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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 B Oct 03. 2016

# 8. 아제르바이잔 (Azerbaijan)

개발도상국 이야기

개발도상국 이야기

# 8. 아제르바이잔 (Azerbaijan)

아제르바이잔 국기는 파랑, 빨강, 초록색 바탕을 배경으로 중앙에 하얀 초승달과 팔각의 별이 그려져있습니다. 파랑은 투르크족, 빨강은 진보, 녹색은 이슬람을 나타내며 초승달은 이슬람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팔각의 별은 '아제르바이잔'이 아랍어로 8글자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캅카스 지역에 위치한 국가로 동쪽으로 카스피해와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 러시아, 북서쪽으로 조지아, 서쪽으로 아르메니아, 남쪽으로는 이란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바쿠(Baku)입니다. (출처: UN)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고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터 원시교 (Zoroastrianism)의 발생지로 알려진 나라 아제르바이잔. 2016년 세계 은행 기준 GDP 약 US$378억불로 세계 89위의 경제 규모를 지닌 개발도상국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산업은 석유가스 산업으로 이는 GDP의 50%,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입니다. 제 2위의 산업으로는 IT산업으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20-25%의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농산품 자급율이 50%에 달하는 농업 등이 있으나 제조업이 취약하여 대부분의 소비재와 산업재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는 2016년기준 약 980만명으로 인구의 90%이상이 시아파 이슬람교를 믿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들 중 최초의 민주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오페라, 극장,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학을 설립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의 공식언어는 터키 계통 언어인 아제르바이잔어로 이는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계 언어이기도 합니다.

사진설명: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아제르바이잔전통의상을 입고 포즈를취하는 아제르바이잔 여성. (출처: Painterst)



아제르바이잔은 고대에 ‘알바니아’로 알려진 곳으로 (발칸 지역 국가인 알바니아와 다른 곳입니다) 기원전 550년경 페르시아아의 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00-330) 때부터 페르시아의 주요 지역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 때에 실크 로드를 잇는 주요한 교역로 중 하나인 페르시아왕도 (Persian Royal Road)가 만들어지는데 이 길은 페르시아 북쪽 (현재 이란 지역) 도시인 수사(Susa)에서 현재 터키 지역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림설명: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교역에 큰 영향을 끼친 페르시아 왕도는 교역뿐만 아니라 우체국의 역활을 하는 정류장이 있어 약24km마다 새로운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속도와 효율면에서 매우 뛰어났습니다. (출처: thinglink.com)



페르시아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아케메네스 왕조는 다리우스 3세 때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으로 인해 몰락하게되고 이 후 헬라문화가 주를 이루었던 페르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거쳐 파르티아, 사산 왕조 시대까지 아제르바이잔은 계속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하게 됩니다.

사진설명: 시인, 음악가 등이 함께 하는 페르시아왕족의 피크닉 모습. (출처: 옥스포드 대학)



7세기경 오구즈족 (Oğuz)과 셀주크 (Seljuk) 투르크족이 침입해오기 시작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들 유목·기마 민족에게 있어 아제르바이잔의 넓은 초원지역은 거주하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투르크족들이 이주하면서 현 아제르바이잔인의 원류가 됩니다.

사진 설명: 전통 의상을 입은 아제르바이잔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 (출처:biginbaku.com)



13세기경 몽골·투르크계 지도자 티무르의 침공으로 인해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200년 후에 이르러서야 다시 낙타를 이용한 향신료 등의 무역으로 인해 시르반 (Shirvan) 지역이 번성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를 시르반왕조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르반 왕조는 남부 아제르바이잔 (현재 이란)의 아르바딜 (Arbadil) 사파비왕조(Safavid)와 패권 다툼을하게 되고 1501년 사파비 (Safavid) 왕조가 승리하면서 페르시아 전역이 아르바딜 지역의 주종교였던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됩니다. 이로 인해 세계 이슬람교 인구의 80-85%가 '수니파'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이란, 이라크, 바레인 지역의 대부분은 시아파 이슬람을 믿고 있습니다. (참고로 시아파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하마드의 직계 자손들이 영적 리더십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반면 수니파 이슬람은 혈통과 상관없이 믿음에 따라 영적 리더십이 정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림설명: 페르시아 사파비왕조의 창시자 샤 이스마일이 1501년 이란의 북쪽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서 우즈베키스탄 지도자 모하마드 셰바니와 전쟁하여 승리하는 모습. (출처: IranChamber)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지역이었던 아제르바이잔은 18세기에 들어 터키 오스만제국의 침공을 받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1722-1723)에서 러시아의 피터 대제(1672-1725)가 승리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현재 수도 바쿠를 포함한 카스피 해안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후 이란의 카자르(Qajar) 왕조(1789-1925)가 들어서면서 왕조 초기에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내고 영토를 넓히는 등 크게 선전하지만 두 차례의 러시아-페르시아전쟁에 패하면서 1828년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의 캅카스 (Caucasus) 지역은 결국 러시아 제국에 합병됩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인해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탄생된 시기에 아제르바이잔은 잠시 민주 국가로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1920년 4월에 소련은 아제르바이잔을 침공하여 소비에트연방에 편입시킵니다. 1942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바쿠 지역의 유전을 노린 독일군이 소련의 캅카스 지역을 침공하지만 소련은 아제르바이잔으로 들어가 독일군을 격파하고 1944년에 전투를 종식시킵니다. 이 전투를 포함해 제 2차 세계대전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60만명 이상의 아제르바이잔인이 소련군에 징집되어 참전하였고 많은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아직도 소련의 승리에 기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는 소련군의 주 원료 공급원이었습니다. 사진은 당시 아제르바이잔 대학의 석유산업학과 학생들입니다. (출처: Visions ofAzerbaijan)



