제를 선택하게 되는 그런 사랑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제목인 브람스에 대한 호불호를 묻는 질문은 시몽이 폴에게 “오늘 6시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편지를 보내며 등장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플레옐 홀에서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듣게 됩니다. 소설에서 사강은 브람스의 어떤 곡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진 않으나, “바이올린 한 대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누르고 솟아올라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필사적으로 떨더니 이윽고 저음으로 내려와서는 즉각 멜로디의 흐름 속으로 빠져들며 다른 소리들과 뒤섞였다.”라고 묘사하는데요, 이 부분을 보면 바이올린 콘체르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사강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러 넣은 장치인지 모르겠지만 브람스가 작곡한 바이올린 콘체르토는 한 곡입니다.
콘체르토는 협주곡이라는 뜻의 기악 음악 작곡의 한 형식입니다. 이탈리아어 concerto는 중세 라틴어 ‘콘체르타레 concertare : 합동 참여하다, 경연하다’에서 나온 말입니다.
교향곡 Symphony이라고 불리는 형식은 오케스트라에 악기 전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형식이고, 협주곡 Concerto는 하나의 특정한 악기가 솔로를 하고 오케스트라가 솔로를 받쳐주기도 하고, 서로 주고 받으며 경쟁하기도 하는, 말 그대로 협주하는 것입니다.
위의 브람스 바이올린 콘체르토라 하면, 바이올린이 솔로 악기로 등장하여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는 곡입니다. 즉, 곡 전체에서 바이올린의 솔로 멜로디가 두드러집니다.
80년대 후반 ‘하루키 붐’을 일으킨,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7년작 ‘상실의 시대’에서도 브람스의 교향곡 4번과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언급됩니다.
다른 내용이지만, 사강과 하루키의 이 소설들은 둘 다 사랑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고, 거기에 완벽하게 성취되지 않는 사랑이라는 콘텐츠가 브람스의 삶과 닮았습니다. 아마 두 소설가 모두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브람스의 삶을 애절한 러브스토리 모티브를 연결한 것 같습니다.
사강의 소설 제목은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라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절절함이 녹아있는 멜로디와 따뜻한 화성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브람스라는 사람에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면 다른 대답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1822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가 그의 은사이자 멘토였던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의 아내이자 당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 Clara Schumann (1819-1896)을 짝사랑한 스토리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유명합니다.
브람스는 성격이 너무 소심해서 첫 번째 <교향곡 1번 C단조 Op.68>의 초고는 1854년에 작성하는데, 세상 앞에 발표되는 데는 14년이 걸렸습니다. 본인도 이 교향곡을 마음에 들 때까지 손질하는데 1855년부터 1876년까지 21년이 걸렸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런 일화들로 브람스는 대부분 소심하고 신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의 지인들에 의하면 그는 주로 냉소적이고 차가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오토 보헬러 Otto Böhler가 그린 브람스 실루엣에 등장하는 빨간 고슴도치를 보면, 브람스의 까칠한 성격은 당시 공공연했던 것 같습니다.
20살의 브람스는 그 시대의 유명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던 슈만을 만나게 됩니다. 슈만은 브람스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브람스를 유럽 전역에 명성을 날리는 작곡가가 되게 이끌어 준 일등공신의 역할을 합니다.
20살의 브람스가 클라라를 처음 만났을 당시 클라라는 34살에 7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슈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슈만의 가까운 친구가 된 브람스는 슈만이 정신병으로 힘들어하다 라인강에 투신 시도를 하며 병원 생활을 시작할 때, 슈만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아내인 클라라의 집안일 등을 도와주다 사랑에 빠졌다고 알려집니다.
그 후 브람스는 거의 모든 작곡의 초안을 항상 클라라에게 먼저 보여주고나서 대중에 발표하고, 40년 동안이나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하니 서로의 관계의 무척이나 깊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슈만은 2년 간의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지만 클라라와 브람스의 관계에는 별다른 진전은 없고 오랫동안 '좋은 친구'의 관계로 남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브람스는 그렇게 애절한 짝사랑의 주인공이지만 클라라를 제외한 여러 여자를 울리고 다니기도 했고, 여성에 대한 비하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보면,
“I have a powerful prejudice against women pianists and anxiously avoid listening to them.” (Johannes Brahms: Life and Letters - styra avins, p. 502)
나는 여성 피아니스트들에 대해 편견이 많고 그들의 음악을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피한다.
그러나 그 당시 독일은 여성의 투표권이 없었던 시절이라 하니 그 시대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10대의 브람스는 생계를 위해 담배 연기가 자욱한 술집이나 사창가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 어린 시절의 환경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가 보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자유로운 성향이었다고 전해지는데요, 그럼에도 그의 음악의 성향은 동시대의 작곡가들 중에서도 보수적이고 엄격합니다.
그렇기에 브람스의 음악을 말할 때면 언제나 논하게 되는 것이 그의 양면성입니다. 두 개의 정서가 교차되는 것이 그의 음악의 큰 매력이기도 하겠죠.
"어떠신가요?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