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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13. 2024

161104-07

두 개의 거울


청소도구함에서 발견된 시체, 아직은 최초발견자이지만 곧 살인마로 밝혀질 청소 아주머니. 나는 묘한 아니 실은 가슴이 쿵쾅대는 희열을 느꼈다. 내가 글로 쓴 내용이 실현되는 경험을 하다니. 왠지 이번 작품은 나의 인생작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번 일을 시작으로 생각한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글로 풀어내고 그렇게 쓴 글이 현실이 되는 놀라운 기회와 능력이 나에게 주어질 것만 같았다.


예전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다. 누군가가 인간은 생의 1/3을 몽상하는 데 쓴다고 했는데, 내가 바로 그렇다. 그 자유롭고 기발한 상상 속 세계에 약간의 현실감이 더해진다면 내 글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시체가 누구인지, 그동안에는 시체를 아무도 모르게 잘 처리해 왔으면서 이번에는 왜 청소도구함 안에 둔 것인지, 그리고 굳이 자신이 죽인 사람을 직접 신고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내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주머니를 만나야 했다. 그렇다고 아주머니에게 왜 그랬어요?라고 물어볼 생각은 아니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냥 지난번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 한 번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시체를 처음 봐서 놀란 사람 행세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여러 구의 시체를 감쪽같이 처리해 온 그 사람의 눈빛 한 번이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 안을 기웃거려 봤지만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시체가 발견된 청소도구함은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안이 다 들여다보였다. 그 안은 내가 글을 쓰며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오늘 확인하고 글을 이어가려고 했던 내 머릿속의 청소도구함은 각종 살인도구와 시체처리도구로 가득한 병원의 수술실 내지는 목공소 느낌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그 안은 살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아늑하고 편안하고 따뜻함마저 감도는 그런 공간이었다.


간이침대에는 주황색 베개와 베이지색 무릎담요가 단정히 놓여 있었고, 침대 왼편에는 라디오와 작은 스탠드가, 침대 오른편에는 머그잔걸이와 작은 선인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울과 작은 개수대가 있는 그 옆으로 미니 냉장고가 그 위에는 꽃무늬 천이 그 위에는 커피포트와 작은 액자 2개가 있었다. 왠지 그 안에서는 피냄새가 아닌 커피 향과 꽃향기가 뒤섞인 기분 좋은 향이 날 것만 같았다.


청소도구함 안을 보는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 얼마나 놀랐을까? 저 안에 저렇게 해 놓은 거 보면 아기자기한 거 좋아하고 소녀다운 면도 있으신 것 같은데 아침에 저기서 시체가 발견되었으니.. 근데 청소도구함을 저렇게 써도 되나? 뭐 어때? 청소는 진짜 깨끗하게 하시잖아.


모두들 아주머니를 걱정하고 동정하는 분위기였다. 실체를 알면 지금 한 말 후회할 거야. 어서 아주머니를 멀리 서라도 한 번만 보고 글을 마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때 마침 경찰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저기, 청소 아주머니는 지금 어디 계세요? 왜 그러시죠? 아, 제가 어제 아주머니에게 뭐 빌린 게 있어서 돌려 드리려고요. 그제야 경찰을 나를 보았다. 학생, 잠깐만요. 나를 계단 쪽으로 데리고 갔다. 아주머니에게 뭘 빌렸는데요? 나는 뭘 빌렸다고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잠깐 멍하니 있었는데 경찰은 내가 잘 이해를 못 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 얘기 들어서 알겠지만 최초 신고자가 아주머니예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말을 해서 아주머니를 대상으로 수사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하거든요.


경찰이 일을 대충대충 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그런 만큼 정신을 집중해서 내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 중에 아주머니 물건으로 보일만한 것을 떠올려 보았다.


손수건이요.




청바지에 운동화, 학교 로고가 찍힌 점퍼, 머리는 풀고 있었지만 길이는 비슷해 보였다. 몸을 약간 구부린 채 옆으로 누워있었고 위를 향하는 왼쪽 뺨이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학생이 맞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얼굴을 확인할까 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혹시나 주변을 봤더니 피가 흐르고 있지는 않았다. 어쩌면 죽은 것은 아니고 잠든 것이거나 기절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저 학생이 왜 이곳에서? 언제 들어온 걸까? 그냥 이대로 깨기를 기다렸다 물어볼까 싶기도 했다. 아니면 잠시 주머니 속에 들어있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확인하고 지울까 싶기도 했다.


다시 용기를 끌어 모아 조금 가까이 다가가 학생의 몸을 흔들어봤다. 학생, 일어나 봐요. 학생의 몸은 내가 흔드는 대로 맥없이 왔다 갔다 했다. 조금 더 세게 흔들어보았다. 옆으로 눕혀있던 몸이 바로 돌려졌다. 하지만 학생은 눈을 뜨지 않았다.


더 이상은 그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길로 관리실로 내려와서 119에 전화를 걸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관리실 한 구석에 앉아있다. 구급차가 오고 들것이 올라가고 잠시 후에 경찰차가 오고 들것에 흰 천이 둘러진 채 그 학생이 구급차에 실리는 것을 관리실의 큰 창을 통해 다 볼 수 있었다.


곧이어 경찰배지를 보여주던 어떤 남자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 본 적 있어요? 네. 어디서요? 화장실에서. 언제요? 어제도 봤고 지난주에도 봤고. 특이사항은 없었나요? 있었다고 해야 하나 없었다고 해야 하나. 화장실에 와서 볼일은 안 보고 거울만 보다 나가는 것을 특이사항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판단이 안 섰다. 얘기가 길어지는 것이 싫었다. 없었어요. 죽은 건 아니죠? 조금 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미 숨을 거둔 지 몇 시간이 된 것 같다고 하네요.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봐야 할 수 있지만 왜 그 학생이 거기서 죽었는지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창고가 생각났다. 분명히 5층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있을 테고 창고 문은 열려있을 테고 그럼 그 안에 있는 나의 공간이 이미 공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부끄럽고 민망해 견딜 수가 없었다.


저기, 5층 화장실 창고에 좀 가도 될까요? 안됩니다. 지금 그곳은 통제되어서 들어가시면 안 돼요. 거기서 꼭 갖고 올 것이 있어서 그래요. 그래도 지금은 안 돼요,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다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건드리면 안 됩니다.


증거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내가 그 학생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오해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냥 꿈을 꾼 것뿐인데, 그리고 그 학생의 핸드폰 속 내 사진을 지우고 싶을 뿐인데.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그냥 그 학생이 함부로 제 사진을 찍어서..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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