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전거 안전교육을 주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업무를 2년 가까이 했습니다. 단 한 번도 강의를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강의하는 게 재미있었고 즐거웠다는 것이죠. 한 달 내내 교육 기자재를 실은 트럭을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몇 시간씩 이야기를 해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함께 하는 수업이 기다려졌죠.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들을 가르쳐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을 때 뿌듯함, 수업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가면서 재미있었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족스러웠죠. 그렇게 2년 즈음되었을까요. 뭔가 새로운 것을, 좀 더 근본적인 것을 원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구를 발견했던 것이죠.
퇴사해야겠다 결심했던 시기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 퍼지기 시작한 2020년 3월. 사회적으로 모든 활동이 위축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저는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혈기와 의욕, 열정 앞에 무엇이 방해물이 되겠습니까. 새 출발을 위해 4월에 사표를 내고 5월까지 근무, 6월에 새로운 세계를 찾아 회사를 떠났습니다.
떠나고 나서 잘 되는가 싶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합교육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비지원 교육을 통해 3달간 강사 양성과정 수업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과정이었지만, 첫 발을 떼는데 맨땅에 헤딩하면서 배우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말에 들었던 교육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요. 이때 배운 과정이 있었기에 좀 더 수월하게 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핑크빛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난 후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습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를 때라, 점차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지요.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바람에 강의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이야기(학교들이 주로 취소되었습니다.)가 들려왔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열심히 뛰어야 하는 시간에 시작부터 넘어져버린 꼴이 되어버린 셈이죠. 교육은 받았으나 할 일이 없는, 말이 좋아 프리랜서인 백수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거짓말처럼 20년 6월에 자신 있게 퇴사를 하고 21년 3월까지 약 9개월 동안 딱 한 번 강의를 나간 것 말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이나 계속 다닐걸 뭘 찾자고 그만뒀나,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하는 게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죠. 꿈꿨던 핑크빛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모아둔 돈만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거든요. 다시 취직을 할까 이력서를 써보기도 하고, 취업 교육을 듣기도 했습니다. 불안했기 때문에요.
그럼에도 결국 취업을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력서를 준비하고 입사지원을 할 때,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나, 소개로 취업 제안을 받을 때나 하나 마음속에 불편함이 저를 잡았기 때문이었거든요. '내가 정말 원하는 걸까? 결국 다른 일로 취업하려고 그만두고 나온 거야?'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겨우 이런 마음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하면서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도 했죠.
시기나 사회적인 분위기나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잘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 스스로가 흔들렸던 것일 뿐이었죠. 그래서, 딱 1년. 1년까지만 더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강사 모집건, 강사 양성과정은 전국을 가리지 않고 다 찾아보고 신청하기로 마음을 다잡았죠.
여전히 계약을 거부하는 곳도 많고, 연락조차 주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이럴수록 더 취업을 향한 마음이 커졌을 텐데, 그렇지 않더군요. '딱 1년까지만.'이라는 마음이 새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1년까지 딱 2개월 남은 4월 말. 3개 업체와 강사로서 계약을 맺고 출강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1년 12월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교육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하반기에만 70회가 넘는 출강 일정을 소화하며 21년을 뿌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잘 되면 어떤 이유 때문에 잘 됐다, 잘 안되면 무엇 때문에 잘 안됐다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의미들을 객관적으로 구분하고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는데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문제의 소지가 될 위험성이 커집니다. 특히 실패의 원인을요.
자기객관적이지 않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제가 그랬었거든요.)은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모든 탓을 자신에게로 돌립니다. 내가 부족해서 안된 거야, 내 능력이 안되는 거야.. 하면서 나는 잘하는 게 뭘까, 나는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까지 연결되는 거죠. 끝없는 자기부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현상은 현상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 되던, 잘 되지 않던 이는 그걸 보고 이해하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같은 현상에 누구는 위험함을 느끼지만 다른 누구는 기회를 볼 수 도 있습니다. 누구는 안정감을 느끼지만 누구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이유로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유로 말이죠(사실 남의 생각에 내 생각을 포기하고 맞춰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역경을 만나면서 누구는 계속 버텨내고 누구는 스러집니다. 아마 지금 여러분들이 그럴 수도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1) 하고자 했던 목표를 잃지 않고 2)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자세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나'가 중요하잖아요. 다른 사람이 잘 된다고 나도 잘 될 것이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이 두 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은 뒤로는, 2020년의 그때처럼 괴롭고 힘들어하는 일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