80년대 후반 소련이 무너지면서 연방을 이루던 유럽 국가들이 점차 독립하기 시작하고 아제르바이잔도 1991년 8월 30일 독립을 선언하여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 출범합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와 경계 지역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지역이 독립을 선언하고 아르메니아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무력충돌이 일어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정세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분쟁이 악화되는 가운데 1992년 이웃 국가 아르메니아가 침공하여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30%를 지배하게 되고 1993년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와의 휴전성명에 서명하지만 아직까지도 영토 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도설명: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위치.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본래 아르메니아의 영토였으나 소련시절 이오시프 공산당 서기장의 행정 편의에따라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 자치 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민의 80%가 아르메니아 출신인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직도 아제르바이잔과 분쟁 중에 있습니다.    



이 후 대통령 헤이다르 알리예프(Heydar Aliyev)의 통솔 아래 정세가 안정된 아제르바이잔은 친서방 개방 정책을 채택하여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유전 개발을 강화하였습니다. 특히 국제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경제는 급속히 성장했고 임금 인상과 사회 보장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국가 빈곤률은 2001년 50% 에서 2011년 7.6%로 급격히 떨어지는 등 괄목할만한 경제적 진보를이루었습니다.

사진설명: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의유전 개발 모습. (출처:www.oilandgaspeople.com)



그러나 에너지 산업의 의존도가 높은 나머지 세계 경제의 둔화로 인한 수요 하락과 미국의 석유생산력 증강으로 인한 저유가 현황에서 아제르바이잔의 현재 경제 상황은 크게 낙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리포트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의 2015년 GDP성장률은 1.1%로 건설산업의 수주 증가로 인해 전반기에 5.7%의 성장률을 보인 반면 하반기에들어 저유가로 인한 수출액의 감소로 인해 연평균 총 1.1%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2015년 12월 아제르바이잔은 수출 증가 효과를위해 자국 통화인 마나트 (Manat)의 가치를 33% 하락시키고 기존의 달러 통화환율고정제도 (dollar-pegged)를 벗어나 자유변동환율 (floating) 정책을 도입하였으나 글로벌 수요 감소로 인해 실물 및 금융 경제의 재무재표 발란스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프 설명: 아제르바이잔의 1인당 국민소득. 2004년부터 고유가와 함께 소득이 급성장하여 2014년 1인당 US$7,886를 기록했으나 유가 하락으로인해 2015년에는 1인당 US$5,496으로 40%이상 하강하였습니다. (출처: 세계은행)


  

저유가 전망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제르바이잔의 장기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석유 산업 이외의 산업부문에 분산 (diversification)투자를 지속하여 다양한 산업을 육성하고 강화시키는 정책 실현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아제르바이잔의 GDP에서 비 석유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61%에서 2015년 하반기에 이르러 68%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석유와 가스를 포함한 원자재 산업은 2014년 총 수출의 94%를 차지하였고 2015년 상반기에는 90%를 차지하는 등 여전히 아제르바이잔의 수출액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프 설명: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2014년 아제르바이잔수출품목 비중. 원료 (92.76%)에 이어 식자재가 뒤를 따릅니다. 주요 수출국으로는 이태리, 영국, 미국, 인도네시아, 독일, 이스라엘, 프랑스, 터키 등이 있습니다.

 


세계 은행이 2016년에 발표한 '비즈니스를 하기 좋은 국가 순위' 리포트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은 전체 189개국가 중 63위로 건축 허가 및 전기 공급 등과 관련한 인프라 시설면과 신용발급면에서 100위 이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비지니스를 시작하기 좋은 국가' 순위에서는 7위를 차지하고 2014년의 80위에 비해 전체 등급이 63위로 오르는 등 점차 우호적인 비지니스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의 국가 전략에 바쿠 지하철, 상수도 시설, 고속도로 보수, 조지아와 터키를 잇는 새로운철도, 전기 공급, 관광업 등과 관련한 대규모 인프라 산업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이와 관련한 외국인 투자 및 경제 효과가 기대됩니다. 또한 아직 개방되지않은 금융산업 또한 정부의 산업 분산화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그 성장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원자재 개발과 무역 자유화정책으로 인해 2000년 대에 들어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앞으로 경제 저성장에 대비하여 좀더 보수적인 정부지출계획안과 현재까지 석유로 축적한 국부 관리 계획안을 철저히 구상하여 앞으로의 장기적 경제 성장과 안정을 구축해야 하겠습니다.



저자 약력: 런던 소재 국제금융기구인 유럽개발부흥은행  (EBRD) 근무.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등EBRD의 26개 개발도상국 관련 업무 담당. 해외 투자 은행, 사모 펀드, 임팩트 펀드, 프랑스 OECD 근무.


*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제작한 여행안내 동영상에서 아름다운 아제르바이잔을 만나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883yF-mM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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